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제석사 폐기유적에서 동아시아 문화교류를 살필 수 있는 악귀상(惡鬼像) 등 출토 - 2016.7.13. 오후 2시 일반인 대상 현장설명회 개최 - |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배병선)는 익산 제석사지(사적 제405호) 폐기유적 발굴조사 현장과 출토유물을 오는 13일 오후 2시 공개한다.
* 발굴현장: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산 28-4 일대
제석사(帝釋寺)는 백제 무왕이 도읍을 익산으로 옮길 계획을 추진하면서 왕궁 부근에 창건한 절로,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에서 정관(貞觀, 중국 당 태종 연호) 13년(기원후 639년) 벼락으로 인하여 불당(佛堂)과 칠층탑(七級浮圖), 회랑과 승방(廊房)이 모두 불탔다는 기록이 있어 7층 목탑, 불당, 회랑(回廊), 승방 등을 갖춘 왕실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觀世音應驗記: 중국 남조 시대 때 관세음신앙에 대한 책 3권이 발간되었으며, 12세기 일본 교토의 청련원(靑蓮院)에서 이 3책을 묶은 필사본 끝에 ‘백제 관련 기사’가 있음
현재 발굴 중인 폐기유적은 제석사에서 불에 탄 기와나 벽체 등 건축 부재와 사찰에 모셔진 소조 불상조각들을 버린 곳으로, 남북 32.4m, 동서 28m의 규모이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이뤄진 시굴조사를 통해 흙으로 구운 소조불ㆍ보살ㆍ천부(天部), 악귀(惡鬼)ㆍ동물 등의 소조상과 연화문 수막새 등이 출토되어 백제 후기의 불교미술과 건축 등 백제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됐던 곳이다.
* 천부상(天部像): 여래, 보살, 명왕에 이어 최하위에 놓인 존상의 총칭
이번 발굴에서는 시굴조사때와 유사한 유물인 천부상(天部像)이 출토되었는데, 머리 부분의 파편만 남은 상태로, 살짝 다문 입술, 지그시 내려가 가늘게 뜬 눈매, 길게 늘어진 도톰한 귓불, 살짝 두툼한 턱이 잘 표현되어 있다. 나한상(羅漢像) 혹은 불제자(佛弟子)로 추정되는 2점은 지그시 감으면서 강인한 느낌을 주는 눈매, 두툼한 코, 둥그스름한 정수리가 잘 표현되어 있어 흥미롭다. 악귀상(惡鬼像)은 동그랗게 뜬 채로 측면을 응시하는 눈, 살짝 들린 들창코, 야무지게 다문 입술 사이로 삐져나온 치아와 송곳니 등이 잘 표현되어 있고, 머리와 뺨, 턱까지 온통 털로 덮여 있으며 눈동자에 유리질이 남아 있다.
이들 유물들은 형태나 문양, 제작기법의 측면에서 중국 낙양 영령사(永寧寺), 부여 정림사지(定林寺址), 일본 가와하라데라(川原寺) 출토품과 비교해 볼 때 백제를 중심으로 한 중국ㆍ일본 등 동아시아의 문화교류 양상을 밝힐 수 있는 유용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외에 회칠이나 채색 흔적이 남아 있는 벽체편, 흙벽돌 등 다양한 건축부재가 출토되어 고대건축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이번 발굴조사 성과는 오는 2016년 7월13일 오후 2시 개최되는 발굴현장 설명회를 통해 일반인에게 공개한다. 더 자세한 사항은 전화(☎063-836-9027/왕궁발굴팀)로 문의하면 된다.
익산 제석사지 제4차 발굴조사 개요
□ 제4차 발굴조사 개요
ㅇ 조사대상 : 제석사지(사적 제405호,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산28-4 일대)
ㅇ 조사기관 :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ㅇ 조사기간 : 2016. 3. 22. ~ 현재
* (1~3차 발굴조사) 2007. 6. 22. ~ 2012. 10. 12.
ㅇ 조사목적 : 제석사 폐기유적에 대한 조사를 통해 제석사의 창건 가람과 운영 시기를 밝히고, 유적 정비 기초자료 확보 ※『觀世音應驗記』에는 정관(貞觀) 13년(A.D.639년) 뇌우로 인하여 佛堂과 七級浮圖 및 廊房이 모두 불탔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어 백제 무왕 시절에는 7층 목탑, 불당, 회랑 및 승방 등을 갖춘 왕실사찰이 완성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
□ 제석사 폐기유적 발굴조사 경위 및 현황
ㅇ 제석사 폐기유적 시굴조사 현황
- 예전에는 “왕궁리 傳와요지”로 명명되어 익산시 향토문화유적으로 관리
- 2003~2004년, 2차례에 걸친 원광대학교박물관 시굴조사 시, 소조상(佛·菩薩· 天部像類, 神將像類, 惡鬼·動物像類), 4종류 연화문 수막새, 벽체편(包壁體, 灰壁體 등), 홍두깨흙 등 다량 출토 → 제석사의 성격과 제석신앙의 실체, 더 나아가 백제말의 불교미술 및 건축 등을 통한 백제문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
ㅇ 익산 제석사 조사현황
□ 4차 발굴조사 내용 및 성과
ㅇ 제석사 폐기유적의 층위(1~2차 퇴적층)를 통해 규모와 폐기양상을 밝힘
- 폐기유적 바닥면에 조성된 석곽묘는 묘광 굴광선이 확인되지 않아 1차 퇴적층 이후, 단기간 내에 2차 퇴적층과 함께 축조된 것으로 추정됨
- 폐기유적의 상부 마감처리 방식은 확실하지 않으나 2차 퇴적층과 유사한 퇴적층으로 피복되었을 가능성이 있음
ㅇ 바닥면은 경사면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단이 지어 있음
- 바닥면에서 확인된 홈은 밭의 고랑으로 보여 폐기유적 조성 전에 밭과 같은 경작유구의 존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됨
- 단면 조사와 함께 화분분석, 토양분석 등 자연과학적 분석을 실시할 예정임
ㅇ 폐기유적의 남서편 및 북서편 모서리 지점에서는 구(溝), 서쪽 외곽에서는 부정형의 수혈유구(竪穴遺構), 북쪽 외곽에서는 일정한 간격의 수혈 유구가 확인
- 폐기유적의 남서편 지점의 좌․우 2열의 구(溝)는 중앙에 작은 길(小路) 옆으로 형성되었고, 북서편 지점의 구는 배수로(排水路)로 추정됨
ㅇ 기존 시굴조사 시 출토되지 않았던 새로운 형식을 포함 5가지 형식의 연화 문수막새, 다양한 형태의 소조상 편, 벽체 편, 홍두께흙 등이 다량 출토되어 제석사의 불교신앙, 건축 특성을 밝혀 백제문화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로 판단됨
- 인동당초문암막새·인장와는 출토되지 않았고, 왕궁리유적이나 미륵사지와는 달리 비교적 정형화된 미구기와가 주류임
- 새로운 소조상이 출토되어 제석사의 성격, 불교신앙을 밝히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함
- 소조상은 형태나 문양, 제작기법의 측면에서 중국 낙양 영령사(永寧寺),
부여 정림사지(定林寺址), 일본 가와하라데라(川原寺) 등에서 출토품과
비교·검토하여 백제를 중심으로 한 중국-일본과 문화교류 양상을 밝힐 수
있는 유용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음
<글.사진 출처 : 문화재청>
익산 제석사지(益山 帝釋寺址.사적 제405호)
익산 제석사지(益山 帝釋寺址.사적 제405호.전북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247-1번지)
백제 무왕이 수도를 왕궁평으로 옮기려고 지은 궁궐 근처에 불교의 수호신인 제석천을 중심 불상으로 모신 절이 있던 자리이다.
기록에 의하면 무왕 40년(639)에 벼락으로 절이 모조리 불에 탔을 때 탑 아래 넣어 두었던 동판에 새긴 금강반야경과 불사리만은 보존되어 다시 절을 지은 후 보관하였다고 한다. 탑터로 생각되는 지역에서 제석사라고 적힌 기와조각이 발견됨으로써 절의 이름이 밝혀졌다. 주목되는 점은 1965년 백제 무왕의 궁터라고 전하는 왕궁평 성안의 석탑에서 발견한 유물과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이 비슷하다는 점이다.
몇 안되는 백제 절터로서 문헌기록에서 절을 지은 시기와 폐허가 된 연대를 알 수 있다는 점, 무왕대의 왕궁평 유적과의 관련성, 백제 유적으로는 처음으로 암막새가 나왔다는 사실로 백제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출처:문화재청)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궁평마을 서편 마을 입구쪽에 있는 제석사지는 지금은 민가에 둘러 싸여 점차 그 흔적을 잃어가고 있다. 이 궁평(宮坪)마을은 백제때의 내궁(內宮)터로 알려졌다. 내궁이란 내원당(內院), 내불당(內佛堂), 내사(內寺)의 성격을 띤 사원이다. 익산지역의 왕궁평성에 궁성을 조성한 백제 무왕은 당시 미래불인미륵신앙을 바탕으로 하여 미륵사를 창건하고, 궁궐 근처에 제석천(帝釋天)을 주로 모시는 내불당으로서 제석사(帝釋寺)를 창건하여 왕실의 번창과 안녕을 기원하고자 하였다.
현재 제석사지에는 목조탑지(木造塔址)가 있었던 자리에 두 조각으로 갈라진 장방형(長方形)의 큰 돌이 있는데 , 그 돌의 중심에는 네모꼴의 구멍이 뚫려있다. 이것은 놀랍게도 탑 아래의 심초석(心礎石)과 같은 것으로 이 네모꼴의 구멍은 바로 사리장치를 두어 던 곳이다. 제석사지는 백제 무왕에 의해서 창건된 사찰로 부근에 ‘제석사’(帝釋寺)명을 새긴 고려시대의 기와가 발견되며, 석등의 지붕돌과 동종(銅鐘)편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1993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에 의해 시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가람배치는 남북 일직선상에 목탑과 금당과 강당을 배치한 전형적인 백제의 가람배치 임이 확인되었다. 금당지(金堂址)의 기단은 이중기단(二重基壇)구조로 기단토(基壇土)는 20cm내외의 두께로 다져쌓기를 하였다. 그리고 강당지의 기단구조는 단층이었으며, 주로 수막새와 암막새, 인각와(印刻瓦), 명문와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그 문양은 중앙에 귀신 얼굴(鬼面)을 배치하고, 좌․우로 인동당초문(忍冬唐草文)이 수려하게 뻗어 있다(출처:익산시청)
목조탑지(木造塔址)
현재 제석사지에는 목조탑지(木造塔址)가 있었던 자리에 두 조각으로 갈라진 장방형(長方形)의 큰 돌이 있는데 , 그 돌의 중심에는 네모꼴의 구멍이 뚫려있다. 이것은 놀랍게도 탑 아래의 심초석(心礎石)과 같은 것으로 이 네모꼴의 구멍은 바로 사리장치를 두어 던 곳이다
목조탑지(木造塔址)에서 본 금당터
목조탑지(木造塔址)에서 본 금당터
목조탑지(木造塔址)
목조탑지(木造塔址)
‘제석사’(帝釋寺)명을 새긴 고려시대의 기와
백제 유적으로는 처음으로 암막새가 나왔다는 사실로 백제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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