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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궁남지(宮南池)

노촌魯村 2011. 4. 16.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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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남지(宮南池.사적 제135호.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17외 )

부여 남쪽에 위치한 백제의 별궁 연못이다. 백제 무왕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궁궐의 남쪽에 연못을 팠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근거로 궁남지라 부른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20여 리나 되는 긴 수로를 통해 물을 끌어들였고,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었으며 연못 가운데에 방장선산을 상징하는 섬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수로와 물가·연못 속의 섬이 어떤 모양으로 꾸며져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못의 중앙부에 석축과 버드나무가 남아있어 섬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주변에서 백제 토기와 기와 등이 출토되었다. 연못의 규모 또한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당시에 뱃놀이를 했다는 기록이 있어 그 크기를 짐작할 뿐이다.
고대 중국사람들은 동해바다 한가운데에 일종의 이상향인 신선이 사는 3개의 섬으로 삼신산이 있다고 생각하여, 정원의 연못 안에 삼신산을 꾸미고 불로장수를 희망했다고 한다. 궁남지는 이것을 본떠 만든 것으로 신선정원이라 불린다. 연못 동쪽에 당시의 별궁으로 보이는 궁궐터가 남아 있다. 현재 연못 주변에는 별궁 안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우물과 주춧돌이 남아있고, 연못 안에는 정자와 목조다리를 만들어 놓았다.(문화재청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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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남지 주차장 부근의 서동요비

원문 현대역

善化公主主隱
他 密只 嫁良 置古
薯童房乙
夜矣 卯乙 抱遣 去如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사귀어(통정하여 두고)
맛둥[薯童]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ball03a.gif 연대 : 신라 26대 진평왕(6세기)
ball03a.gif작가 : 서동(백제 무왕)
ball03a.gif형식 : 4구체 향가, 동요
ball03a.gif 성격 : 참요(讖謠)적, 직설적, 주술적, 동요적, 동화적
ball03a.gif 주제 : 선화 공주의 부정한 사랑, 아내를 얻기 위한 계략
ball03a.gif 내용 : 선화 공주를 아내로 맞기 위하여 선화 공주의 거짓 비행을 계략적으로 퍼뜨림.
ball03a.gif의의 : ① 현전 최고(最古)의 향가 작품 ② 배경설화에 신화적인 요소가 있는 향가
          ③ 향가 중 민요체를 대표하는 작품 ④ 동요가 향가 형태로 정착된 작품

 백제 제 30대 무왕의 이름은 장이다. 무왕의 어머니는 과부였는데, 서울 남쪽 연못가에 집을 짓고 홀로 살던중에 그 못의 용과 정을 통하여 장을 낳았다. 무왕의 어릴적 이름은 서동 또는 맛둥이였는데 항상 마를 캐다 팔아 생활했으므로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그렇게 부른것이다. 서동은 재능이 뛰어나고, 도량이 넓고 깊어 헤아리기 어려웠다. 서동은 신라 진평왕의 셋째공주 선화가 세상에 둘도 없이 아름답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래서 그는 머리를 깍고 그리고 아이들에게 마를 나누어 주니 아이들은 호감을 가지고 그를 따랐다. 서동은 마침내 한편의 동요를 지었다. 그러고는 마을의 아이들을 꾀어 자기가 지은 동요를 부르며 다니게 하였다. 그 노래는 다음과 같다.
善化公主主隱 他密只嫁良置古 薯童房乙 夜矣卯乙抱遣去如(선화공주주은 타밀지가량치고 서동방을 야의묘을포견거여)
동요는 거리에서 거리로 마을이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번져 드디어 대궐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자 백관(모든 벼슬아치)들이 동요의 내용을 사실로 믿고, 선화공주의 옳지못한 행동을 탄핵하여 공주를 먼 시골로 귀양 보내도록 했다. 공주가 누명을 쓰고 귀양을 갈때 왕후는 노자로 황금 한 말을 주었다. 공주가 귀양지로 가는 길에 서동이 나타나 공주를 맞았다. 그러고는 공주에게 절을 올리고 공주를 모시고 가겠노라고 하였다. 공주는 그가 어디에서 온 어떤사람인지 전혀 알지도 못 했지만 어쩐지 그가 미덥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리하여 서동은 공주를 수행하게 되었고 둘은 몰래 정을 통하게 되었다. 그런 후에 공주는 서동이라는 이름을 듣고서 그동요가 실현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두사람은 함께 백제로 돌아갔다. 선화공주는 왕후인 어머니가 준 황금을 꺼내어 놓고 앞으로 살이갈 일을 의논하려 하는데, 서동이 큰소리로 웃으며 물었다. "이게 무슨 물건이오?" "이것은 황금입니다. 이 황금만 있으면 평생동안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공주의 말을 듣고 서동이 말했다. "내가 어려서부터 마를 캐던 곳에는 이런 것이 흙처럼 쌓여있소" 공주는 이 말을 듣고 깜짝놀라며 말했다.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입니다. 그대가 지금 황금이 있는곳을 알고 있다면 그 보물을 모아 우리 부모님이 계신 궁궐로 실어 보내는 것이 어떨까요? 서동은 그러자고 했다. 이렇게해서 서동은 그 황금을 모아들였다. 둔덕만큼이나 황금을 쌓은 다음 서동 과 공주는 용화산 사자사에 있는 지명법사에게로가서 황금을 옳겨갈 방법을 물어보았다. 지명법사가 말했다. "내가 신통력으로 보내 드리리다. 황금을 가져오시오" 선화공주는 편지를 쓴다음 하룻 밤 사이에 황금과 공주의 편지를 신라의 궁중에 옮겨다 놓았다. 진평왕은 그 신비스런 변화를 이상히 여기고 서동을 존경했으며 항상 글을 띄워 서동의 안부를 물었다. 이 때문에 서동은 인심을 얻었고, 왕위에 올랐다.(지역정보포털 자료)  

善化公主主隱

선 화 공 주 주 은

선화공주님은

 

他 密只  嫁良 置古

타  밀 지     가 량   치 고

남  몰래     사귀어(통정하여 두고)

 

薯童房乙

서 동 방 을

맛둥[薯童]도련님을

 

夜矣 卯乙  抱遣 去如

야 의   묘 을    포 견   거 여

밤에    몰래     안고    간다

Daum지도 스카이뷰에서 캡쳐 후 편집(위의 사진 클릭하시면 원본 크기의 사진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