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110여 년 만에 원주 고향으로 -2019.6.20 건축분과 문화재위원회,원주 법천사지로 이전 결정- |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2019년 6월 20일 열린 건축문화재분과 문화재위원회의 검토 결과,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국보 제101호, 이하 지광국사탑)을 원래 있던 곳인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의 법천사지로 이전을 결정했다.
지광국사탑은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사에 세워졌던 고려 시대 국사(國師) 해린(海麟, 984-1070)의 승탑이다. 독특한 구조와 화려한 조각, 뛰어난 장엄장식으로 역대 가장 개성적이고 화려한 승탑으로 꼽힌다. 일제강점기인 1911년 원주에서 서울로 반출, 1912년 일본 오사카로 반출되는 등 10여 차례의 이건과 한국전쟁 중 폭격을 받아 파손되는 등 역사적 고난과 아픔을 겪어오다, 110여 년 만에 고향인 원주 법천사지로 복귀가 결정된 것이다. 현재 법천사지에는 옛 탑 자리가 그대로 남아 있고 당시 함께 조성된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 탑비(국보 제59호)가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 국사(國師): 신라·고려 시대에 있었던 승려의 최고법계
* 승탑(僧塔):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봉안한 묘탑. 부도(浮屠, 浮圖)
이번 위원회에서는 지광국사탑을 원주 법천사지로 이전을 결정했으나, 승탑의 원래의 위치에 보호각을 세워 복원하는 방안과 법천사지 내 건립을 추진 중인 전시관 내부로 탑과 탑비를 함께 이전하여 보존·전시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앞으로 보존환경이 석탑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추가적인 검토와 관계전문가 논의 등을 거쳐 최종 결정하기로 하였다.
* 원주시는 약 15년간 진행된 법천사지 발굴과정에서 출토된 유적들을 종합적으로 전시‧홍보할 수 있도록 유적전시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음
이는, 승탑의 원래 위치로의 복원 방안은 탑과 탑비의 보존 상태를 감안할 때 보호각 설치가 불가피하며, 보호각의 설치로 인한 주변 경관 저해 문제가 제기되었고, 전시관으로의 이전 방안은 최적의 보존환경 구축이 가능하지만, 원래의 위치에 대한 진정성 측면에서 문제가 제기된데 따른 것이다.
참고로, 지광국사탑은 2005년과 2010년 시행된 정기조사와 2014년 문화재 특별 종합점검, 2015년 시행한 정밀안전진단 등에서 다수의 균열과 모르타르(mortar) 복원 부위 탈락 등이 확인되었다. 특히, 모르타르로 복원된 옥개석(屋蓋石, 지붕돌)과 상륜부는 구조적 불안정까지 더해져 석탑의 추가적인 훼손이 우려되면서 2015년 9월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전면 해체‧보존처리하기로 결정된 바 있다.
이후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16년 5월부터 보존처리를 시작하여 현재까지 해체부재들을 기록하고, 모르타르를 제거하고, 파손된 부재를 접착하고, 결실된 부재들에 대해서는 새 돌로 제작하는 등의 보존처리를 해오고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석재의 산지(産地) 분석, 결실부재에 대한 복원도상 연구, 무기질 결합재의 성능개선 연구 등 부차적인 학문적 성과도 내고 있다.
문화재청은 올해까지 지광국사탑의 보존처리를 마무리할 예정이며, 외부 환경 등으로부터 탑을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하여 지속 노력할 계획이다.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주요 이건 내역 |
회차 |
연 도 |
주 요 내 용 |
비 고 |
1 |
1911 |
원주 법천사지 반출 → 서울 명동(무라카미 병원) |
|
2 |
1912 |
서울 남창동 이전(와다 저택의 정원) |
『현묘탑강탈시말』 |
3 |
일본 오사카 반출(5월, 후지타 헤이타로 남작) |
||
4 |
국내 반환(10~12월 중) |
||
5 |
1915 |
경복궁 내 조선물산공진회 미술관 앞 정원으로 이전 |
조선물산공진회장 평면도(1916) |
6 |
1923 |
경복궁 내 경회루 동편 근정문 부근 이전 |
유리건판, 총독부박물관 배치도(1926) |
7 |
1932 |
경복궁 내 해체 및 재건립 (경회루 동편 사정전과 아미산 사이) |
유리건판, 총독부박물관 관람안내도(1936) |
8 |
1957 |
국립중앙박물관의 재건보수공사(11월) |
6.25 전쟁 중 파손 |
9 |
1990 |
국립고궁박물관(당시 국립중앙박물관) 뒤뜰 이전 |
경복궁 복원사업 |
10 |
2016 |
국립문화재연구소로 해체, 이전(보존처리 중) |
|
<출처 :문화재청>
원주 법천사지(原州 法泉寺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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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법천사지(原州 法泉寺址.사적 제466호. 강원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629번지 외)
『고려사』, 『신증동국여지승람』, 『동문선』 등 문헌에서 전하는 법천사(法泉寺)는 신라말에 산지 가람으로 세워져 고려시대에 이르러 대대적으로 중창된 사찰이다. 특히 화엄종과 더불어 고려시대 양대 종단이었던 법상종의 고승 정현이 주지로 있어 법상종 사찰로 번성하였으며, 국사(國師)였던 지광국사 해린이 왕실의 비호하에 법천사로 은퇴하면서 크게 융성하였다가 조선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다.
법천사에는 우리나라 묘탑 가운데 최대의 걸작으로 평가되는 지광국사현묘탑(智光國師玄妙塔, 국보 제101호)과 탑비(塔碑, 국보 제59호)가 문종에 의해 세워졌는데, 그 중 탑은 일제에 의해 경복궁으로 옮겨져 있으며, 법천사지에는 탑비를 비롯하여 지광국사현묘탑지와 부도전지, 당간지주 등이 남아 있다.
2001년부터 2004년에 걸쳐 실시한 4차례의 시·발굴조사 결과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시기의 건물지 19동과 우물지 3개소, 석축 및 담장유구, 계단지를 비롯하여 금동불입상, 연화대석, 각종 기와류 및 자기류 등의 유물이 확인되어 우리나라 불교사 연구에 귀중한 유적으로 평가된다.(출처 : 문화재청)
◇시대 : 신라말 고려 초기 대표적인 법상종(法相宗) 사찰
◇유구 현황 : 명봉산(鳴鳳山) 자락에 위치해 있는 법천사 터에, 당간지주를 비롯하여 지광국사 현묘탑비(智光國師 玄妙塔碑)와 법당터 및 석탑의 일부 등이 남아 있으며, 주변에는 이 절터에서 나온 석재(石材)들이 흩어져 있다. 절터의 동편 산기슭에는 지광국사의 부도를 모셨던 탑전지(塔殿址)가 남아 있다. 부도는 서울 경복궁내로 옮겨졌으나 탑비는 그대로 남아 있다.
내력 : 법천사에 관하여 남아있는 최초의 기록은 928년(신라 경순왕 2)으로, 신라 하대에 이 지역의 대표적 사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초기 유가종사원으로 금산사와 함께 개성 밖 지방 선종사찰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무신정권 이전까지 법상종의 대표적인 사찰로 왕실과 문벌귀족의 후원을 받아 번성한 사찰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10세기에서 12세기까지 관웅(寬雄), 지광국사(智光國師) 해린(海鱗), 정현(鼎賢), 덕겸(德謙), 관오(觀奧), 각관(覺觀) 등 유명한 승려가 계셨다. 조선 초기 유방선(柳方善1388-1433)은 이 곳에 별서를 만들고 제자를 가르쳤는데 이 때 한명회(韓明澮)․서거정(徐居正)․권람(權擥) 강효문등이 그에게서 배웠다. 1609년 허균(許筠)이 방문했을 때에는 이미 폐허로 변해 있었음을 그의 기록을 통해 알수 있다. 법천사조사는 1938년 소천경길, 1965년 국립주아앙박물관에 의하여 탑비전지 일대에 관한 조사, 2001년 이후 2004년 까지 4차에 걸쳐 강원문화재연구소에 의하여 발굴조사 된 바 있다.
◇가람배치의 양식적 특성 : 남한강과 연결된 법천을 끼고 가람이 조성되어 있어 거돈사지와 섬강을 끼고 조성된 흥법사지 그리고 여주의 고달사지와 함께 한강변 수상교통과 관계 깊은 사찰로 추정된다. 주변에 법천사 도요지가 있는 점등으로 미루어 보면 사역이 상당했고 사원촌이 조성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동편 명봉산자락에 조성된 가람으로 서향을 하고 있는 당간지주와 지광국사 현묘탑비의 이격 거리가 상당한 것으로 보아 경기도 양주군 회암사지에 버금가는 규모의 사지이었다고 추정된다. 특히 이 사지는 발굴결과 드러난 건물지 배치 형태를 보면 남북으로 평지가 조성되어 있어 대부분의 전각이 지형을 따라 분포되어 있고 대부분의 유구가 임진란 이후 전란으로 불에 타고 상당수의 석물은 일제 강점기 도굴 약탈되어 사지 훼철이 심해 배치 양식을 복원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형이 약간 경사진 평지에 가까운 지형이라는 점이나 현묘탑비 부분에 전각지가 수평으로 분포함 점등이 회암사지와 유사한 구성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지형의 높이 차이에 따라 계속 단을 지어 전각이 배치되고 중심축이 형성된 고려시대 전형적인 대가람 형식으로 추정된다. 특이한 사실은 현재 현묘탑비를 중심으로 남아 있는 두 개의 건물지가 탑과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우선 현묘탐비 왼쪽 끝에 있는 건물지는 초석의 배열로 보아 정면 2칸 측면 2칸의 건물로 추정되는데 내부에 훼손된 석탑이 남아 있는 점으로 보아 석탑 보호각으로 추정되는데 이러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든 건물유형으로서 전국에서 유일한 건물지이다. 또한 기둥뿌리와 기둥뿌리 부분을 잇는 하방을 지지하고 보호하기 위한 일자형 초석이 지대석의 형태로 외벌대로 이어져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면 상당한 공력을 들여 만든 역사성을 지닌 건물지라고 생각된다.
중앙부의 건물지는 기단부가 탑의 기초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지대석이 깔려있어 마치 감은사지 서삼층석탑에서 볼 수 있는 탑의 기단부와 같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이곳은 목탑지가 아닌가 생각된다. 특히 건물지 옆에 불상의 뒤를 장식하던 광배(光背) 유구가 있고 계단 사이를 장식하던 대담하고 화려한 조각의 답도석(踏道石), 그리고 예배를 드리던 단인 배례석(拜禮石)이 있다.(출처 : 원주시청)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센터장 정소영)는 2016년부터 5년여에 걸친 지광국사탑 보존처리를 완료했다. 또한, 최근 연구 결과를 담은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보존‧복원Ⅲ> 보고서를 발간해 누리집에 공개했으며, 지광국사탑 관련 문화재 정보와 보존처리 관련 내용을 웹툰으로 제작해 국민에게 온라인 공개하기로 했다.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국보 제101호)은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사지에 세워졌던 고려 시대 국사(國師) 해린(海麟, 984~1070)의 승탑으로, 독특한 구조와 화려한 조각, 뛰어난 장엄장식으로 역대 가장 개성 있고 화려한 승탑으로 꼽힌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인 1912년 일본 오사카로 반출되는 등 십여 차례의 이건과 한국전쟁 중 폭격을 받아 파손되었던 역사적 고난과 아픔을 겪은 바 있다.
* 국사(國師): 신라·고려 시대에 있었던 승려의 최고법계
* 승탑(僧塔):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봉안한 묘탑. 부도(浮屠, 浮圖)
* 장엄장식: 석탑을 아름답고 엄숙하게 꾸미기 위해 장식된 문양
* 이건: 석탑을 해체하여 옮김
지광국사탑은 그간 두 차례 있었던 정기조사(2005년, 2010년)와 특별 종합점검(2014년), 정밀안전진단(2015년) 결과, 다수의 균열과 모르타르(mortar)로 복원된 부위에서의 손상이 확인되었다. 게다가 모르타르로 복원된 옥개석(屋蓋石, 지붕돌)과 상륜부는 구조적 불안정까지 더해져 추가 훼손 우려까지 제기되면서 마침내 2015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전면 해체해 보존처리를 하는 것이 결정된 바 있다.
* 모르타르(mortar) : 1957년 시멘트와 철근 등을 사용하여 복원한 부분을 지칭함
이에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2016년 석탑을 완전 해체하고 지금까지 보존처리를 진행해왔다. 이 과정에서 해체부재들을 일일이 기록했으며, 모르타르는 걷어냈다. 결실되어 없어진 부재에 대해서는 신석재로 새로 제작했고, 파손부재들은 접착하였다.
부득이 새로 구해야 하는 신석재들은 산지(産地)를 과학적으로 추정하여 가능하면 그 산지에서 구하고자 했다. 전국의 주요 산지를 조사한 결과, 신석재들은 지광국사탑이 있던 원주에서 채석됐으며, 탑이 조성될 당시에 사용된 석재와 가장 유사한 재질로 구했다.
또한, 유리건판과 실측도면 등을 바탕으로 도상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여 결실부분의 도상을 복원하였고, 전통기술과 도구를 사용하여 가공하고 접합하였다.
이외에도 추후 탑이 복원될 때 사용될 무기질 결합재 연구 등에서도 학문적 성과를 도출해냈다.
* 복원석재: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 귀래리 석산에서 채석함
* 도상 연구: 일제강점기의 유리건판과 실측도면 등을 참고하여 복원하는 부분의 도상을 연구함
* 무기질 결합재: 산화마그네슘 인산염 기반 모르타르로 백화현상 등이 발생하지 않는 특성이 있어 원주 현장에서 복원할 때 부재 간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한 용도로 사용할 예정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이번 보존처리를 통해 전체 29개 부재 중 19개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 신석재를 사용했으며, 옥개석과 앙화, 보륜 등 상륜부 부재는 절반 정도를 신석재로 복원하여 구조적 안정성도 확보하였다.
또한, 탑신석 사리공에서 발견된 옥개석 파손부재 조각과 법천사지에서 발굴된 하층 기단갑석 조각을 과학적 조사와 고증을 거쳐 원래 위치에 복원하였고, 1957년 수리 당시 잘못 복원된 옥개석의 방위와 추녀 위치를 바로잡는 등 과학적‧인문학적 융복합 연구를 통해 지광국사탑의 잃어버렸던 본래의 모습을 최대한 되찾으려고 노력했다.
* 앙화(仰花): 탑의 복발(伏鉢) 위에 꽃잎을 위로 향하여 벌려놓은 모양으로 조각한 것
* 보륜(寶輪): 탑의 상륜부에 들어가는 원형 모양의 부재
이번에 발간한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보존‧복원Ⅲ> 보고서에는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진행된 사업내용과 연구, 복원 과정을 상세히 담았다.
가장 유사한 재질의 신석재를 원주에서 찾아 이를 탑에 끼워 넣는 과정, 장엄 조각과 문양에 대한 연구, 특허기술을 활용해 파손부위에 대한 구조보강 과정 등도 꼼꼼하게 담았다. 보고서는 국립문화재연구소 누리집(http://www.nrich.go.kr, 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에도 공개하여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이후 지광국사탑의 이전 복원에 대해서는 문화재청과 원주시가 긴밀히 협의해 문화재가 잘 보존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예정이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이번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의 보존처리 완료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석조문화재의 원형보존과 과학적 보존처리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계획이다.
The stupa of State Preceptor Jigwang, restoring the original shape after conservation treatment for 5 years
- Publication of the conservation treatment and research achievements on process by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
The Cultural Heritage Conservation Science Center (CHCSC, Director, Jeong Soyoung) in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NRICH) under th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CHA) of Korea completed the conservation treatment of the stupa of State Preceptor Jigwang for 5 years since 2016. In addition, CHCSC published a report, <Conservation Restoration for the stupa of State Preceptor Jigwang from Beopcheonsa Temple Site in Wonju Ⅲ> and www to the public through the homepage of NRICH and planned the on-line release of the webtoon about information and conservation treatment on cultural heritage related to the stupa of State Preceptor Jigwang
The National treasure no. 101, the stupa of State Preceptor Jigwang from Beopcheonsa Temple Site in Wonju was set up in Beopcheonsa Temple, Wonju, Gangwon-do Province, Korea as the stupa for Haerin(海麟, 984-1017), who was a state preceptor in Goryo Dynasty and it has unique structures and splendid carvings, impressive decorations, which makes it considered as the most characterful and splendid stupa in history. However, it went through several adversities including that it has been taken to Osak, Japan in 1912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rule, and damaged by bombing during the Korean war.
From the result of the regular inspection twice (2005, 2010), special comprehensive inspection (2014) and precise diagnosis (2015) on the stupa, various cracks and damaged parts which were restored with mortar in the past were found. Moreover, there was the structural instability of its roof and finial, which raised concern about additional damage, and finally through the deliberations by the cultural heritage committee, it was decided that the stupa needs to be dismantled and the conservation treatment is required.
Accordingly, CHCSC has carried out the complete dismantling in 2016 and conservation treatment for the stupa until recently. During the process, all units were documented for each and mortar was removed. Missing parts were replaced with new stone and damaged parts were joined.
Unavoidably, when new stone was needed for restoration, CHCSC tried to obtain stone from its original production area by scientifically investigating its source as possible as it can. As the result of its investigation on the production area, it was identified that stone used for the stupa was quarried from Wonju, which helped CHCSC choose the most similar stone materials to original ones used when the stupa was built at that time.
Furthermore, based on glass photo materials and drawings of the stupa, the research on its iconography was carried out to restore missing parts, and its units were processed and joined by traditional techniques and tools. And also, academic achievements were attained in the research of inorganic binder which had been used for restoration of the stupa.
NRICH used new stone in part for 19 units among total 29 units during this conservation treatment, and new stone was added for half of the roof and finial, which gave structural stability. Besides, destroyed pieces from the carving of the roof which were found in the hole of its sarira and carvings on the lower stylobate were restored to their original places through scientific and historical research. And CHCSC made great efforts to restore its original shape which was lost in the past through the convergence of research in the field of science and humanities.
The publication of <Conservation Restoration for the stupa of State Preceptor Jigwang from Beopcheonsa Temple Site in Wonju Ⅲ> includes the contents of the project, research and restoration process in details up from 2018 to 2019. The process of inserting new stone which is the most similar stone material found from Wonju to the stupa, research on splendid carvings and decorations and structural strengthening for damaged parts by utilizing the patent technology were specifically included as well. The access to this report is available at the homepage of NRICH(https://portal.nrich.go.kr) and www to the public.
Subsequently, the plan of its final location for the stupa will be discussed by CHA and Wonju City to decide its proper place for preserving the stupa as cultural heritage.
Based on this completion of the stupa of State Preceptor Jigwang from Beopcheonsa Temple Site in Wonju, CHCSC in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under th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of Korea will try to continue its effort for the preservation of original shapes for stone cultural heritage as well as scientific conservation treatment.
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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