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신장군묘 가는 길의 벗꽃나무와 개나리
흥무문
김유신장군묘(사적 제21호 )
경주 송화산 동쪽 구릉 위에 자리잡고 있는 신라 장군 김유신장군의 무덤이다. 김유신(595∼673)은 삼국통일에 중심 역할을 한 사람으로, 김춘추(후에 태종무열왕)와 혈연관계를 맺으며 정치적 발판을 마련하였고, 여러전투와 내란에서 큰 공을 세웠다. 660년에 귀족회의의 우두머리인 상대등이 되어 백제를 멸망시켰으며, 668년에는 신라군의 총사령관인 대총관(大摠管)이 되어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의 침략을 막아 신라 삼국통일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무덤은 지름이 30m에 달하는 커다란 규모이며, 봉분은 둥근 모양이다. 봉분 아래에는 둘레돌을 배치하고 그 주위에는 돌난간을 둘렀는데, 둘레돌은 조각이 없는 것과 12지신상을 조각한 것을 교대로 배치하였다. 12지신상은 평복을 입고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몸은 사람의 형체이고 머리는 동물 모양이다. 조각의 깊이는 얕지만 대단히 세련된 솜씨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처럼 무덤 주위의 둘레돌에 12지신상을 조각하는 것은 통일신라 이후에 보이는 무덤양식으로, 성덕왕릉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김유신이 별세 후 흥덕왕은 그를 흥무대왕으로 받들고, 왕릉의 예를 갖춰 무덤을 장식한 것으로 보인다. 또 『삼국사기』에는 김유신이 별세하자 문무왕이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르고 그의 공덕을 기리는 비를 세웠다고 전한다. 그러나 현재 그 비는 전하지 않고, 조선시대에 경주부윤이 세운 비만 남아있다(문화재청 자료)
1710년 경주부윤이 세운 '신라태대각간 김유신묘(新羅太大角干 金庾信墓)'의 비(碑)
신라태대각간김유신묘비문 일부
흥무왕릉비
김유신장군묘 12지신상(쥐)
김유신장군묘 12지신상(소)
김유신장군묘 12지신상(호랑이)
김유신장군묘 12지신상(토끼)
김유신장군묘 12지신상(용)
김유신장군묘 12지신상(뱀)
김유신장군묘 12지신상(말)
김유신장군묘 12지신상(양)
김유신장군묘 12지신상(원숭이)
김유신장군묘 12지신상(닭)
김유신장군묘 12지신상(개)
김유신장군묘 12지신상(돼지)
12지의 열두 동물을 각 시간과 그 방위에 배열하게 된 관련 설화가 여럿 있는데, 동물의 발가락 수와 그때 그 시간에 나와서 활동 하는 동물을 들어 표시했다는 것이 그 중 가장 설득력이 있다.
12지 동물 중 맨 처음에 오는 쥐는 앞 뒤 발가락 수가 다른데, 앞발은 홀수, 뒷발은 짝수로 특수하다고 해서 맨 먼저 자리를 잡았고 그 뒤로 소(4), 호랑이(5), 토끼(4), 용(5), 뱀(0), 말(7), 양(4), 원숭이(5), 닭(4), 개(5), 돼지(4)의 순이다. 이 순서는 발가락의 숫자가 홀수와 짝수로 서로 교차하여 배열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고대 중국인들은 시간을 표시할 때 그때그때 나와서 활동하는 동물을 하나 들어 그 시간을 나타냈는데, 십이지 동물은 바로 여기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축시(01 - 03시) : 밤새 풀을 먹은 소가 한참 반추하며 아침 밭갈이 준비를 할 때
인시(03 - 05시) : 하루 중 호랑이가 제일 흉악한 때.
묘시(05 - 07시) : 해뜨기 직전에 달이 아직 중천에 걸려 있어 그 속에 옥토끼가 보이는 때
진시(07 - 09시) : 용들이 날면서 강우 준비를 하는 때.
사시(09 - 11시) : 이 시간에 뱀은 자고 있어 사람을 해치는 일이 없는 때.
오시(11 - 13시) : 이 시간에는 고조에 달했던 ‘양기’가 점점 기세를 죽이며 ‘음기’ 가 머리를 들기 시작하는데, 말은 땅에서 달리고 땅은 ‘음기’이므로 말을 ‘음기’의 동물로 보고 이 시각을 말과 연계시킨다.
미시(13 - 15시) : 양이 이때 풀을 뜯어먹어야 풀이 재생하는데 해가 없다
신시(15 - 17시) : 이 시간에 원숭이가 울음소리를 제일 많이 낸다.
유시(17 - 19시) : 하루 종일 모이를 쫓던 닭들이 둥지에 들어가는 때
술시(19 - 21시) : 날이 어두워지니 개들이 집을 지키기 시작하는 때
해시(21 - 23시) : 이 시간에 돼지가 가장 단잠을 자고 있는 시간이다.
김유신장군 신도비각
김유신장군 신도비
김유신장군 신도비
김유신장군 신도비
김유신장군 신도비
주차장 옆에 있는 하마비
김유신장군 묘 옛 사진(일제시대)
숭무전
금산교육관
금산재
십이지상-돼지(8세기. 전 김유신장군 묘)
충천 진천 길상사에 모셔져 있는 김유신 장군 영정(1972년 월전 장우성 화백)
영정을 그릴 당시 김유신 장군의 원래 모습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가락국 시조인 김수로 왕의 12세손으로 시조 할머니인 허황후가 인도 사람인 관계로 남방계 혈통으로 표현하였으며 삼국사기에 기록된 장군의 얼굴표정을 참조하고 후손 삼십 인의 얼굴을 합성하여 표준얼굴을 최종확정하였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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