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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추사 김정희선생 유적(金正喜先生遺蹟)

노촌魯村 2009. 9. 24. 08:59

 

김정희선생유적(金正喜先生遺蹟.시도기념물 제24호 (예산군).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799외 13필)

이 곳은 조선후기 위대한 실학자이며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1786∼1856) 선생의 유적지이다. 선생은 순조 9년(1809)에 생원이 되고 그후 규장각 대표 충청우도 암행어사, 헌종 2년(1836)대사성 이조참판에 이르렀다. 선생은 일찍이 청국을 통하여 국제문화를 호흡하고 금석학 및 고증학을 깊이 연구 국학의 문을 열었다. 특히 서예에 뛰어나 추사체를 이룩하였고 묵화에도 조예가 깊어 많은 작품을 남기었다. 유적지내에는 고택, 화순옹주 홍문, 백송, 김정희묘 등이 있다. (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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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사고택 사랑채

 

 




석년이라 각자된 석주

이 석주는 그림자를 이용하여 시간을 측정하는 해시계로 추사가 직접 제작하였다하며, 추사 선생이 쓴 것을 아들 상우가 각자한 것이라 한다.

세한도

 

 

 

 

 주        련

   

 

 갓을 쓴 선비가 바짝 처진 눈초리에 방끗 웃고 있는 두둥실한 얼굴 용(容)자


 

 

 

 

 

 

 

 

 

 

 

 

 

 

 

 

 

 

 

 

 

 

 안채 대문

안채





 


 사당

 




추사 영정

 

사당 앞의 백송

 





추사 김정희 묘

 

김정희묘(金正喜墓.문화재자료 제188호 (예산군) )

묘지는 충청남도 예산에 있는 추사의 옛 집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2단으로 만들어져 있다. 묘 앞에는 상석이 놓여 있고, 오른쪽에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추사 기념관

 


 

 

 






 

 

김정희선생유물<혼서지.생원시권.농상지실>(金正喜先生遺物<婚書紙.生員試卷.農祥之室>시도유형문화재 제44호 (예산군) )

 

 

 

화순옹주홍문(和順翁主紅門.시도유형문화재 제45호 (예산군))

화순옹주의 정절을 기리는 열녀문이다. 추사 김정희의 증조할머니이자 조선 영조(재위1724∼1776)의 둘째딸인 화순옹주는 남편인 김한신이 3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아버지 영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슬픔을 이겨내지 못한 옹주는 결국 세상을 떠났다. 영조는 남편에 대한 옹주의 정절을 칭찬하면서도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은데 대한 아쉬움 때문에 열녀문을 내리지 않았다. 지금의 열녀문은 훗날 정조(재위 1776∼1800)가 내린 것이다. 김정희유적지 안에 위치하고 있는데, 홍문 외에 옹주와 김한신의 합장묘·김정희 묘·김정희 고택이 있고 천연기념물 제106호로 지정된 백송이 있다. 묘막터는 원래 53칸의 큰 건물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불에 타서 없어지고 주춧돌만 남아있다. 앞면 8칸·옆면 1칸 규모이며 근래에 담장을 설치하였다

 「홍문 현판」
烈女綏祿大夫月城慰兼五衛都摠府都摠管贈謚貞孝公金漢藎配和順翁主之門上之七年癸卯一月十二日特命旌閭




 

옹주와 김한신의 합장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