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서기명석(壬申誓記銘石, 국립경주박물관)
임신서기석은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길쭉한 형태의 점판암제(粘板巖製)로, 한 면에 5줄 74글자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비석의 첫머리에 ‘임신(壬申)’이라는 간지(干支)가 새겨져 있고, 또한 그 내용 중에 충성을 서약하는 글귀가 자주 보이고 있어 ‘임신서기명석(壬申誓記銘石)’이라 호칭하고 있다.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壬申年六月十六日二人幷誓記天前誓今自
三年以後忠道執持過失无誓若此事失
天大罪得誓若國不安大亂世可容
行誓之 友別先辛未年七月卄二日大誓
詩尙書禮傳倫得誓三年
“임신년 6월 16일에 두 사람이 함께 맹세하여 기록한다.
하느님 앞에 맹세한다.
지금으로부터 3년 이후에 충도(忠道)를 지키고 허물이 없기를 맹세한다.
만일 이 서약을 어기면 하느님께 큰 죄를 지는 것이라고 맹세한다.
만일 나라가 편안하지 않고 세상이 크게 어지러우면 ‘충도’를 행할 것을 맹세한다.
또한 따로 앞서 신미년 7월 22일에 크게 맹세하였다.
곧 시경(詩經)·상서(尙書)·예기(禮記)·춘추전(春秋傳)을 차례로 3년 동안 습득하기로 맹세하였다.”
한자·한문을 받아들여 우리의 표기수단으로 삼을 때 향찰식(鄕札式) 표기, 한문식(漢文式) 표기 외에 훈석식(訓釋式) 표기가 실제로 있었다는 것을 증거해 주는 유일한 금석문 유물로 세속 5계 중의 ‘교우이신(交友以信)’, 즉 신라 젊은이들의 신서(信誓) 관념의 표상물(表象物)이고, 우리 민족의 고대 신앙 중 ‘천(天)’의 성격의 일단을 시사해 주는 자료이다.
명문의 임신년(壬申年)은 552년(진흥왕 13) 또는 612년(진평왕 34)의 어느 한 해일 것으로 보이며 서예사적(書藝史的) 측면에서도 자형과 획법, 그리고 명문의 새김방식에서 6세기 신라시대 금석문(金石文)의 일반적 특징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문화재청)
'경주 > 경주인근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헌덕왕릉 (0) | 2007.06.13 |
---|---|
감은사지 (0) | 2007.06.07 |
수운 최제우의 용담정 (0) | 2007.05.21 |
천군리삼층석탑 (0) | 2007.05.21 |
경주 진평왕릉(慶州 眞平王陵) (0) | 2007.0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