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을 넘어, 보이지 않는 삶의 맥락을 기록하다."

경주/남산자료실 92

경주 남산 서쪽 자락에 자리한 삼불사(三佛寺) 경내에 있는 석탑

경주 남산 서쪽 자락에 자리한 삼불사(三佛寺) 경내에 있는 석탑1. 석탑의 구조와 형태적 특징 기단부 (탑의 아랫부분): 현재 탑의 아래쪽을 보면, 제대로 된 정식 기단이라기보다는 다듬어진 커다란 사각형 석재를 쌓아 그 위에 탑신을 올린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발견된 석재들을 모아 짜 맞추어 복원하는 과정에서 기단부의 원래 부재들이 일부 유실되었거나 간략화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탑신부 (탑의 몸돌과 지붕돌): 몸돌(탑신석)과 지붕돌(옥개석)이 층층이 쌓여 있습니다. 지붕돌 아랫면의 받침 수가 층마다 조금씩 다르게 보이거나 부재의 두께, 질감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 하나의 탑이었던 부재 외에도 주변에 흩어져 있던 다른 탑의 부재들이 함께 조립되었을 가능성이 엿보입니다. 상륜부 ..

경주 서악동 삼층석탑 (慶州 西岳洞 三層石塔)

경주 서악동 삼층석탑 (慶州 西岳洞 三層石塔.보물 제65호.경북 경주시 서악동 705-1) 통일신라시대 모전탑 계열에 속하는 탑으로, 무열왕릉 동북쪽 비탈진 곳에 서 있다. 모전탑은 전탑(전탑:흙으로 구운 벽돌로 쌓은 탑)을 모방한 것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린 것을 이른다. 기단(基壇)은 주사위 모양의 커다란 돌덩이 8개를 2단으로 쌓은 독특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 윗면에 1층 몸돌을 받치기 위한 1장의 평평한 돌이 끼워져 있는데, 남산리 석탑에 3단의 층급이 있는 것에 비하면 간략화된 것이다. 탑신부(塔身部)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1장의 돌로 되어 있고, 1층 몸돌에는 큼직한 네모꼴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얇게 파서 문을 표시하였다. 문의 좌우에는 1구씩의 인왕상(仁..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慶州 南山 神仙庵 磨崖菩薩半跏像)

경주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慶州 南山 神仙庵 磨崖菩薩半跏像. 보물 제199호.경북 경주시 남산동 산36-4번지) 경주 남산은 유물·유적의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가면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후기까지의 불상들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 그 중에 하나인 높이 1.4m의 마애..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慶州 南山 三陵溪 石造如來坐像)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慶州 南山 三陵溪 石造如來坐像.보물 제666호.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산 72-6) 삼릉계곡의 왼쪽 능선 위에 있는 이 석조여래좌상으로 화강암을 조각하여 만들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근에는 큼직한 상투 모양의 머..

삼릉계곡마애관음보살상 (三陵溪谷磨崖觀音菩薩像)

삼릉계곡마애관음보살상 (三陵溪谷磨崖觀音菩薩像.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호.경북 경주시 남산순환로 341-126 (배동)) 경주 남산의 삼릉계곡에 있는 이 불상은 돌기둥 같은 암벽에 돋을새김한 것으로 연꽃무늬 대좌(臺座)위에 서 있는 관음보살상이다.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만면에 미소를 띤 얼굴은 부처의 자비스러움이 잘 표현되어 있다. 손에는 보병(寶甁)을 들고 있어 보관과 함께 이 불상이 현세에서 자비로써 중생을 구제한다는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다. 불상 뒷면에는 기둥 모양의 바위가 광배(光背) 역할을 하고 있는데, 자연미에 인공미를 가한 느낌이다.이 불상은 정확한 연대와 조각자가 알려져 있지 않으나, 통일신라시대인 8∼9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의 동편에 위치하고 있는 머리 없는 불..

삼릉계 석조여래좌상(냉골 석조여래좌상. 삼릉곡 제2사지 석조여래좌상)

삼릉에서 개울을 따라 계곡으로 약 500m쯤 올라가면 길 옆 바위 위에 머리 없는 석불좌상이 앉아 계신다. 높이가 1.6m에 무릎 너비가 1.56m나 되는 큰 좌불이다. 계곡에 묻혀 있다 1964년 발견되어 지금의 장소에 옮겨 놓은 것이기 때문에 마멸이 거의 없고 옷 주름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머..

경주남산 용장골 1사지 약사여래좌상(藥師如來坐像)

경주남산 용장골 제1사지에서 불두가 떨어진 채 1929년 경주박물관으로 옮겨져 종각 옆에 안치되어 있엇다. 그 후 38년이 지나 1967년 경 이 불두도 누군가의 손을 거쳐서 박물관으로 왔다. 그러나 이 불두가 약사여래의 불두인 줄은 아무도 몰랐다. 불두는 박물관 뜰 모과나무 아래 자신의 몸체를 마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