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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대장경판 크기 차이는 연구자의 측정오류로 밝혀져

노촌魯村 2014. 1. 24. 22:49

해인사 대장경판 크기 차이는 연구자의 측정오류로 밝혀져

- 1977년과 현재 조사된 경판치수의 차이는

-각판 여백의 포함 여부와 측정 면을 달리한 것에 기인 -

 1937년에 제작된 대장경판 17판 중 12판의 각판 너비가 다르고, 경판 색깔이 희고 깨끗해 경판이 바꿔치기 되었다는 지난해 12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경판의 각판 너비 차이는 각판의 여백부분 포함 여부와 경판의 서로 다른 면(앞·뒤)을 측정한 크기를 비교하여 발생

  서수생 박사 논문(1977년) 최근의 실측치(2012년 용역사업)를 비교한 결과, 각판의 치수가 0.5㎝이상 차이가 나는 경판은 12판이나, 1㎝미만의 오차는 단순한 측정 상의 허용오차 범위 내로 볼 수 있으므로*, 1㎝ 이상의 오차가 나는 6판의 경판을 검토함

 

    * 서수생 박사의 논문(1968, 1977)들 사이에서도 같은 경판의 계측 오차가 1㎝정도 차이가 남 (설명자료-1)

① 6판 중 2판의 경판이 서수생 박사 논문에서 각판의 여백부분을 포함시키지 않았음을 확인함 (설명자료-2)

나머지 중 3판의 경판 크기 차이는 양면(앞·뒤)을 혼동하여, 2012년 용역 시에 1977년 논문에서 측정한 것과 다른 면을 측정함 (설명자료-3)

나머지 1판의 경판은 1937년 제작 경판이 아닌 고려시대 제작 경판과 치수 자료를 비교하여 오류 발생함 (설명자료-4)

■ 1937년 경판이 비교적 희고 깨끗한 것은 목재 본래적 특성으로 장경판전과 같은 보존환경에서는 원래 색깔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함

① 목재 전문가에 의하면 목재가 햇빛에 노출되지 않는 장경판전과 같은 환경 조건이라면 상당기간동안 변색되지 않을 수 있고, 이러한 사례는 일제 강점기에 판각된 목판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음

또 1969년 서수생 박사의 논문에서도 “을묘(乙卯, 1915) 판은 붉으스레하고 정축(丁丑, 1937) 판은 희므로 일견 구별하기 쉽다”는 언급이 있어 목재의 색깔이 희다는 이유로 최근 것이라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음 (설명자료-5)

 

우리 청에서는 제기된 의혹을 규명하기 위하여 서지, 목재, 금속, 보존과학 분야 등 관계전문가 자문회의를 4차에 걸쳐 개최한 결과, 1cm이상의 경판 크기 차이는 경판 측정과 비교 방식의 오류에 기인한 것으로 경판 바꿔치기 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최종 확인하였음

 

우리 청에서는 체계적인 대장경판의 보존관리를 위하여 올해 생물학적 피해 등에 대한 과학적인 모니터링을 수행하고 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종합적인 학술조사를 통해 중장기적인 보존계획을 수립할 예정임

 

※ 각판의 치수가 1㎝ 이상 차이나는 경판 목록(6건) 

 

경 명

크기 차이*

불일치 사유

1

대반야바라밀다경

56

56

15

16

44㎜

여백 부분을

미포함 경우

2

대장엄론경

2

2

19

20

54㎜

3

집고금불도론형

대반야바라밀다경

4

68

4

2

22㎜

계측한 판면이

다른 경우

4

대반야바라밀다경

73

49

2

6

15㎜

5

대반야바라밀다경

126

126

19

20

12㎜

6

대반야바라밀다경

21

13 

37㎜

비교자료가

잘못된 경우

 

출처 : 문화재청(2014년01월24일)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陜川 海印寺 藏經板殿.국보 제52호)

가야산 중턱에 자리잡은 해인사는 통일신라 애장왕 3년(802)에 지은 사찰로, 왕후의 병을 부처의 힘으로 치료해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이며, 8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법보사찰이라고도 부른다. 장경판전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8만여장의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건물로, 해인사에 남아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 되었다. 처음 지은 연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조선 세조 3년(1457)에 크게 다시 지었고 성종 19년(1488)에 학조대사가 왕실의 후원으로 다시 지어 ‘보안당’이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산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 임진왜란에도 피해를 입지 않아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광해군 14년(1622)과 인조 2년(1624)에 수리가 있었다. 앞면 15칸·옆면 2칸 크기의 두 건물을 나란히 배치하였는데, 남쪽 건물은 ‘수다라장’이라 하고 북쪽의 건물은 ‘법보전’이라 한다. 서쪽과 동쪽에는 앞면 2칸·옆면 1칸 규모의 작은 서고가 있어서, 전체적으로는 긴 네모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대장경판을 보관하는 건물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장식 요소는 두지 않았으며, 통풍을 위하여 창의 크기를 남쪽과 북쪽을 서로 다르게 하고 각 칸마다 창을 내었다. 또한 안쪽 흙바닥 속에 숯과 횟가루,소금을 모래와 함께 차례로 넣음으로써 습도를 조절하도록 하였다. 자연의 조건을 이용하여 설계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점 등으로 인해 대장경판을 지금까지 잘 보존할 수 있었다고 평가 받고 있다. 해인사장경판전은 15세기 건축물로서 세계 유일의 대장경판 보관용 건물이며, 대장경판과 고려각판을 포함하여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문화재청 자료)

판전의 처마는 길게 뻗어 나와 빗물을 막고, 직사광선을 가린다. 살창으로 잔잔히 스며든 빛과 바람이 경판을 살아 숨쉬게 한다.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陜川 海印寺 大藏經板.국보 제32호)

대장경은 경(經)·율(律)·논(論)의 삼장(三藏)을 말하며, 불교경전의 총서를 가리킨다. 이 대장경은 고려 고종 24∼35년(1237∼1248)에 걸쳐 간행되었다. 이것은 고려시대에 간행되었다고 해서 고려대장경이라고도 하고, 판수가 8만여 개에 달하고 8만 4천 번뇌에 해당하는 8만 4천 법문을 실었다고 하여 8만대장경이라고도 부른다. 이것을 만들게 된 동기는 고려 현종 때 새긴 초조대장경이 고종 19년(1232) 몽고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지자 다시 대장경을 만들었으며, 그래서 재조대장경이라고도 한다. 몽고군의 침입을 불교의 힘으로 막아보고자 하는 뜻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장도감이라는 임시기구를 설치하여 새긴 것이다. 새긴 곳은 경상남도 남해에 설치한 분사대장도감에서 담당하였다. 원래 강화도 성 서문 밖의 대장경판당에 보관되었던 것을 선원사를 거쳐 태조 7년(1398) 5월에 해인사로 옮겨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현재 해인사 법보전과 수다라장에 보관되어 있는데 일제시대에 조사한 숫자를 보면 81,258장이지만 여기에는 조선시대에 다시 새긴 것도 포함되어 있다. 경판의 크기는 가로 70㎝내외, 세로 24㎝내외이고 두께는 2.6㎝ 내지 4㎝이다. 무게는 3㎏ 내지 4㎏이다. 구성을 보면 모두 1,496종 6,568권으로 되어있다. 이 대장경의 특징은 사업을 주관하던 개태사승통인 수기대사가 북송관판, 거란본, 초조대장경을 참고하여 내용의 오류를 바로잡아 대장경을 제작하였다고 한다. 이 대장경판은 현재 없어진 송나라 북송관판이나 거란의 대장경의 내용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이며, 수천만 개의 글자 하나 하나가 오자·탈자없이 모두 고르고 정밀하다는 점에서 그 보존가치가 매우 크며, 현존 대장경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와 내용의 완벽함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니고 있는 문화재이다. 또한 2007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문화재청 자료)

 

 

세계 최고의 목판이 현존할 수 있은 한결같은 비결로는 ‘잘 말린 나무를 소재로 경판을 만들었고, 이를 사용하면서 잘 씻고 말리는 관리법’과 더불어 경판의 보관 기능을 최대한 살리기 위한 건물의 위치 선정과 건립, 건물배치와 좌향, 건물구조와 창호처리, 판가(板架)구조, 경판배열 등의 측면에서 자연 통풍이 잘되고 일조량도 적당하며 목판을 보존하는데 최적의 조건인 항습, 항온 등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고도의 건축기술이 가미된 장경판전을 만들어 보관했기에 가능했다.

 

남쪽 창문

 대장경판을 보관하는 건물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장식 요소는 두지 않았으며, 통풍을 위하여 창의 크기를 남쪽과 북쪽을 서로 다르게 하고 각 칸마다 창을 내었다.

벽면 아래위 살창의 크기 및 건물 앞·뒷면 살창의 크기가 다르다. 창으로 스며든 계곡의 바람이 실내에서 아래위로 최대한 돌아 나가도록 한 것이다. 바람은 습기를 씻어낸다.

북쪽 창문

합천 해인사 고려목판(陜川 海印寺 高麗木板.국보 제206호 )  

경상남도 합천군 해인사에 소장되어 있는 고려시대의 불교경전, 고승의 저술, 시문집 등이 새겨진 목판이다. 이 목판은 국가기관인 대장도감(大藏都監)에서 새긴 해인사대장경판(국보 제32호)과는 달리, 지방관청이나 절에서 새긴 것이다. 현재 해인사 대장경판전 사이에 있는 동·서 사간판전(寺刊板殿)에 보관하고 있다. 후박나무를 짠물에 담가 지방기를 빼고 나무결을 삭혀 잘 말린 다음 판각하였기 때문에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었다. 이 목판에는 『금강경』, 『화엄경』 등의 대승경전과 신라·고려·중국의 고승이나 개인의 시문집 및 저술들이 있는데, 경전류는 대부분 간행기록이 있어 고려시대 불교경전의 유통 등 불교신앙의 경향을 알 수 있다. 고승이나 개인의 시문집 및 저술 등은 비록 간행기록이 없고 전권을 갖추지 못한 것이 많으나, 그 내용이 전하지 않거나 역사적으로 희귀한 자료들이다. 고려시대 판화 및 판각기술은 물론이고, 한국 불교사상 및 문화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문화재청 자료)

 

 

 

 

대장경 이야기

1) 기초자료의 수집과 교정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2) 대장경판에 사용한 나무 중 가장 많은 품종은 산벚나무, 돌배나무 등입니다. 경판이 되는 나무는 곧고 옹이가 없는 것을 선택한다.

3) 잘린 나무는 지게 등을 통해 산에서 내려온 뒤 강가나 포구에서 뗏목으로 엮여, 조류의 흐름을 타고 판목의 제작 장소로 옮겨간다.

4) 통나무를 알맞은 크기로 잘라내어 소금물에 삭힌다.

5) 삭힌 나무를 꺼내어 알맞은 크기로 잘라 판자로 다듬은 다음 다시 건조한다. (판목은 평균 가로 약 70cm, 세로 약 24cm, 두께 약 2.8cm 내외, 무게 3.25kg. 경판처럼 두껍고 넓은 판목은 그대로 건조하면 나무의 진액 때문에 갈라지고 비틀어지기 쉽다. 알맞게 자른 판목을 삶으면 나무의 진이 빠져나온다. 판목을 삶는 물로 소금물 등을 사용했다. 나트륨 성분 때문에 건조는 천천히 되지만, 이 과정을 거치면 나무의 결이 부드러워져 갈라짐이 적고 글자를 새기기 좋으며 결함이 없는 판목을 얻을 수 있다.

6) 판목이 만들어지는 사이 팔만대장경판에 글자를 새길 원본인 판하본을 제작한다. 여러 사람이 쓰지만 같은 글씨체가 되도록, 충분한 연습을 한 뒤에야 구양순체(솔경체)의 판하본을 만들 수 있다.

7) 완성된 판하본을 붙이기 전, 종이가 주름이 지지 않도록 판목을 물기 있는 수건으로 문질러 습기를 조절한다. 풀은 너무 묽지 않게, 평붓을 사용하여 판목에 고루 풀칠을 한다. 풀칠을 한 후 글자가 쓰인 면을 판목 쪽으로 오게 하여 잘 붙인다.

8) 판목에 붙은 종이 위에 다시 기름칠을 해, 글자가 잘 보이도록 한다. 이 때 맑은 식물성 기름을 사용했다.

9) 판하본이 완성되면 판각, 즉 새김질을 시작한다. 경판의 새김 형태는 글씨만 남기고 배경이 되는 부분을 모두 파내는 반서각이다. 우선 망치로 크게 때려 넓은 부분을 제거한 뒤, 작은 창칼과 마무리용 칼을 사용하여 세밀한 부분을 파낸다.

10) 완성된 경판을 인경하여 2~3회 수정을 거친 후 완전한 목판본을 만든다.

11) 판각을 완료한 경판에는 양쪽에 천자문의 함차와 장차를 새긴 마구리를 단다. 평균 두께가 약 4cm인 마구리는 경판의 변형과 손상을 방지하고 경판의 통풍과 열람을 용이하다. 경판의 네 귀퉁이에는 마구리가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구리판의 장석을 쇠못으로 고정합니다.

12) 마지막으로 나무의 부식을 방지하고 해충의 피해를 막기 위해 옻칠을 합니다.

 

 

 

 

 

 

 

 

 

 

 

 

 

 

 

위의 사진:중앙일보에서

대장경 천년특집 다르마 - 1편 붓다의 유언
 
 
 
해인사 대장경 팔백년의 비밀, 해인사 장경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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