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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백담사(百潭寺)

노촌魯村 2011. 4. 17.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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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이다. 이 절의 기원은 647년(진덕여왕 1)에 자장(慈藏)이 창건한 한계사(寒溪寺)이다. 690년(신문왕 10)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719년(성덕왕 18)에 재건했다. 785년(원성왕 1) 다시 불탄 것을 790년에 종연(宗演)·광학(廣學)·각조(覺照)·영희(靈熙)·법찰(法察)·설흡(雪洽) 등이 절터에서 30리 아래로 옮겨 운흥사(雲興寺)라고 했다. 984년(성종 3)에 다시 화재로 소실되자 987년에 동훈(洞薰)·준희(俊熙) 등이 운흥사지의 북쪽 60리 되는 곳에 옮겨짓고 심원사(深源寺)라고 개칭했다. 1432년(세종 14)에 또다시 불이 나자 의준(儀俊)·해섬(海暹)·취웅(翠雄)·신열(愼悅) 등이 옮겨 짓고 선구사(旋龜寺)라 개칭했다. 1443년 화재로 소실되자 1447년 옛 터 서쪽 1리쯤 되는 곳에 절을 짓고 영취사(靈鷲寺)라고 했다. 1455년(세조 1)에 다시 화재로 불타버리자 재익(載益)·재화(載和)·신열 등이 옛 터의 상류 20리 되는 곳에 중건하고 백담사라고 개명했다. 1775년(영조 51)에 다시 불이 나자 최붕(最鵬)이 태현(太賢)·태수(太守)와 함께 중건하고, 심원사(尋源寺)라고 개칭했으나 1783년(정조 7)에 다시 백담사로 환원했다. 1915년에 일어난 화재로 거의 모든 당우가 타버린 것을 당시 주지였던 인공(印空)이 중건에 착수해 1921년에는 응향각 등 사무실 30여 칸을 새로이 짓고, 종과 북을 주조해 낙성법회를 열었다. 근대에 한용운이 머물면서 〈님의 침묵〉, 〈불교유신론 佛敎維新論〉을 집필하는 등 만해사상의 산실이 되었다. 6·25전쟁 때 불탄 것을 1957년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88년 11월 23일 전두환 전(前)대통령 내외가 대(對) 국민사과성명 발표 후 이 절에 은거했다가 1990년 12월 30일에 연희동 사저로 돌아가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보전·칠성각·선원(禪院)·요사채 등이 있고, 남쪽으로 150m 떨어진 곳에 관음전이 있다. 그밖에 자장의 유물로 전하는 아미타상과 소종(小鐘), 인조(仁祖)의 하사품인 옥탑(玉塔), 설담당(雪潭堂) 부도, 연포당(蓮浦堂) 부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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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백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麟蹄 百潭寺 木造阿彌陀如來坐像 및 腹藏遺物.보물 제1182호.)강원 인제군 북면 용대2리 백담사 (동국대학교박물관 보관 ))

백담사 극락보전 안에 주불(主佛)로 모셔져 있는 이 목불좌상은 서방 극락세계에 살면서 중생을 위해 자비를 베푼다는 아미타불을 형상화한 것으로 조선 영조 24년(1748)에 만들어졌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큼직하게 솟아 있다. 얼굴은 둥글고 단아하며 가는 눈, 작은 입, 오똑한 코로 인해 독특한 인상을 나타낸다. 넓은 가슴과 둥근 어깨가 당당한 인상을 주는 상체는 다소 평판적이며, 하체는 넓고 큼직하여 상체와 조화되고 있는데 이러한 특징은 이 불상이 당시의 나무로 만든 불상 가운데 대표작임을 알려주고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두꺼운 편으로 옷주름이 곡선으로 처리되고 있으며, 가슴에는 U자형의 중복된 주름을 보이는데 이러한 주름들은 조선 초기의 특징이 이어진 것이다. 18세기 전반의 불상 가운데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되는 이 목불상은 불상의 조성연대를 알려주는 발원문(發願文)과 많은 복장물이 있어 특히 주목된다.(문화재청 자료)

 

 발원문

  불상의 조성연대를 알려주는 발원문(發願文)과 많은 복장물이 있어 특히 주목된다.

 

 극락보전 앞 백담사 삼층석탑

 산령각

 

  

 

 

1988년 11월 23일 전두환 전(前)대통령 내외가 대(對) 국민사과성명 발표 후 이 절에 은거했던 화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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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암 (만화 소개와 오세암 이름의 유래) 

 

설악산 백담사의 부속암자였던 관음암이
오세암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 유래를 만화로 만든 수작.
실제 있었던 이야기로,
조선시대에 돌림병으로 부모를 잃은 조카를 데려다가
돌보던 스님이 한겨울 수행을 위해 조카를 관음암에 혼자 두고
식량을 구하러 내려간 사이
나이 5세의 어린 고아소년이 혼자서 관세음보살에게 온 마음으로 의지하여
성불하게 된 유래를 그리고 있다.

 

千手观音 (古典舞男女群舞)

Chinese Dance- fairs fly in sky (飛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