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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곡사지원광법사부도탑(金谷寺址圓光法師浮屠塔)

노촌魯村 2017. 2. 19. 15:04




금곡사지원광법사부도탑(金谷寺址圓光法師浮屠塔.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97호.경북 경주시 안강읍 두류리 9-1번지)

부도는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셔둔다. 금곡사터에 자리하고 있는 이 부도는 신라 진평왕 때의 승려인 원광법사의 사리를 모시고 있다.
원광법사(?∼630)는 화랑도의 생활신조인 세속오계를 제정한 인물로, 불교사상 뿐만 아니라 문장에도 능하여『걸사표』를 지어 중국 수나라에 보내기도 하였다. 진평왕 52년(630) 황룡사에서 돌아가시어 명활산에서 장사를 지낸 후 이곳에 그의 사리탑을 세웠다.
부도는 부서진 채 일부만 남아있던 것을 최근에 새로이 복원한 것으로, 3층 석탑의 형식을 하고 있다. 널다란 바닥돌 위로. 높직한 1층 기단(基壇)을 두고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려 놓았는데, 그 중 바닥돌과 탑신의 1층 몸돌 및 3층 지붕돌만이 원래의 것이다. 탑신의 1층 몸돌은 네 면마다 문모양의 무늬를 두고 그 안을 살짝 파내어 불상을 도드라지게 새겨 두었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윗면에는 느린 경사가 흐른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있다.
신라가 통일하기 이전에 세운 것으로, 일반 석탑의 형식을 하고 있는 독특한 모습의 부도이다. (출처:문화재청)

















금곡사 약사전


 


금곡사 나한전


금곡사 삼성각

     

청도 운문사의 벽화(원광법사가 귀산.취항에게 세속오계를 전하는 모습)

원광법사가 수나라에서 수행을 하고 돌아와자 귀산과 추항이 찾아와서 “우리는 속세의 사람이니 사군자와 교유하는 데 필요한 심신수양의 계를 알려 달라.라고 요청한다. 이때 원광법사와 귀산. 추항은 모두 화랑이 아니었다. 이에 원광이 말하기를 “불계로는 보살계가 있어 이를 십계로 삼고 있으나, … 지금 세속오계가 있으니 …”라며 알려 준다. 이때 원광법사가 지었다는 말은 없고 “세속오계가 있으니”라고 하여 이미 남이 만든 계율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사군이충(事君以忠) : 충성으로써 임금을 섬기어야 한다.

사친이효(事親以孝) : 효로써 부모를 섬기어야 한다.

교우이신(交友以信) : 믿음으로써 벗을 사귀어야 한다.

임전무퇴(臨戰無退) : 싸움에 나가서 물러남이 없어야 한다.

살생유택(殺生有擇) : 살아있는 것을 죽일 때에는 가림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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