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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경이 돋보이는 붉은 색 수직 절벽,「화순 적벽」‘명승’지정 예고

노촌魯村 2016. 12. 8. 19:04

비경이 돋보이는 붉은 색 수직 절벽,

화순 적벽명승지정 예고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에 있는 화순 적벽(和順 赤壁)’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 예고하였다.

 

화순 적벽은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창랑리·장항리 일대에 걸쳐 있는 동복천 상류 창랑천과 영신천 유역의 크고 작은 붉은 색의 수직 절벽으로, 이 붉은 색 때문에 적벽(赤壁)’으로 불리게 된 경승지이다.

 

화순 적벽은 표면이 노출된 암석과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수목이 아름답고, 인접한 옹성산과 동복호 등 인근의 산림경관수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으로, 특히, 장항적벽 절경은 화순 적벽의 대표로 꼽히고, 창랑리에 있는 창랑적벽, 창랑리 물염마을에 있는 물염적벽도 유명하다.

 

물염적벽의 건너편 언덕 위에는 티끌 세상에 물들지 말라는 뜻으로 세운 물염정(勿染亭)을 비롯해 망미정, 송석정 등 다수의 정자가 있어 화순 적벽의 수려한 자연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조선 중종 때 신재 최산두(1483~1536)가 적벽이라고 부른 이후 많은 시인 묵객들이 이곳을 다녀가면서 기록을 남겼고, 여지도서와 대동지지 등에도 적벽 주변에 있던 누정대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그리고 편액 현판과 상량문, 주련, 기문 등 다양한 기록 자료와 시비 등을 통해서도 화순 적벽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 여지도서(輿地圖書): 1757(영조 33)1765년에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성책한 전국 읍지

* 대동지지(大東地志): 조선 후기 학자 김정호가 쓴 한국 지리서 (필사본. 3015)

 

문화재청은 이번에 명승으로 지정 예고한 화순 적벽에 대하여 30간의 예고 기간 중 수렴된 의견을 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 절차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할 예정이다.

명승 지정 예고 개요


지정명칭: 화순 적벽(和順 赤壁)

지정종별: 명승

소 재 지: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장학리 산14

지정면적(문화재구역): 243,162

관리단체: 화순군

지정가치

화순 적벽은 전라남도 화순군의 동복면·북면·이서면 3개 면의 경계점에 위치한 옹성산의 서쪽, 이서면 창랑리·보산리·장항리 일대에 걸쳐 있는 경승지이다. 지질학적으로 중생대 백악기 퇴적암층으로 산성응회암과 적색셰일층(진흙이 쌓여 만들어진 퇴적층)이 하식애(급경사면) 급애면 수직절벽을 이루어 외형적으로 적색이 발현되는 지질지형적 특성이 있어 조선시대에 들어 적벽(赤壁)’으로 명명하게 되었고, 중국의 적벽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동복천(同福川)의 상류인 창랑천(滄浪川) 유역과 무등산(無等山, 1,187m)에서 발원한 영신천(靈神川)이 합류되어 태고의 절벽을 스치며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곳이며 강의 유역에는 크고 작은 수려한 절벽이 있다. 이 가운데 동복호 상류의 장항리에 있는 장항적벽과 창랑리에 있는 창랑적벽, 창랑리 물염마을에 있는 물염적벽이 유명하다.

장항적벽은 수려한 자연경관과 웅장함 때문에 화순 적벽의 대표로 꼽히며, 물염적벽(勿染赤壁)은 규모나 주위의 경치면에서 장항적벽에 미치지 못하나 언덕 위에 티끌 세상에 물들지 말라는 뜻으로 세운 물염정(勿染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창랑적벽은 동쪽의 창랑리에서 바라보면 웅장한 느낌을 주며, 잔잔한 강 위로 화순 적벽의 바위 빛이 서로 교차되어 투영되는 광경은 마치 푸른 비단 폭에 동양화를 그려 놓은 것 같다. 1984년 동복수원지 확장공사로 적벽의 일부가 수몰되었다.

제봉 고경명(1533~1592)의 무등산 기행록인 유서석록(遊瑞石錄, 1574)에 따르면 신재 최산두(1483~1536)가 기묘사화로 유배되어 동복에서 생활하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하루는 이곳을 지나게 되었는데 달내(澾川)에서 그 원류를 찾아 거슬러 올라갈 때 어느 길손을 만나 내 끝에 명승이 있다는 말을 듣고 적벽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며 이때부터 비로소 남도 사람들이 이곳을 알고 찾아드는 시인 묵객의 발자취가 그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거기에 석천 임억령(1496~1568)이 이곳 경치를 찬양하는 글을 짓고 적벽동천(赤壁洞天)이라고 명하였고, 하서 김인후(1510~1560)가 시를 읊음으로써 드디어 남국의 명승지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물염정, 망미정, 송석정 등 다수의 정자는 화순 적벽 및 풍부한 산림경관과 수경관의 자연경관을 조망하기 위한 경관의 조망점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편액 현판, 상량문, 주련, 기문 등 다양한 기록 자료와 시비 등이 현존하고 있어 화순 적벽의 자연적 가치 및 역사문화적 가치에 대해 확인할 수 있다.

물염정, 망미정 등 다수의 정자 및 조망점으로부터 조망되는 물염적벽, 장항적벽은 표면이 노출된 암석과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수목이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이루며 특이성을 보이고 있다. 또한, 인접한 옹성산 및 동복호 등 산림경관과 수경관과 조화를 이루며, 특히, 장항적벽은 배후의 웅장한 옹성산으로 인해 심미성이 두르러진다.


 

<글.사진 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