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경상북도/성주 37

성주星州가야산伽倻山 만물상萬物相 -원시 그대로의 신비로움. 누가 금강산을 옮겨 놓았을까?-

성주星州가야산伽倻山 만물상萬物相 -원시 그대로의 신비로움. 누가 금강산을 옮겨 놓았을까?- 가야산은 1972년 9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76,256㎢로 소백산맥의 지맥에 있다. 가야산은 한국 12대 명산의 하나이며 예로부터 조선 8경에 속하였다. 주요 봉우리로는 상왕봉(1,430m), 칠불봉(1,433m), 남산제일봉(1,010m) 등이 있으며 그 사이로 아름다운 홍류동 계곡이 흐르고 있다. 경상남도 합천군 쪽의 가야산은 산세가 부드럽지만 경상북도 성주군의 가야산은 산세가 가파른 편이다. 그러므로 몸은 살짝 힘들지 모르지만, 눈은 호강할 수 있으며, 그 대표적인 자원이 가야산 만물상이다. 만물상은 금강산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야산 만물상은 2010년까지 약 40년간 일반인의 출입이 금..

경상북도/성주 2023.06.07

성주 보월동 삼층석탑(星州甫月洞三層石塔)

성주보월동삼층석탑(星州甫月洞三層石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경북 성주군 수륜면 보월리 852번지) 무너져 땅 속에 파묻힌 것을 1979년에 복원해 놓은 석탑으로, 바닥돌 위로 2층의 기단(基壇)을 높직하게 마련하고,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쌓아 올렸다. 기단은 아래·위층 모두 각 면의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본 떠 새겼다. 탑신부의 각층 몸돌은 모서리에만 기둥조각을 두었다. 지붕돌은 밑면에 5단씩의 받침을 두었고, 윗면의 경사는 비교적 느리게 흐르고 있으며,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 네 귀퉁이에서 희미하게 위로 들려 있다. 전체적인 양식이나 조각기법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출처 : 문화재청)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보월리 탑안마을 위쪽에 신라시대 양식의 석탑이 있다. ..

경상북도/성주 2021.11.18

성주 법수사지 삼층석탑(星州 法水寺址 三層石塔)

성주 법수사지 삼층석탑(星州 法水寺址 三層石塔. 보물 제1656호. 경북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1215-1번지) 성주 법수사지 삼층석탑은 신라 애장왕(800~809년) 때 창건한 법수사지(法水寺址)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지는 가야산 계곡을 석축으로 단을 조성하여 자리 잡고 있다. 사역은 남북 150m, 동서 150m 정도이고 크게 세 단으로 나뉘어져 있다. 금당지로 추정되는 축대 아래에는 백운동마을이 자리잡고 있으며, 마을 앞에는 당간지주가 고목의 뿌리에 일부 쌓여 있다. 석탑의 높이는 5.8m이며, 상․하 2층 기단에 3층의 탑신부를 올린 양식으로 노반 이상의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으나 보존 상태는 대체로 양호하다. 석탑은 규모가 작아지고 하층기단이 높고, 안상이 음각된 점 등의 9세기 후반기 특징..

경상북도/성주 2021.04.19

법수사지당간지주(法水寺址幢竿支柱.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7호)

법수사지당간지주(法水寺址幢竿支柱.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7호.경북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1316번지)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면 이곳에 당이라는 깃발을 걸어둔다. 이 깃발을 꽂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일컫는다. 드물게 당간이 있으나 대부분 두 기둥만 남아있다. 법수사의 옛 터에 자리한 이 당간지주는 직사각형의 돌기둥 2개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전체적으로 우아하고 간결하며 단아한 모습으로, 당간지주의 계보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출처 : 문화재청) 이 당간지주는 신라 애장왕(哀莊王) 3년(802)에 창건된 사찰인 법수사의 당간지주로 폐사지의 석축 아래쪽으로 약 200m 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경상북도/성주 2021.04.18

감응사(感應寺)

감응사(感應寺)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영취산(靈鷲山)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802년(신라 애장왕 3) 보조국사 체징(體澄)이 창건하였다. 창건설화에 따르면 애장왕이 늘그막에 왕자를 낳았는데, 왕자는 날 때부터 눈이 나빠 앞을 볼 수 없었다. 온갖 약을 다 써보았으나 소용이 없자 왕비는 명산을 찾아다니며 기도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도인이 꿈에 나타나 말하기를, ‘내일 아침 문 앞에 독수리가 나타날 것이다. 그 독수리를 따라가면 약수가 있는 곳에 이른다. 그 약수로 눈을 씻고 약수를 마시면 눈병이 나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다음날 도인의 말대로 독수리를 따라가니 과연 약수가 있었고 약수로 왕자의 눈을 씻고 마시게 하였더니 눈병이 나았다. 애장왕은 이를 부..

경상북도/성주 2020.08.30

성주星州 선석사禪石寺

성주星州 선석사禪石寺 신라 효소왕 때 의상국사(義湘大師)가 화엄 10찰 중 하나로 현재 위치보다 서쪽에 창건하여 절 이름을 신광사(新光寺)라 하였으나 고려 공민왕 10년(1361)에 나옹국사(懶翁大師)가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여 선석사라 하였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전소하여 조선 숙종 10년 (1684)에 혜묵(惠默), 나헌(懶軒) 등이 중창하였으며, 1725년(영조 1년)에 서쪽의 옛터로 이건하였다가 1804년 서윤(瑞允)이 지금의 자리로 이건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 명부전, 칠성각, 산신각, 요사채 등이 있다. 세종의 왕자 태실이 있는 태봉에서 약 200m 거리 에 위치하고 있는 이 절은 태실을 보호하는 사찰로 지정되어 현존하고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다포집이다.(참..

경상북도/성주 2020.08.30

회연서원(檜淵書院.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1호)

회연서원(檜淵書院.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1호. 경북 성주군 수륜면 동강한강로 9 (신정리))한강 정구(鄭逑)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세운 서원이다. 조선 인조 5년(1627)에 제자들이 세운 회연초당이 있던 자리에 짓고 회연서원이라 이름 하였다. 그 후 숙종 16년(1690)에 임금으로부터 ‘회연(檜淵)’이라는 이름과 토지·노비를 하사 받았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서원 중에서도 중심이 되는 서원 중의 하나로 선생의 문집판 『심경발휘』가 보관되어 있고 현판은 한석봉이 쓴 것이다. 대경재·명의재·양현청 등의 건물이 있었으나 양현청은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고, 해마다 2차례 제사를 지내고 있다.(출처 : 문화재청) ..

경상북도/성주 2020.08.30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星州 世宗大王子 胎室)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星州 世宗大王子 胎室. 사적 제444호. 경북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산8번지) 세종대왕자태실은 성주군 월항면 선석산 아래 태봉(胎峰) 정상에 있으며, 세종의 적서(嫡庶) 18왕자와 세손 단종의 태실 등 19기가 군집을 이루고 있다. 태실은 왕실에 왕자나 공주 등이 태어났을 때 그 태를 넣어두던 곳을 말한다. 전체 19기중 14기는 조성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한 다섯 왕자의 태실의 경우 방형의 연꽃잎이 새겨진 대석을 제외한 석물이 파괴되어 남아 있지 않으며, 세조 태실의 경우에는 즉위한 이후 특별히 귀부를 마련하여 가봉비(加封碑)를 태실비 앞에 세워두었다. 조선 세종 20년(1438)에서 24년(1442)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태봉은 당초 성주이씨의 중시조..

경상북도/성주 2020.08.29

한강 정구 신도비(寒岡 鄭逑 神道碑)

한강 정구 신도비(寒岡 鄭逑 神道碑.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12호. 경북 성주군 수륜면 동강한강로 9 (신정리)) 이 비는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의 외증손으로 조선 성리학사에서 확고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의 신도비(神道碑)이다. 비석은 인조 11년(1633)에 수륜면 수성리 갓말마을 뒷산인 창평산 묘소 부근에 세워졌다가 한강 정구의 묘소를 성주읍 금산리 인현산으로 이장하게 되면서, 현종 3년(1668)에 현재의 위치인 회연서원(유형문화재 제51호) 경내로 옮겨 세워졌다. 신도비는 비신(碑身), 이수(螭首), 귀부(龜趺)가 완전하게 잘 남아 있다. 이수에는 쌍룡문(雙龍紋)과 여의두문(如意頭紋)이 깊이 새겨져 있고, 귀부는 귀갑문(龜甲紋)이 양각으로 얕..

경상북도/성주 2020.08.28

백년설(이창민) 노래비 -성주고등학교 교정. 성주 성밖 숲 -

백년설(이창민) 노래비를 찾아서 경상북도 성주에서 출생하여 성주농업보습학교를 졸업했다. 학창 시절부터 문학과 연극에 관심을 가졌다. 1934년에 우연한 기회로 첫 데뷔한 그는 1938년 일본에서 〈유랑극단〉을 취입하여 가수 데뷔하였고 〈두견화 사랑〉, 〈마도로스 수기〉 등을 연속 유행시켰다. 대표곡은 1940년 발표되어 이후 오랫동안 널리 불린 〈나그네 설움〉, 〈번지없는 주막〉이며, 이 밖에도 〈삼각산 손님〉, 〈고향 길 부모길〉, 〈남포불 역사〉, 〈눈물의 백년화〉, 〈산팔자 물팔자〉, 〈천리정처〉, 〈아주까리 수첩〉 등 히트곡이 많이 있다.

경상북도/성주 2020.08.27

6.25 참전 학도병 충훈비(성주 중·고등학교)

6.25 참전 학도병 명단 김덕조 김봉찬 김상옥 김상천 김용수 김점환 김진수 김판석 노태연 도재격 도재식 류재변 박만수 박희수 배기종 배기철 배우덕 배장춘 배재천 배재호 배재화 배재환 배춘석 배태영 배판린 백규현 백도흠 백승학 백영기 백예기 백욱기 백장현 백태록 서정호 서정훈 신동욱 신문식 여상배 여식동 여임동 오재수 유상태 유성환 유희철 이기호 이담식 이만흥 이복상 이상석 이수권 이원순 이임술 이재목 이재방 이재환 이정화 이종록 이하영 최학수 허 윤 황태성 6.25 참전 학도병 충훈비 취지문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남침으로 침공 3일 만에 서울이 점령되고 한 달만에 낙동강 연안까지 밀고 내려왔으며, 그로 인해 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의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학교를 떠나 뿔뿔이 흩어져 대..

경상북도/성주 2020.08.27

동방사지칠층석탑(東方寺址七層石塔)

동방사지칠층석탑(東方寺址七層石塔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60호. 경북 성주군 성주읍 예산리 269-10번지) 동방사터에 남아 있는 7층 석탑으로, 원래는 9층이었다고 전한다. 절터는 성주읍내에서 왜관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 약 1㎞ 떨어진 도로변에 자리잡고 있는데, 신라 애장왕 때 창건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절이 모두 불타버리고 현재는 이 석탑만 남아 있다. 기단(基壇)의 네 면과 탑신(塔身)의 각 몸돌에는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으며, 특히 1층 몸돌에는 문(門)모양을 깊게 새겼다. 1 ·2 ·3층 지붕돌 네 귀퉁이에는 연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는 것이 특징으로, 고려시대의 자유로운 조각양식이 엿보인다. 탑이 자리하고 있는 성주지역의 지형은 소가 누워서 별을 바라보는 형상으로, 이 때문에 냇물이 성주읍을 돌..

경상북도/성주 2020.08.25

통일신라부터 조선 시대까지 이어진 대규모 사찰, 성주 법수사지 발굴 현장 공개

통일신라부터 조선 시대까지 이어진 대규모 사찰, 성주 법수사지 발굴 현장 공개 - 2015.11.27. 오전 11시 / 발굴현장 일반 공개 -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의 허가를 받아 성주군(군수 김항곤)과 (재)대한문화재연구원(원장 이영철)이 6월부터 진행 중인 ‘성주 법수사지(星州 法水寺址)’ 발굴조..

경상북도/성주 2015.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