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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남산자료실

헌강왕릉과 정강왕릉

노촌魯村 2007. 5. 10. 20:19

 

헌강왕릉(사적 제187호)

 

 신라 제49대 헌강왕(재위 875∼886)의 무덤이다. 헌강왕은 왕위에 있는 동안 태평성대를 이루었는데, 거리마다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일본왕이 황금을 바칠 정도였다고 한다. 높이 4.2m, 지름 15.3m의 둥근형태로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으로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무덤 밑둘레에 돌을 4단으로 쌓았다. 일찌기 도굴되었으며 비에 의한 피해로 긴급조사를 하였다. 관이 놓여 있는 방은 네모 형태로 천장은 둥글게 모아져 있는 활천장(궁륭상천장)이고, 이 방과 연결된 통로인 널길(연도)은 동쪽에 있어 전체적으로 ‘ㄱ’자형이다. 여기서 꽃무늬 토기도 나왔다. 무덤 보호를 위해 다듬은 돌을 4단으로 쌓은 형태는 신라 왕릉에서는 특이한 형식으로 정강왕(886∼887)릉에서도 보인다. 그러나 내부구조나 출토된 토기는 8세기 이후로는 내려오지 않는 형식이어서 헌강왕의 재위기간이었던 9세기와는 큰 차이가 있다.(문화재청)

 

 

 헌강왕릉 답사 온 학생들

정강왕릉(사적 제186호)

 

 경문왕의 둘째 아들인 신라 제50대 정강왕(재위 886∼887)의 무덤이다. 정강왕은 형인 헌강왕에 이어 886년 7월에 왕위에 올랐으나 887년 7월에 병으로 죽어 왕위에 있던 기간이 만 1년밖에 되지 않았다.
무덤의 외형은 흙으로 덮은 둥근 형태로,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밑둘레에 3단으로 돌을 쌓았다. 그 중 제일 밑단만이 밖으로 약간 나왔으며, 무덤 앞에는 돌단이 있는데, 그 위에 돌로 만든 작은 제삿상이 있다. 무덤의 구조는 헌강왕릉과 같다. 그러나 1993년 헌강왕릉의 내부조사 결과, 그 구조와 나온 유물들이 8세기 이전의 형식이어서 이 왕들이 왕위에 있던 9세기와는 큰 차이가 있다. (문화재청)

 

헌강왕릉1.p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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