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 송림사 대웅전 (漆谷 松林寺 大雄殿.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34호.경북 칠곡군 동명면 구덕리 91-6)
송림사는 동명면 소재지에서 팔공산으로 가는 지방도 79호선 좌측에 위치하고 있다. 동명면 저수지 에서 동쪽 계곡을 따라 2km 정도 오르면 해발 100m 정도의 가산 남쪽 허리 아래 터를 잡아 사역을 조성한 사찰로 조선 세종 때에는 교종, 선종 36본산의 하나였으나, 조선 후기에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의 동화사가 본산이 되면서 그 말사가 되었다. 신라 진흥왕 5년(544) 진(陳)의 사신 유사(劉使)가 중국 유학승인 명관대사(明觀大師)와 함께 신라에 오면서 불경 2,700권과 불사리(佛舍利)를 가져왔는데, 이후 불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창건한 사찰이다. 그 때 이 절에 호국안민을 위한 탑을 세웠다고 한다. 그 뒤 고려 선종 9년(1092)에 대각국사 의천이 중창하였고, 고종 22년(1235)에 몽고병에 의해 폐허화되었으며, 그 뒤 다시 중창하였으나 조선 선조 30년(1597)에 왜병들의 방화로 소실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송림사 재건은 1649년 대웅전 중창이 이루어진 뒤, 1655년 극락전 석불상 조성, 1657년 대웅전 소 삼존불상 조성, 1665년 삼장보살상과 시왕상 조성, 1686년 기성대사의 중창, 1755년 대웅전 중수, 1830년 건물 조성, 1850년 대웅전 중수 등이 이루어진 사실을 알 수 있지만, 임진왜란 이전의 역사는 불명확하다. 현재의 건물은 철종 9년(1858) 영추(永樞)에 의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9년 6월 4일에 요사채와 응진각, 수각 탑보호 봉향각, 산신각, 배전, 화장실이 증축되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명부전, 요사채, 오층전탑이 있다. 이 절에 소장되어 있는 경판으로는 ≪충장공유사(忠壯公遺事)≫ 와 그 부록이 있다. 가람배치를 살펴보면 누문(樓門)을 들어서면 보물 제189호로 지정된 5층전탑을 중심으로 우측에 명부전이 자리하고 있고, 좌측에 삼천불
전과 요사채, 뒷면에 대웅전이 자리 잡고 있다. 대웅전 뒤쪽으로는 좌우로 산신각과 삼성각을 두고 있다. 그 주위로 새로 지은 몇 채의 건물들이 있고, 탑의 왼쪽에는 석등이 있고, 그 외에 깨진 배례석, 석등 부재, 부도의 탑신 등이 마당에 흩어져 있다. 주위에 흩어진 유적과 유물로 미루어 보아 원래는 이보다 훨씬 건물이 많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대지 면적은 12,405㎡이고 건축 면적은 1,046.2㎡이다. 대웅전, 명부전, 요사채 2개동, 칠성각, 화장실 2개동, 응진각, 수각, 탑보호 봉향각, 산신각, 배전, 삼천불전 등 총 13개동이 있다.
대웅전
대웅전(大雄殿)의 편액은 숙종의 어필이며, 장대석 기단 위에 화강석 정평주초를 놓고 원주를 세운 정면 5칸, 측면 3칸의 박공 기와지붕을 겹처마로 받들고 있는 내삼출목, 외이출목의 다포 칠량가로 구성되어 있다. 내부 천장은 우물반자로 짜여 있다. 보통 우리나라의 목조건축에서 기둥과 기둥 사이인 칸의 너비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비슷하다. 그러나 송림사 대웅전의 전면과 후면은 독특한 모습을 보여 준다. 어칸은 넓고, 어칸에 이어지는 좌우 협칸은 이보다 좁고, 양쪽 툇칸은 아주 좁아져 그 비율이 대략 3:2:1 정도이다. 따라서 문짝도 어칸에 넷, 협칸에 셋, 툇칸에 하나씩을 달았는데 그 구실에 차이가 있다. 어칸의 문짝 넷 가운데 출입에 사용되는 것은 안으로 열리는 두 짝의 쌍여닫이뿐이고, 나머지 두 짝은 채광의 구실을 하는 붙박이이다. 좌우 협칸은 가운데 문짝이 안여닫이이며, 양 옆의 문짝은 고정되어 광창으로 쓰인다. 툇칸의 외짝문 또한 여닫을 수 없고 채광창으로만 쓰인다. 문짝의 모양도 다양하다. 가운데
두 짝은 빗살문, 양 옆의 두 짝은 소슬꽃살문이며, 협칸은 가운데 안여닫이가 소슬빗살문, 나머지 두 짝이 빗살문이다. 반면 툇칸의 외짝문은 정자실문으로 변화를 주었다. 어칸에 둘, 협칸에 각각 하나씩 남아 있는 신방목은 원래 벽 중간에 세운 문설주, 곧 벽선을 받쳤
던 것으로 지금은 벽선이 없어진 채 양 볼에 새겨진 태극무늬와 연꽃무늬를 달고 하인방에 꽂혀 있다. 이 건물은 다포식 건물이면서도 맞배지붕을 얹었다. 외이출목, 내삼출목의 공포 위치도 독특하다. 툇칸의 평방 위에는 공포가 없고 협칸에는 하나, 어칸에는 두 개가 놓여 간격을 맞추고 있다. 이는 기둥 사이의 거리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특별히 고안한 것이다. 다포계 맞배지붕 양식을 채택했을 경우 옆면 처리는 대개 두 가지 방식 가운데 하나를 취한다. 전후면과 마찬가지로 공포를 설치하는 다포양식이거나, 아니면 안쪽의 두 기둥을 귀기둥보다 높은 고주로 세워 마감하는 주심포양식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건물에서는 두 양식의 절충이 시도되고 있다. 기둥 넷을 평주로 세우고 그 위에 창방과 평방을 가로지른 것까지는 앞면과 동일한 다포계 양식을 따르면서도 그 위에 놓일 공포는 생략한 것이다. 기둥 사이의 폭도 고르게 분할되었다. 이 또한 쉽게 볼 수 있는 기법은 아니니, 대개는 가운데칸이 양 옆칸보다 넓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옆면의 앞칸에는 띠살문을 달아 출입에 이용하고 그 위에 칸을 꽉 채우는 긴 빗살무늬교창을 얹어 앞면의 문짝과는 또 다른 변화를 보이는 것도 눈에 띄는 점이다. 건물 내부에는 불단 후불벽을 이루는 고주가 건물의 중앙선에 세워져 있어 불단 앞의 공간이 협소하며 상대적으로 불단 뒷면은 여유가 있다. 이는 아마도 불단을 중심으로 그 주위를 돌면서 예배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에서 나온 구조일 것이다. 낮은 수미단에 모셔진 보물 제1605호로 지정된 향나무로 만들어진 높이 3m의 목조석가삼존불좌상은 국내에서는 제일 큰 목불이라고 한다. (향토자원.지역정보포털 자료)
대웅전(大雄殿)의 편액은 숙종의 어필이다.
칠곡송림사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漆谷松林寺木造釋迦如來三尊坐像.보물 제1605호.경북 칠곡군 동명면 송림길 73)
송림사 대웅전 수미단 위에 봉안된 이 삼존상은 석가여래와 문수·보현보살로 구성된 석가삼존형식으로 본존불(277cm)의 높이가 3m에 육박하는 거대한 목조불상이다. 이 삼존상은 규모가 큰 불상임에도 불구하고 신체비례가 적당하고 안정적이며, 당당한 형태미를 보여주고 있다. 본존 석가모니불은 오른손을 무릎 아래로 내리고 왼손은 무릎 위로 올려 구부린 항마촉지인을 결하고 있다. 본존과 거의 흡사한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좌·우협시보살상은 양손의 수인의 위치만 달리하여 두 손으로 긴 연꽃줄기를 잡고 있는데, 연꽃줄기는 보관과 함께 후대에 보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송림사 삼존상은 양식적으로 건장하고 당당한 형태미, 엄숙한 얼굴표정에 입가를 눌러 만들어 낸 생경한 미소, 간략하고 단순화하지만 강렬한 힘이 느껴지는 옷주름 등의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양대전란 이후 17세기 전·중엽경의 재건불사 과정에서 제작된 불상들과 양식적으로 상통한다. 이 삼존상은 조선후기 17세기를 대표할 만한 대작(大作)으로서 복장에서 발견된 발원문을 통하여 정확한 조성연대와 발원자, 조각승을 알 수 있다. 특히 17세기 전반에 활약했던 조각승 무염(無染)계에 속하는 수화원 도우(道祐 또는 道雨)를 비롯하여 18명의 조각승들이 참여하여 제작한 대형작품이다. 따라서 이 삼존상은 17세기 전반과 후반을 잇는 기념비적 작품이자 조각유파 연구에도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된다.(문화재청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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