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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6.25 전쟁영웅’ 차일혁 경무관

노촌魯村 2013. 11. 13. 08:14

 

  

차일혁(車一赫, 1920년 ~ 1958년 8월9일) : 독립운동가. 경찰관.

그는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중국으로 건너가 중앙군관학교 황포분교 정치과를 졸업한 뒤 항일전을 위해 1938년부터 1943년까지 조선의용군에 들어가 팔로군과 함께 항일유격전 활동을 펼쳤다

해방 후 귀국하여 유격대를 결성해 북한의 인민군과 싸우던 중 경찰에 특채되어 빨치산 토벌대 대장으로 복무하였다. 6.25전쟁 중에는 발치산 소탕을 담당하는 전투경찰대 제2연대연대장으로 근무하며 조선 공산당 총사령관인 이현상 등을 토벌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그는 가급적 귀순을 유도하여 많은 빨치산의 목숨을 살렸다.

70명의 결사대원으로 2천여 명의 적을 격파하였고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도 사살하였다.(내무부장관·치안국장·현지사령관이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 단일 전투에 태극무공훈장 3개가 나간 것은 이현상 사건이 유일하다. 차 총경은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그러나, 차일혁은 이 싸움은 어쩔 수 없이 하지만 후에 세월이 가면 다 밝혀질 것이다. 미국과 소련 두 강대국 사이에 끼어 벌어진 부질없는 동족상잔이었다고..”라는 글을 전북일보에 기고하였다. 그는 이현상을 사살한 후 군인에 대한 예우로 이현상의 뼈를 자기 철모에 넣고 빻아 섬진강에 뿌려주었다(출처 : 위키백과) 

1954년 충주경찰서 서장으로 발령을 받은 그는 충주직업소년학원을 설립하여 중학교 진학을 못하는 불우청소년들에게 학업기회를 제공하였다.

조선의용대는 팔로군과 함께 항일유격전을 펼쳤던 독립운동단체로, 지리산 인근에서 빨치산 토벌시에 공산주의자들에게 온정적이었다는 이유로 진해경찰서장으로 재직시 좌익혐의로 조사를 받기도 하였다. 차일혁 경무관은 이후 공주경찰서장으로 좌천된 후, 1958년 금강의 곰나루에서 가족과 함께 물놀이를 하다가 38세의 나이에 타계하였다.

1958년 조계종 초대 종정 효봉으로부터 감사장을 수여받았다. 199년 화엄사는 화엄사 경내에 그를 기리는 공적비를 건립하였다.

1990년 그의 아들은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의 수기》를 출간하였다.

2008년 문화재청에서는 빨치산의 근거지인 화엄사 등의 사찰을 불태우라는 상부의 명령을 거절하여 명찰들을 보존한 공적이 있는 차일혁 경무관에게 감사장을 추서하였다. 경찰청에서는 2011년 8월 차일혁 총경을 경무관으로 승진 추서하였다.

2013년 6·25전쟁 60주년사업위원회와 전쟁기념관 등 관계자와 전쟁사 전공학자들로 구성된 ‘이달의 6·25전쟁영웅 선정위원회’의 심도 있는 심의와 검증을 통해 올해 ‘이달의 6․25전쟁영웅’ 12명에 선정되어 국가보훈처 9월의 달력 인물로 공식 지정되었다.

2013년 차일혁 경무관은 전쟁기념사업회에서 고려시대의 최무선 장군을 비롯한 62명의 호국인물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호국의 인물에 경찰이 포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9월 이달의 호국인물로 선정되었다.

2013년 6·25동란 당시 화엄사, 쌍계사, 천은사 등 지리산 일대 고찰과 금산사, 백양사, 선운사 등을 전화(戰火)에서 구한 숭고한 뜻을 기려 화엄사에 故차일혁 경무관 공덕비가 제막되었다. (출처 :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