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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남평문씨 본리세거지

노촌魯村 2013. 6. 3. 21:28

남평문씨 본리세거지(민속문화재 제3호.대구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401-2)

남평문씨 본리(인흥)세거지는 옛 인흥사 절터에 형성된 민속마을이다. 인흥사는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스님이 1264년에 포항 오어사에서 옮겨와 중창한 사찰인데, 임진왜란 때 전부 소실된 바 있다. 19세기 중반 인산재 문경호(1812~1874)가 지금의 광거당 자리에 용호재를 건립하면서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1910~1940년경에 남평문씨 일가의 살림집(9호)와 재실 등이 건립되면서 거의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다.
이 곳의 대표건물로는 목조건물의 독특한 조형과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광거당과 수봉정사를 들 수 있다. 마을 전면에 위치하고 있는 수봉정사는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하고, 일족이 모임을 갖던 곳으로 당시 생산된 춘양목을 잘 활용하여 민족의 정신을 간직하고자 규모가 크게 지어졌다. 광거당은 자제들의 학문과 교양을 쌓던 수학의 장소였다. 또한 세거지 내 수봉정사 옆에 자리한 인수문고는 질적·양적인 면에서 그 유례가 드문 문중문고로 국내외 2만여권의 서책과 책판이 거의 변질 없이 보관되어 있다.

본 세거지는 20세기초 민족의식을 고취하면서 근대화를 지향했던 철학이 엿보이는 곳으로 기존의 전통마을의 풍수지리적 정서와 민속적인 풍습도 간직하고 있으며, 특히 배산향천의 조건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평지에 위치하여 농경생활을 근대화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주거유형들은 대부분 평면상 ㅡ자형이고 그 배치는 튼 ㅁ자, 튼 ㄷ자, 튼 곱자와 二자형 배치가 나타나며 가구형식은 3량식이 주가되고 구법상의 정형을 잃지 않고 있다.
마을의 조성시기와 그 규모나 형태면에서 기존의 민속마을과는 차별화가 되며, 문중의 정신적 유산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정형성과 시대의 흐름에 따른 주거공간의 근대적 변용현상이 잘 나타나고 있다.(달성군청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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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봉정사(대구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화원읍 본리리에 소재하며 한말 거유 수봉문박의 아호를 딴 재사이다. 일명 수백당이라 하며 희봉 하겸진의 기문이 있다. 이 건물은 정면 6간, 측면 2간의 겹치마 팔작지붕이다. 

 명문이 조각 된 정원석

 정원에 있는 앵두(붉은 앵두가 탐이나서 ...)

  

화원읍 남평 문씨 본리세거지

광거당(廣居堂.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화원읍 남평 문씨 본리세거지내에 보존되고 있는데 고종 9년(1873) 후은공과 문봉성이 남평 문씨 문중을 위하여 건립한 것으로서 후손들의 수학 장소이다. 이 건물은 丁자형 으로 정면 4간, 측면 5간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광거당이라 편액이 달린 전퇴가 있는 전면의 향우 단간이 앞으로 불쑥 한간 돌출하여 누 마루가 되었다.
누는 퇴마루보다 한단이 높은데 그 구성이 재미있다. 전퇴와 측면에서 이주하는 퇴간 까지는 누의 넓이로 잡아서 밖에서 보면 두간처럼 되고 충량이 졌는데 그 충량의 치목과 결구가 정치하다. 이와 같이 이 건물의 규모가 정교함은 매우 뛰어났다고 할 수 있다. 조긍섭의 기문과 창강 김태영의 시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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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거당(廣居堂) 옆 보호수

삼우당 문익점 선생 동상
붓과 목화 그리고 목화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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