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에서 청동병 발견
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에서 청동병 발견 -2017.7 .25. 출토,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에서 보존처리 예정 - |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2017년 7월 25일 문화재보수정비 국고보조사업으로 진행 중인 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 해체보수 과정에서 청동병(높이 22cm, 가장 넓은 동체부 너비 11cm)이 발견됨에 따라 분석을 통해 삼층석탑의 제작연대 등을 규명할 계획이다.
청동병은 삼층석탑 3층 탑신석 하부에서 나왔으며, 사리를 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26일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가 현장에 나가 청동병을 수습하였으며, 센터에서는 엑스레이(X-ray)와 CT(컴퓨터단층촬영) 촬영 등 비파괴조사와 부식물 제거·안정화 처리·재질강화처리 등 각종 보존처리를 할 예정이다.
또한, 청동병의 3분의 1가량이 흙으로 채워져 있는데, 이 흙을 조사해 유물의 정확한 성격과 제작연대도 파악할 계획이다. 참고로,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지난 2013년 불국사 삼층석탑 2층 탑신석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에서 45과의 사리를 수습하여 과학적 조사 분석과 보존처리를 진행한 바 있다.
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은 월남사 터에 남아 있는 8m의 거대한 3층 석탑으로, 단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백제 석탑의 기본양식을 따르고 있다. 월남사는 13세기 초반 진각국사(1178~1234)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이를 중창(重創) 연대로 보는 견해도 있다. 삼층석탑의 제작연대를 후삼국기인 견훤대로 보는 견해와 고려 무신정권기인 13세기 또는 고려 후기로 보는 견해 등 여러 학설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번에 발견된 청동병을 분석하면 삼층석탑의 제작연대 등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를 밝혀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석탑은 지난 2013년 안전진단 결과, 석재 간 벌어짐과 응력(변형력) 집중으로 인해 남쪽 면과 서쪽 면의 수평변형이 발생하고 지반 일부에서 이완층이 나타나는 등 해체‧보수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2014년 관계전문가 진단을 거쳐 2015년부터 문화재보수정비 국고보조사업으로 보수정비 기본계획 수립, 석탑 해체보수 설계, 석탑 해체보수 등 일련의 사업을 진행해 왔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발견한 청동병의 조사‧연구를 비롯해 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의 해체‧보수를 더욱 신중히 추진하고, 월남사지 발굴조사와 주변 정비사업을 통해 문화재의 역사적 가치 규명과 보존관리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글.사진 출처 : 문화재청>
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 (康津 月南寺址 三層石塔)
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 (康津 月南寺址 三層石塔.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854)
월남사터에 남아있는 삼층석탑으로, 단층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바닥돌 위에 기둥 모양의 돌을 세우고 그 사이를 판돌로 채운 뒤 넓적한 맨윗돌을 얹어 조성하였다. 탑신부의 1층 몸돌은 매우 높으며, 2층 몸돌부터는 그 높이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지붕돌은 기단보다 넓게 시작하였으며, 밑의 받침은 3단을 두었다. 지붕돌의 윗면은 전탑에서와 같이 계단식 층단을 이루었고, 추녀는 넓게 수평의 직선을 그리다가 끝에서 가볍게 들려있다. 탑신의 모든 층을 같은 수법으로 조성하였고 위로 오를수록 낮은 체감률을 보인다. 탑의 머리부분에는 받침 위에 꾸밈을 위해 얹은 석재 하나가 남아 있다.
이 탑은 백제의 옛 땅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상 백제 양식을 많이 따르고 있다. 기단 및 탑신의 각 층을 별도의 돌로 조성한 것이나 1층의 지붕돌이 목탑에서처럼 기단보다 넓게 시작하는 양식 등이 그러한 특징이 된다.
대표적인 백제탑이라 할 수 있는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 제9호)과 비교해볼 수 있으며, 전라도 지역에서는 규모나 양식으로 매우 중요한 석탑이라 할 수 있다.(출처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