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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淸州 龍頭寺址 鐵幢竿)

노촌魯村 2012. 4. 20. 22:25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淸州 龍頭寺址 鐵幢竿.국보 제41호.충북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 48-19)

절에 행사가 있을 때, 그 입구에는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이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당간이 서 있는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는 예전에 용두사라는 절이 자리잡고 있던 곳이다. 용두사는 고려 광종 13년(962)에 창건되었으나 고려말의 잦은 전쟁과 난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고, 절이 있던 터는 청주시내의 가장 번화한 거리로 변하였다. 이 당간은 밑받침돌과 이를 버티고 있는 두 기둥이 온전히 남아 예전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두 기둥은 바깥면 중앙에 세로로 도드라지게 선을 새겨 단조로운 표면에 변화를 주었다. 그 사이로 원통 모양의 철통 20개를 아래위가 서로 맞물리도록 쌓아 당간을 이루게 하였고, 돌기둥의 맨 위쪽에는 빗장과 같은 고정장치를 두어 당간을 단단히 잡아매고 있다. 특히 세 번째 철통 표면에는 철당간을 세우게 된 동기와 과정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원래는 30개의 철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당간을 세운 시기는 절의 창건과 때를 같이 하는 고려 광종 13년(962)으로, 연대를 확실하게 알 수 있어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또한 당간이 남아 있는 경우가 드문 우리 문화재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이곳과 함께 공주 갑사, 안성 칠장사의 세 곳에서만 철당간을 접할 수 있어 보기 드문 작품이다. 현재 청주에는 이 유물과 관련된 일화가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다. 예로부터 청주에는 홍수에 의한 재난으로 백성들의 피해가 많았는데, 어느 점술가가 이르기를 큰 돛대를 세워 놓으면 이 지역이 배의 형상이 되어 재난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결국 이곳에 돛대 구실을 하는 당간을 세워 놓으니 재난을 피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청주를 주성(舟城)이라 이름하였다 한다. (문화재청 자료)

당간:13.1m
철통: 20개(당초철통 30개 ,높이 18,9m추정).

지주: 높이: 4.2m, 화강암.

철통: 개당 높이 63 cm,지름 40cm

 

 

 

 

 

 

 

 

 

 

 

용두사지 철당간의 전해지는 얘기는 옛날 고려초 혜원이라는 스님이 전국의 이름난 절과 경승지를 순례하던 중 어느날 청주의 율량 고을에서 쉬어가게 되었답니다.그날밤 저녁 보름달이 둥그렇게 떠올라었는데요. 아 !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고 세찬비가 내리고 천둥번개까지 쳐서 혜원스님은 합장을 하고 부처님께 빌었답니다.  얼마후 비가 멎고 서쪽 하늘에 무지개가 나타나고 부처님이 나타나시더니 "곧 용두사로가서 배가 떠내려가지 않도록 돛대를 세우라고 하시고 "사라졌답니다. 이에 혜원스님은 날이 밝자 용두사로 가서 용두사 주지스님에게 간밤에 있었던 일을 얘기했더니 용두사 주지 스님께서도 간밤에 같은 꿈을 꿧다며 무슨 뜻인지 몰라 두스님이 3 일동안 고민을 하던중 나흘째 되던날 한 초립동이가 나타나 절마당에서 " 소금배가 들어 올텐데 돛대가 없구나"하고 중얼거리더래요. 두스님은 달려가 자초지종을 물으니 " 목암산( 현 청주의 우암산)에 올라가 살피면 알 수 있을거라고 하고 초립동이가 홀연히 사라졌답니다. 두스님은 목암산에 올라가 가만히 내려다보니 청주 고을이 천천히 북쪽으로 떠내려가고 있는 행주형의 지형이더래요.이것을 본 두스님이 용두사에 배의 돛대를 상징하는 철당간을 세우라는 뜻으로 알고 그후로 청주를 (배:주)舟城(재:성)이라 부르게 되었는데요. 청주를 예전에 주성이라 불렀으며 현재 주성초, 중학교등이 있다.(지역정보포털 자료)


청주박물관의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淸州 龍頭寺址 鐵幢竿) 복제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