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경상북도/김천 28

호국승護國僧 사명대사四溟大師 -직지사 사명각四溟閣-

사명대사는 16세에 직지사로 출가하여 신묵대사의 제자가 된 이후에 30세에 본사의 주지가 되셨고 임진왜란 때 구국선사로서 큰 업적을 남겼기 때문에 그 공적을 기리기 위해 별도로 독립된 건물에 영탱을 모시고 있다. 조선 중기의 고승인 유정(惟政, 1544∼1610). 풍천 임씨로 속명은 응규(應奎), 자는 이환(離幻), 호는 사명당(四溟堂)이다. 또는 송운(松雲), 별호는 종봉(鍾峯)이다. 경상남도 밀양출신이며, 수성(守成)의 아들이다. 1558년(명종 13)에 어머니가 죽고, 1559년에 아버지가 죽자 김천 직지사(直指寺)로 출가하여 신묵(信默)의 제자가 되었다. 그뒤 직지사의 주지를 지냈으며, 1575년(선조 8) 선종의 중망(衆望)에 의하여 선종수사찰(禪宗首寺刹)인 봉은사(奉恩寺)의 주지로 천거되었으..

경상북도/김천 2021.08.11

김천 직지사(直指寺) 비로전(毘盧殿)

직지사(直指寺) -한국불교(韓國佛敎) 1천 6백년의 역사(歷史)와 그 세월(歲月)을 같이 하다.- 초창(草創)은 신라 눌지왕(訥祗王) 2년(418) 아도 화상(阿道和尙)에 의하여 도리사(桃李寺)와 함께 개창(開創)되었다. 그 사명(寺名)을 직지(直指)라 함은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는 선종(禪宗)의 가르침에서 유래되었다 하며, 또 일설에는 창건주(創建主) 아도 화상이 일선군(一善郡, 善山) 냉산(冷山)에 도리사를 건립하고 멀리 김천의 황악산을 가리키면서 저 산 아래도 절을 지을 길상지지(吉祥之地)가 있다고 하였으므로 하여 직지사(直指寺)라 이름 했다는 전설(傳說)도 있다. 또는 고려의 능여화상이 직지사를 중창할 때 자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자기 손으로 측지(測地)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경상북도/김천 2021.08.10

직지사에서 본 오유지족(吾唯知足) 석조(石槽)

오유지족(吾唯知足) : 오吾(나 오)유唯(오직 유)지知(알 지)족足(발 족) 이 네 글자 모두 입 구(口)자가 공통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이를 중심에 두고 위로부터 시계 방향로 상하좌우의 각 방향으로 한 글자씩 배치하였습니다. 오유지족(吾唯知足)은 ‘나는 오직 만족함을 알 뿐이다’로 풀어낼 수 있으며 “자신의 분수를 알고 적은 것에도 만족할 줄 알아야 행복해진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맑은 물 한 잔으로 마른 목을 축이고 마음까지 넉넉히 채워 가시기를 바랍니다.

경상북도/김천 2021.08.10

사명대사공원 오층목탑 - 평화의 탑 -

사명대사공원 오층목탑 - 평화의 탑 - 사명대사공원의 대표적인 상징물은 5층 목탑으로 총 55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전체높이 41.5m, 건평 116.6㎡(35.28평) 규모의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목조 5층탑이다. 규모와 위용에서 사명대사공원의 랜드마크다. 신라 황룡사 9층 목탑과 닮은 평화의 탑은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듬은 사명대사의 정신과 평화를 바라는 국민적 염원을 담아냈습니다. 설계과정에서 황룡사 9층탑의 지붕 구조 맞춤·가구 방식과 입면비례를 참고했다고 한다. 사명대사공원에서 단연 눈에 띄는 건물인 5층 목탑 ‘평화의 탑’ 1층 전시공간에 평화의 탑 제작 영상자료와 사명대사 관련 패널이 전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1층에서 5층 전경을 CCTV 화면으로 볼 수 있도록 했으며 탑 외관에..

경상북도/김천 2021.08.09

증산 가는 아흔아홉 구비 고개 길에서 본 풍경

인현왕후는 조선 제19대 숙종(肅宗)의 계비(繼妃)로 1667년(현종 8년) 여양부원군 여흥민씨 민유중(閔維重)과 은진송씨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1680년(숙종 6년) 인경왕후가 죽고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서인들이 집권한 후 송시열의 추천으로 1681년(숙종 7년) 5월 2일 자신보다 여섯 살 많은 숙종과 가례를 올리고 국모가 됐다. 왕자를 낳지 못해 왕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는데 1688년(숙종 14년) 숙원장씨(淑媛張氏)가 왕자 윤(昀)을 낳으면서 갈등이 심해졌다. 1689년(숙종 15년) 숙종이 왕자를 원자로 책봉하려하자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서인이 극렬 반대하면서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이어지고 남인이 집권하면서 숙원장씨는 희빈(禧嬪)이 됐다. 인현왕후는 남인들의 주장으로 1689년 5월..

경상북도/김천 2020.08.01

김천 방초정(金泉 芳草亭)

김천 방초정(金泉 芳草亭. 보물 제2047호.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 83) 방초정은 1625년 이정복(李廷馥)이 선조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누정이다. 많은 시인(詩人) 묵객(墨客)들이 정자에 올라 주위의 아름다운 경치를 찬미한 시가 붙어 있다. 「김천 방초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크기의 이익공계 5량가 겹처마 팔작지붕 집으로 마룻바닥을 일정하게 높여 지은 중층 누각형식의 정자이다. 연안이씨 11세손 이정복이 조상을 추모하고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1625년에 원터마을에 세운 정자로 두 차례의 중건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당시 중수기와 중건기 그리고 상량문 등에 담긴 내용으로 건립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건축 내력을 비교적 충실하게 추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자의 위치와 형식..

경상북도/김천 2020.08.01

증산면사무소. 유성리 소나무. 쌍계사지雙磎寺址 및 증산초교甑山初校

증산면(甑山面) : 조선시대는 성주목(군)에 속해 있었으며 관내에 있는 시루봉(甑峰)의 이름을 따서 증산면이라 칭하였고 37개동을 관할하였다. 1895년 지방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성주군 외증산면과 성주군 내증산면으로 나누어졌다. 그 뒤 1906년에 내증산면은 지례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경상북도/김천 2018.08.26

김천 청암사 수도암 동ㆍ서 삼층석탑(金泉 靑巖寺 修道庵 東ㆍ西 三層石塔)

김천 청암사 수도암 동ㆍ서 삼층석탑(金泉 靑巖寺 修道庵 東ㆍ西 三層石塔.보물 제297호. 경북 김천시 증산면 수도길 1438, 청암사 수도암(수도리)) 대적광전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쪽에 서 있는 쌍탑으로, 신라 헌안왕 3년(859)에 도선국사가 세웠다는 설이 전해온다. 앞 뜰이 좁아서 탑과 ..

경상북도/김천 2014.05.20

김천 청암사 수도암 석조보살좌상(金泉 靑巖寺 修道庵 石造菩薩坐像)

김천 청암사 수도암 석조보살좌상(金泉 靑巖寺 修道庵 石造菩薩坐像.보물 제296호.경북 김천시 증산면 수도길 1438, 청암사 수도암(수도리)) 청암산 수도암 약광전에 모셔져 있는 높이 1.54m의 고려시대 석불좌상이다. 머리에 원통형의 관(冠)을 쓰고 있어서 보살상처럼 보이지만, 광배와 대..

경상북도/김천 2014.05.20

김천 청암사 수도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金泉 靑巖寺 修道庵 石造毘盧遮那佛坐像)

김천 청암사 수도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金泉 靑巖寺 修道庵 石造毘盧遮那佛坐像.보물 제307호.경북 김천시 증산면 수도길 1438, 청암사 수도암(수도리)) 청암사 수도암에 모셔진 높이 2.51m의 통일신라시대 석조불상으로 진리의 세계를 두루 통솔한다는 의미를 지닌 비로자나불을 형상화..

경상북도/김천 2014.05.20

김천 유성리 소나무와 쌍계사지

김천 유성리 소나무(경상북도 기념물 제167호. 경북 김천시 증산면 유성리 278-6) 본래 쌍계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으로 현재 증산면사무소 구역 내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 식생하는 소나무는 수령이 250년 2그루와 200년 1그루가 있다. 당초 처진소나무로 신청이 되었으나 3그루중 1그루는 처진소나무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2그루는 보통의 소나무이다. 이들 소나무는 수령이 오래되고 수형이 수려하고 거북등과 같은 껍질 등 형태상 특징을 가지고 있어 학술적인 가치가 높아 도기념물로 지정예고 하기로 하며, 지정명칭은 “김천 유성리 소나무로” 한다. (문화재청 자료) 옥동·옥류동(玉流洞)·백천강·백천구(白川구) : 이곳은 증산면 사무소가 있는 곳으로서 매월 2일·7일로 5일장이 서는 곳이다. 옛날에는 쌍계사라..

경상북도/김천 2012.07.08

김천 갈항사지.오봉동석조석가여래좌상

오봉동석조석가여래좌상(梧鳳洞石造釋迦如來坐像) (보물 제245호.경북 김천시 남면 오봉리 65 ) 이 석불(石佛) 좌상(坐像)은 지금은 없어진 갈항사(葛項寺) 터에 있는 불상(佛像)으로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좌불(坐佛)이다. 만들어진 시기는 갈항사 삼층석탑(三層石塔)의 건립 연대인 경덕왕(景德王) 15년(758) 무렵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은 오른손은 무릎아래 쪽으로 향하게 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한 손과 오른쪽 무릎 등의 파손이 심한 편이나, 예쁘고 둥근 얼굴, 발달된 젖가슴, 굴곡이 선명한 신체에 밀착된 자유롭고 부드러운 옷주름선 등은 사실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어 당시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문화재지식정보센터) 광배를 장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구멍 기단부 하대석에 있는 문양 오봉동석조석..

경상북도/김천 2007.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