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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군 평사리에 있는 하동고소성(河東姑蘇城). 한산사

노촌魯村 2009. 1. 23. 22:08

 

 고소성 외석문(고소성 올라가는 길)

 하동고소성(河東姑蘇城  사적  제151호 )

신라 때 돌로 쌓은 산성으로 능선을 따라 5각형에 가까운 형태를 띠고 있다. 현재 성 안의 특별한 시설물들은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성의 내력에 대해서는 『하동군읍지』가 유일한 자료이다. 이 기록과 성의 위치 및 규모로 보아 신라가 군사적 목적으로 쌓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5세기 전반 고구려 광개토왕이 신라를 거쳐 왜군을 토벌하면서 남하했을 때 쌓은 고구려 계통의 성으로 보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성벽은 네모나게 다듬은 돌과 자연석을 사용하여 견고하게 쌓았다. 산성의 동·북·서·남면은 성벽이 거의 완전하게 남아있으나, 서남쪽 섬진강을 굽어보는 구간은 거의 허물어져서 돌무더기만 남아있다. 지리산의 험한 산줄기를 뒤에 두고 섬진강이 앞을 가로막는 천연의 요새로서 남해에서 호남지방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길목이다. 이러한 지형을 이용하여 크고 견고하게 지은 산성이다. (출처: 문화재청)

 고소성에 본 섬진강

 

 

 

 고소성에서 본 평사리와 악양들판

 고소성에서 상류쪽으로 본 섬진강

 고소성에서 본 평사리와 악양들판

 

 

 

 

 

 

 

 

고소성

먼 옛날 삼국시대의 아픈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는 고소산성(姑蘇山城)은 정확한 축조시기 등에 관한 유래는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천연의 요충지에 위치해 있는 만큼 1000여 년 전 삼국시대 당시 이 요충지를 중심으로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으리라 추측해 볼 수 있다. 지난 66년 사적 제151호로 지정된 고소산성은 하동에서 화개장터로 향하는 국도 19번을 따라 차편으로 20여분 거리로 지리산의 여맥이 형제봉에서 흘러 섬진강으로 떨어지기 직전 해발 300m에 위치해 있다. 동북으로 지리산 준령을 등지고 있으며 서남으로는 섬진강과 동정호(洞庭湖)를 발아래 둔 천혜의 요새다. 남해에서 호남으로 통하는 통로의 목을 쥐고 있는 셈이다. 이 일대가 지금은 경남과 전남의 경계지점(정확한 경계선은 화개장터를 조금 지나 불무장등 능선이 끝나는 지점이다)이듯 삼국시대 당시는 신라와 백제의 접전지역이었다 한다. 삼국시대 당시 요충지임에 틀림없는 이곳에 성이 축조된다는 건 매우 당연한 이치다. 산성 둘레는 800여m. 장방형(長方形)바위를 견고하게 쌓아올린 석성(石城)이다. 남북 양쪽에 성문을 설치했으며 성벽 높이는 3.5~4.5m로 아래폭이 6m, 상면폭이 2m인 사다리 모양이다. 성의 축조 유래는 다양하게 전해지고 있는데 하동군지에 따르면 신라의 김춘추 장군이 백제를 공격할 목적으로 당나라에 원병을 청해 축조, 나당연합군의 주둔기지로 활용하면서 백제와 왜(倭)의 협력을 차단시켰다고 전한다. 특히 이곳에서 소정방(蘇定方)군이 주둔, 주력부대를 지휘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설은 당시 나당연합군과 주력부대가 금강을 침공할 때 소정방이 군을 지휘했던 점과 악양 일대의 지명이 중국의 그것과 흡사해 산성이름에 소정방을 끌어들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신빙성이 덜하다는 주장이 있다. 오히려 신라가 백제와 왜(倭)와의 협력을 차단할 목적으로 그 이전에 산성을 축조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아무튼 고소산성은 신라인에 의해 백제를 견제 또는 침공할 목적으로 축조했음을 엿볼 수 있다.

 

이외에 고소산성의 축조 유래는 소송이(蘇松伊)에 얽힌 전설도 전해져 오고 있다. 蘇장군의 부친과 모친 경주 김씨는 후손이 없어 걱정을 하던 중 어느 날 김씨 꿈에 신령이 나타나 康州(지금의 진주) 부근으로 이사를 하면 후손을 볼 것이라고 하여 그대로 했더니 아들을 얻었다 한다. 그후 蘇장군이 성장, 외성(外城)을 쌓으라는 어머니 金씨의 명에 따라 산성을 축조했는데 蘇장군의 성씨를 따 고소산성이라 부른다는 전설이다.

 

형제봉 기슭의 고소산성에 얽힌 역사의 애환과 설화 못지않게 형제봉 주변에서 지리산 자락에서 가장 비옥한 대지인 평사리 들녘을 주무대로 한 소설 토지의 배경이 서려있음을 음미해 볼 수 있어 찾는 이들을 더욱 흥미롭게 하고 있다. 

 한산사에서 본 섬진강

창건배경 및 역사
한산사 창건에 대한 자세한 내력은 전해지지 않으며 사찰에서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화엄사(544년)와 창건연대가 비슷하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없다. 당시 화엄사 스님 한 분이 중국의 악양 고소성의 지명이 같은 하동에 한산사를 지었다고 전해지며, 이후에 빈대가 많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중국의 한산사가 위치한 곳은 절경을 자랑하는 곳으로 시인 장계(張繼)가「풍교야박(楓橋夜泊)」의 시를 읊어 더욱 유명한데, 하동의 한산사 또한 그 절경이 중국의 한산사를 빼어 닮았을 뿐 아니라, 지역의 모습 또한 꼭 닮았다고 한다. 1960년경에 송상형 스님이 중창 불사를 하여 대웅전, 약사전, 삼성각 등의 전각이 오늘이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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