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의 허가를 받아 경주시(시장 주낙영)가 추진하고 (재)신라문화유산연구원(원장 박방용)이 조사 중인 경주 남산 약수곡(석조여래좌상절터) 제4사지에서 통일신라 시대 석불좌상에서 분리된 것으로 보이는 불상의 머리(이하 ‘불두佛頭’)가 발견되었다.
* 발굴현장: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산1-1번지 일원
이번 발굴조사는 경주 남산 약수곡(석조여래좌상절터)경역에 방치된 석불좌상을 보수 정비하기 위한 전 단계로, 석조여래좌상의 원위치를 확인하고 주변을 정비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경주 남산의 불적’에 소개되어 있는 석조여래좌상은 본래 있던 위치(미확인)에서 옮겨진 상태로 반듯하게 놓여 있었고, 그 옆에 불상의 중대석과 상대석이 불안정한 상태로 노출되어 있었다. 불상의 하대석도 원위치에서 움직여 동남쪽 위에 있는 큰 바위 아래에 바로 놓여 있다.
* 머리 없는 석조여래좌상 크기: 높이 109cm, 어깨너비 81cm, 무릎너비 116cm, 목지름 소 22.5cm, 대 27cm
이번에 새롭게 발견된 불두는 큰 바위 서쪽, 즉 하대석 서쪽 옆의 땅속에 묻힌 상태였다. 머리는 땅속을 향하고 얼굴은 서쪽을 바라보고 있는 상태였으며, 안면 오른쪽 일부와 오른쪽 귀 일부에서는 금박이 관찰되었다.
미간 사이의 백호를 장식했던 둥근 수정은 떨어진 채 불두 인근에서 같이 발견되었는데, 통일신라시대 석조불상의 원형을 고증하는데 있어 중요한 학술연구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불두 주변에서는 소형 청동탑, 소형 탄생불상 등도 함께 출토되었다.
* 불두 크기: 높이 50cm, 너비 35cm, 둘레 110cm, 목둘레 83cm, 귀길이 29cm, 귀와 귀 사이 35cm
머리가 유실된 석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 후기 작품으로, 경주 석굴암 본존불상과 같이 항마촉지인 도상을 하고 있다. 통일신라 석불좌상의 대좌(불상을 놓는 대)는 상당수가 팔각형으로 조성된 것에 비해 이 불상의 대좌는 방형(사각형)으로 조각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방형대좌는 최근 경주 이거사지 출토품으로 알려진 청와대 안 녹지원 석불좌상과도 동일한 형식이다.
* 항마촉지인: 석가모니가 마귀의 무리를 항복시키는 인상(印相). 왼손은 펴서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단전에 올려놓고 오른손은 펴서 무릎 아래로 땅을 가리키는 모습이다. 싯다르타 태자가 깨달음을 얻어 붓다가 되는 순간의 모습을 상징
이번 조사구역에서는 시기를 달리하는 두 개의 건물터 층이 위아래로 겹쳐진 채 확인되기도 했다. 위층에서는 고려 시대 기와가 출토되었으며, 북쪽에 자리한 마애대불과 같은 시기의 것이다. 석불좌상과 동시대 층인 아래층에서는 통일신라시대 평기와가 주로 출토되고 있으며, 여러 점의 연화보상화문수막새와 암막새도 함께 확인되었다. 아울러 주변에서는 통일신라 시대 건물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공석 등도 함께 발굴되었다.
이번에 발견한 불두에 대해서는 통일신라 석조불상·마애불상의 개금(改金, 불상에 금칠을 다시 함)과 채색 여부에 대한 학술적인 논의를 포함해 추가 조사가 있을 것이다. 경주시는 이번에 찾은 불두와 석불좌상을 복원하고, 주변도 정비하기로 했다.
(재)신라문화유산연구원 보존처리실에서 2020년 6월 3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 사이 석불좌상 불두 등 출토유물을 언론에 공개할 예정이며, 2020년 6월 10일부터는 일반인에게도 공개할 예정이다.
* (재)신라문화유산연구원 보존처리실 : 경북 경주시 현곡면 가삼골 1길 19-10
출처 : 문화재청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 발행한 ‘경주 남산의 불적’의 약수골 석조여래좌상
경주 남산 약수곡 제4사지 발굴조사 출토 약수곡 석불좌상 불두
조사개요
○ 조사명 : 경주 남산 약소곡 제4사지 발굴조사
○ 조사지역 :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산 1-1번지(시굴 800㎡. 정밀발굴 545㎡)
○ 조사목적 : 석불좌상의 복원 기초자료 및 학술자료 확보
○ 조사기간 : 2019. 7. 8 ∼ 2020. 6. 13
조사 성과
고려 석축 및 건물지
전면 남서향의 15단 이상의 고려시대 석축을 확인하였다. 전면 너비는 3m 내외이며, 측면에는 남서-북동방향으로 15m 이상의 석축이 보축된 것으로 판단되나, 상부가 대부분 유실되어 원형 파악이 어렵다. 이 석축의 상부에서 다량의 고려시대 기와와 벽체 등에 사용되었을 황갈색 점토를 확인하였다.
2. 통일신라 건물지
대형 방위의 남쪽에서 건물의 시설로 판단되는 2열의 석재를 확인하였다. 석렬은 7점 이상의 치석된 석재를 사용하였고, 이 주변에서 통일신라 기와류와 용문 암막새 등을 확인하였다. 석불좌상 대좌 하대석 아래에는 다량의 기와편이 평평하게 깔려있고. 1m 정도의 치석된 장대석도 이동된 대형바위 아래에 깔려 있는 걱을 확인하여 부분적으로 노출하였으나, 정확한 구조는 확인할 수 없었다. 이외에 주변에서 원형으로 가공된 초석과 치석된 장대석을 확인하였다.
3. 석불좌상 불두 출토
조사구역 가운데의 대형 바위 서쪽 측면 아래에서 석불좌상의 불두가 노출되었다. 불두 조변에서 청동소형탑, 소형 탄생불상 등과 통일신라 기와류가 출토되었다.
4. 석불좌상 원위치
석불좌상과 대좌는 원위치에서 이동된 것을 확인하였으나, 원위치는 불분명하다.
약수곡 석불좌상 및 불두 출토 현황
현재 경주 남산 약수곡 석불좌상은 머리가 결실된 채 본래 위치(미확인)에서 옮겨진 상태로 반듯하게 놓여 있고, 불상 대좌의 중대석과 상대석은 그 옆에 불안정한 상태로 노출되어 있으며, 하대석도 원위치가 아닌 동쪽의 큰 바위 아래에 놓여 있다.
이번에 새롭게 발견된 불두는 큰 바위의 서쪽 땅속에 묻힌 상태였다. 오른쪽 머리는 땅속을 향하고 얼굴은 서쪽을 바라보고 있는 상태였으며, 오른쪽 안면 일부와 오른쪽 귀 표면에서는 금박이 관찰된다. 미간 사이의 백호를 장식했던 둥근 수정은 떨어진 채 불두와 함께 발견되었고, 불두 주변에서는 소형 청동탑, 소형 탄생불상 등도 함께 출토되었다.
머리가 분리된 석불좌상은 통일신라시대 불상으로, 경주 석굴암 본존불과 같은 수인인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다. 통일신라 석불좌상의 대좌는 상당수가 팔각형으로 조성되었는데, 약수곡 석불좌상의 대좌는 방형으로 조각된 것이 특징이다. 방형대좌는 최근 경주 이거사지 출토품으로 알려진 청와대 녹지원에 있는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보물 제1977호)’과 동일한 형식이다.
(출처 : 재단법인 신라문화유산연구원 불두공개 자료(2020.6.10.))
공개행사에서 촬영한 사진
경주약수계곡마애입불상(慶州藥水溪谷磨崖立佛像.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4호. 경북 경주시 내남면 용장리 산1-1번지)
경주 금오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바로 쏟아져 내린 골짜기를 산호곡 또는 약수계곡이라 한다. 이 계곡의 바위면에 높이가 8.6m나 되는 거대한 불상이 새겨져 있는데, 현재는 머리 부분이 없어지고 어깨 아래 부분만 남아 있다. 머리는 따로 만들어 붙인 듯 목부분에 머리를 고정시켰던 구멍이 뚫려 있다.
바위면의 양 옆을 30㎝ 이상 파내어 불상이 매우 도드라지게 보이며, 손이나 옷주름 표현에서도 10㎝ 정도로 깊게 돋을새김하여 입체감이 뛰어나다. 왼손은 굽혀 가슴에 대고 오른손은 내려서 허리 부분에 두었는데, 모두 엄지, 검지, 약지를 맞대고 있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입으며, 옷자락이 어깨의 좌우로 길게 늘어져 여러 줄의 평행 주름을 만들고 있다. 가슴 부분에는 부드러운 U자형 주름이 무릎 가까이까지 촘촘하게 조각되었으며, 다시 그 아래로 치마와 같은 수직의 옷주름이 표현되어 있다. 이와 같이 신체를 감싼 옷주름은 규칙적인 평행선이어서 다소 단조롭고 도식적이기는 하지만 선이 분명하여 힘이 있으면서도 유려하다.
이러한 옷주름은 월성 골굴암마애여래좌상(보물 제581호)이나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63호) 등 9세기 후반의 불상에서 유행하던 것으로, 불상의 형태와 함께 제작시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출처 : 문화재청)
금오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바로 쏟아져 내린 급경사의 골짜기를 산 호곡 또는 약수계곡이라 부른다. 경주 배리마을 앞에서 계곡을 따 라 약 500m 쯤 올라가면 탑석의 재료가 흩어져 있는 절터가 나온다.
거기서 다시 약 200m 위쪽에 2개의 절터가 있는데 남쪽의 것은 규모가 매우 크고 전망이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 절터 뒤 약 100m 높은 곳에 약수가 나오고 있는 그 남쪽면에 석가여래의 큰 마애불입상이 있다. 머리부분과 광배는 별도의 돌로 만들었으나 약 200m 아래 절터에 떨어져 깨져 있고 마애불의 몸통만이 남아 있다.
목부분에 머리를 고정시켰던 구멍이 뚫려 있다. 발은 처음부터 조 각하지 않은 듯하며 통견의(通肩衣)에 옷자락은 가슴부터 발끝까지 평행주름모양을 하고 있다. 오른손은 내려서 엄지, 중지, 약지를 맺 었고 왼손은 들고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치마부분의 옷자락은 이중 수직평행을 이루고 있으며 이 불상이 대작이나 너무 단순화시킨 감이 있다. 불상의 높이는 8.6m이다.(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선총독부 발행한 ‘경주 남산의 불적’의 약수골 경주약수계곡마애입불상(慶州藥水溪谷磨崖立佛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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