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99호 「강릉향교(江陵鄕校)」의 명륜당(明倫堂) 등 20건의 서원(書院)·향교(鄕校) 문화재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하였다.
문화재청은 2018년부터 ‘건조물 문화재에 대한 지정가치’ 주제연구를 통하여 지난해 누정(樓亭) 문화재 10건을 보물로 지정한 바 있으며, 2019년부터는 430여건의 서원(서당 포함)과 향교들 중 전문가 사전 검토를 거쳐 선정한 총 33건을 대상으로 지정조사해 최종적으로 이번에 20건의 서원과 향교들을 대거 보물로 지정 예고하게 됐다. 이번에 지정된 서원과 향교 문화재들을 지역적으로 살펴보면 강원 2건, 경기도 3건, 경상도 11건, 충청도 1건, 전라도 3건이며, 서원이 3건, 향교가 14건, 서당이 3건이다. 참고로, 현재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서원은 7건, 향교 8건이며, 서당은 아직 보물로 지정된 곳이 없는 상태다.
이번에 보물로 예고된 서원과 향교 문화재들은 ▲ 절제·간결·소박으로 대변되는 유교문화를 건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고, ▲ 역사적 인물이 건축에 관여하거나 배향되고 있는 역사성이 잘 담겨있고, ▲ 남북의 축을 따라 동·서에 대칭으로 건물을 배치하고 공간구성이 위계성을 보이고 있고, ▲ 중수, 중건 등의 건축이력이 기록물로 잘 남아 있는 등의 가치와 특징들이 높이 인정된 건축물들이다.
서원(書院)은 조선시대 향촌에 근거지를 둔 사림(士林)이 성리학 이념을 바탕으로 설립한 사립 교육기관으로, 선현(先賢)에 대한 제사와 학문의 연구, 후학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였다. 서원은 조선시대 사림(士林)이 성리학을 심화, 발전시켜 사회에 정착시키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하였으며, 학문과 교육의 지방 확대에 공헌하였다. 성리학적 가치관과 자연관이 반영된 서원은, 유식(遊息)·강학(講學)·제향(祭享) 기능을 중심으로 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고, 시각적으로 조망이 탁월한 곳에 위치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 유식(遊息): 몸과 마음을 쉬면서도 학문에 마음을 두는 것
향교(鄕校)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전국의 각 지방에 설립된 관립 교육기관으로,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의 선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인재를 양성하고 유풍(儒風)을 진작시키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향교의 공간은 크게 강학과 제향 기능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건물은 엄격한 유교적 예법에 따라 명확한 직선 축과 좌우 대칭의 배치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방 관아 혹은 객사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서당(書堂)은 조선시대 향촌 사회에 생활 근거를 둔 사림과 백성이 중심이 되어 마을을 단위로 설립한 사립학교로, 조선 중기 이후 유교적 사회 체제가 강화되면서 전국에 설치되었다. 향교나 서원과 달리 일정한 격식이나 규정이 없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누구나 건립할 수 있었으며, 주로 향촌 사회에 강한 영향력을 지녔던 양반 가문에 의해 운영되었다. 글을 읽거나 쓰는 등 향교나 서원에 들어가기 전에 익혀야 할 기본자세와 기초적인 유교 경전을 학습하였다.
「강릉향교 명륜당」은 강학공간의 중심으로써 유교 이념교육을 실현시키기 위해 건립된 건물이다. 정면 11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의 건물로, 전국 향교 명륜당 중 가장 큰 규모의 누각형 건물이다. 다른 일반 향교와는 달리 누각 문루형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조선 초기 문루에서 명륜당으로 정착되는 과정의 과도기 형태로 남아있는 중요한 사례로 볼 수 있다.
「강릉향교 동무·서무·전랑」은 1963년에 보물로 지정된 강릉향교 대성전의 일곽에 해당하는 건물들로 이전이나 이축 없이 건립 당시의 제자리를 고수하고 있고, 대성전과 함께 향교건축의 전형을 담고 있다. 동무(東廡)·서무(西廡)는 정면 5칸, 옆면 1칸 규모의 단층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동무에 홍유후, 설총 이하 58위, 서무에 최치원 이하 57위가 봉안되어 있다. 전면 양 옆칸에 사롱창(斜籠窓)이 설치되어 있는데, 창틀의 모서리가 연귀맞춤으로 되어 있고, 안쪽으로 둥글게 잘라내고 다듬어 실내에 많은 채광과 환기가 잘 될 수 있도록 고려한 고식(古式)이 눈에 뛴다.
* 맞배지붕: 건물의 모서리에 추녀가 없고, 용마루까지 측면 벽이 삼각형으로 된 지붕
* 사롱창(斜籠窓) 채광이나 환기용으로 상·하인방에 가는 살을 세워 댄 창
* 연귀맞춤: 액자틀처럼 모서리부분을 45도로 맞춤하는 것
강릉향교의 전랑(前廊, 복도)은 전면의 학업공간과 후면의 제향영역을 구분 짓는 출입문인 내삼문과 좌우로 달린 낭(廊)이 하나의 건물로 기능한 것으로, 정면 9칸, 옆면 1칸 규모의 단층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정면 정칸과 좌우 퇴칸에 문이 설치되고, 나머지는 벽체로 마감되었다. 일반적인 향교의 내삼문의 역할을 하고 있으나 다른 향교와는 달리 행랑형식으로 되어 있어, 명륜당과 마찬가지로 강릉향교만의 독특한 건축적 특성이다.
* 퇴칸: 고주 안쪽 내부공간을 둘러싼 외부공간
* 내삼문: 제향의식이 행해지는 문묘구역의 주된 출입문으로 신문, 신삼문, 내신문 등으로 불림
「수원향교 대성전」은 1789년(정조 13) 읍치 이전에 따라 현 위치로 이건했으며, 정조의 어명을 받아 1795년(정조 19) 2고주 7량가 20칸 규모로 다시 지은 건물이다. 대성전의 규모는 서울 문묘, 나주향교, 상주향교, 제주향교, 대정향교와 함께 규모가 큰 편에 속하며 경기도 내 향교 대성전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다. 특히, 향교가 현 위치로 이건되고 대성전이 새로 지어지는 과정은 당시 공사보고서라 할 수 있는 『화성성역의궤』등의 문헌에 상세히 전한다.
전체적인 구조를 이루는 가구법이나 주요 부재의 치목(治木)기법, 공포와 화반의 간결한 의장기법 등은 조선후기 익공식(翼工式) 건축의 완성단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18~19세기 조정에서 주도한 관영건축의 건축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 읍치: 조선시대 지방 고을의 행정이 행해지는 곳
* 화반: 포와 포 사이에 놓여 장혀(서까래 종류)를 받치고 있는 부재
* 익공식(翼工式): 창방과 직교하여 보 방향으로 새 날개 모양의 익공이라는 부재가 결구되어 만들어진 공포유형
「안성향교 대성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7세기 중엽에 재건된 이후로 현재까지 여러 차례 수리가 이루어졌으나 건축의 형태와 구조, 의장 등 전반에 걸쳐 건립 당시의 고식(古式)을 잘 유지하고 있다. 특히, 정면 툇보 위에서 주심도리를 감싸고 있는 승두의 사용, 서까래와 부연과 우물마루 귀틀의 치목(治木)기법 등에 고식(古式)이 잘 남아 있어 조선중기 건축기법의 연구에 귀중한 학술자료가 된다. 지붕가구의 삼중량 구성은 구부러진 대들보와 반듯한 직선의 중량, 종량들이 독특한 시각효과를 만들어 내고 임진왜란 직후 17세기 전반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시대성을 가지며, 기호지방에는 남아있는 사례가 많지 않은데, 안성향교(경기도 문화재자료 제27호), 양성향교(경기도 문화재자료 제28호), 죽산향교(경기도 문화재자료 제26호) 대성전 등 안성 지역 향교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지역성을 보인다.
* 툇보: 퇴칸의 고주와 전면 평주 사이에 걸리는 보
* 승두: 도리 하부에 설치하여 도리와 직교하는 부재를 안정적으로 고정시키는 목재
* 부연: 서까래 끝에 덧붙인 방형단면의 서까래로 부연이 있는 처마를 겹처마라 함
* 귀틀: 마루를 만들기 위해 기둥과 기둥 사이에 놓는 긴 목재
* 삼중량: 대들보-중보-종보 구조를 모두 갖춘 것
「안성향교 풍화루」는 중층 누각형태의 정면 11칸, 측면1칸의 장대한 규모를 가지며, 유식(遊息)을 위한 누와 향교 출입구 역할의 외문을 겸하는 문루로서, 현존하는 조선 시대 향교 문루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 제한적으로 공급될 수밖에 없었던 목재를 경제적으로 사용하여 효율적으로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하면서도 전체적인 시각적 안정감과 조화로운 비례를 갖춰 건축 조형미를 잘 구현하였다. 또한, 하층 기둥에 일부 남아있는 건립 당초 기둥의 자귀질 치목(治木) 흔적이나 17세기 시대적 특징을 잘 유지하고 있는 영쌍창(靈雙窓) 등은 조선 중기 건축기법 연구에 좋은 학술자료가 된다.
* 영쌍창(靈雙窓): 창호가 두짝인 쌍창 중 가운데 문설주가 있는 경우
「산청 단성향교 명륜당」은 1725년(영조 1)에 중건된 이래로 여러 차례 수리과정을 거쳐 누각형식의 독특한 평면을 잘 유지하고 있다. 동·서재가 명륜당 뒤쪽에 위치하는 경남지역 유일의 전당후재(前堂後齋)형 누(樓) 형식의 명륜당이라는 특징이 있다. 건물 중앙부의 높은 지붕(5량가(五樑家))과 좌우 익사(온돌방) 쪽의 낮은 지붕(3량가, 三樑家)이 접속하면서 공(工)자형 지붕을 형성했는데, 이러한 공(工)자형 지붕은 아산 맹씨 행단(사적 제109호), 안동 도산서원(사적 제170호) 농운정사, 호계서원(경북 유형문화재 제35호) 강당 등에서 볼 수 있으나 향교 명륜당으로는 단성향교 명륜당, 영양향교(경북 문화재자료 제75호) 명륜당, 구미 인동향교 명륜당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양식을 한 유례가 드문 건물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밀양향교 대성전」은 1602년(선조 35)에 중건된 이후 1617년(광해군 9)과 1820년(순조 20, 현 위치로 이건) 이건을 통해 17세기와 19세기의 건축수법과 형식, 기술 등이 혼재된 상태로 남아 있어 시대적 건축 기술의 흐름과 특징을 하나의 건물에서 보여준다는 점에서 건축양식사 차원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특히 대성전 정면과 배면에 사용된 익공(翼工)과 첨차(檐遮)의 초각수법이 다른데, 배면은 1602년 중건 당시의 수법이고 정면은 1820년 이건 이후의 것으로 다른 형식적 특징을 보여준다.
* 익공(翼工): 새 날개처럼 뾰족하게 생긴 보방향 부재
* 첨차(檐遮): 도리방향으로 놓인 공포부재
「밀양향교 명륜당」은 1618년(광해군 10)에 현 위치에 중건된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수리되었으나 건물의 구조와 평면형식, 공포 등의 세부기법, 배면 판문의 소박한 구성과 영쌍창(靈雙窓)에 사용된 중간설주의 흔적 등에서 중건 당시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어 조선 중기 명륜당의 건축 특성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상주향교 대성전·동무·서무」는 임진왜란 후 1610~1612년 사이에 재건되었으며 이후 몇 차례의 수리과정이 있었지만 규모와 구조, 형태는 조선중기 건립 당시의 원형을 대체로 잘 간직하고 있다. 대성전은 1610년(광해군 2)과 1617년(광해군 9) 중건 이후 원 위치에서 큰 변형 없이 조선 중기의 전형적인 대설위(大設位) 향교의 평면과 구조형태, 세부수법을 잘 간직하고 있다.
대성전의 5칸 전퇴개방형 규모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가진 서울 문묘 및 성균관 대성전(보물 제141호) 다음으로 큰 제주향교 대성전(보물 제1902호)과 같은 규모다. 조선 시대 향교의 기능에 따른 건물과 배치구성, 지방행정체계에 대한 설위형식이 지역별로 시기적 변화양상이 있었음을 밝힐 중요한 건축사적 특성을 가진 건물로 조선 중기 이후 향교 건축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 대설위(大設位): 조선시대에 관찰사가 상주하는 주(州)의 행정구역에 취해진 설위 형식
「경주향교 명륜당」은 1614년(광해군 6) 중건 이래 18세기(1705년)와 19세기(1841년, 1873년, 1880년)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는 오래된 건축물로, 우리나라 현존하는 향교 명륜당 가운데 객사형 건물(성균관, 나주향교 명륜당)을 제외한 단일 건물로는 가장 규모가 큰 사례다. 중수기 등의 문헌 기록이 풍부하게 남아 있어 건축 연혁을 자세히 알 수 있고, 기단과 초석에 사용된 석재의 가공, 익공의 초각, 지붕 가구의 구성 등에서 17세기 건축의 면모를 볼 수 있어서, 경주향교 내 대성전(보물 제1727호)과 호응하는 규모와 품격을 가지고 있다.
「경주향교 동무·서무·신삼문」은 2011년에 보물로 지정된 경주향교 대성전의 제향공간을 구성하는 건물들로, 1604년(선조 37)에 중건된 동무․서무는 정면 12칸으로 우리나라 향교의 무(廡) 건축물(서울 문묘 동무·서무 11칸, 상주향교 동무·서무 10칸) 가운데 가장 길며, 큰 도리칸의 규모를 갖고 있고, 장식을 지극히 억제하고 있다.
기둥과 인방재가 가로세로로 이루어진 격자형의 골격에 회벽으로 마감한 단순한 벽면과 홑처마의 맞배지붕, 수를 줄인 최소한의 창호와 3량가의 가구구성 등에서 조선 시대 제사건축의 이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신삼문은 기록상 대성전이 중건되는 1602년(선조 35)에 함께 중건되었다고 확인되는 경주향교 제향영역의 오래된 건축물이다. 평삼문의 형식과 문짝, 문얼굴(문짝을 달기 위한 방형 문틀), 홍살(붉은색 주칠을 한 세로살대) 등의 세부 형식에서 향교 제향 공간의 신문(神門)으로서의 역사적 모범이 될 만하다.
특히 문지방으로 사용되는 하인방의 하부에 신방목과 신방석이 남아 있는 것이 구조적으로 특이한 점인데, 이러한 특징은 대성전에서도 발견되며 신라시대의 수법이 그대로 남아 있은 것으로 보여 매우 주목되는 부분이다.
* 도리칸: 도리로 연결된 칸으로 대게 정면을 뜻함
* 신방목·신방석: 문설주(문짝을 달기 위한 방향 문틀 양쪽에 세우는 부재) 받침목·받침돌
「담양 창평향교 대성전」은 창건 이래 여러 번의 중수를 거쳤으며, 현재의 모습은 중수기를 통해 1689년(숙종 15)에 갖추어 진 것을 알 수 있다. 창평향교의 배치 형식은 ‘ㅁ’ 형으로 독특한 모습이며, 대성전 앞에 마당을 담장으로 구획하고 담장 밖 좌우에 동·서재를 두고 중심축선에서 약간 치우쳐 명륜당을 두었다. 향교건축에서 이러한 배치는 보기 드문 형식이다. 대성전 공포양식에서 보이는 교두형(翹頭形, 만두모양)으로 된 헛첨차 등은 향교에서는 보기 드물고 고식(古式)을 보여 주는데, 헛첨차는 예산 수덕사 대웅전(국보 제49호), 강릉 임영관 삼문(국보 제51호), 순천 송광사 하사당(보물 제263호) 등에서 보이고 있으며, 나주향교 대성전(보물 제394호)도 창평향교 대성전 공포와 전체 짜임이 유사하다.
* 헛첨차: 기둥머리에서 보방향으로 반쪽짜리 첨차가 빠져나와 1출목첨차를 받치는 부재
「담양 창평향교 명륜당」은 정면 4칸, 측면 3칸(우측면은 2칸) 규모의 맞배지붕이며, 양 박공 면에 풍판(風板)을 설치하지 않아 목구조가 잘 드러나 보인다. 대성전을 향하는 전면이 창호 없이 모두 개방되어 있는데, 이는 호남지방 향교에서는 극히 드문 사례이다. 가구구성의 튼실함, 보아지 초각(草刻)의 정교한 의장성, 보와 도리 등 부재의 치목(治木) 상태, 정교한 초각과 수려한 주심포 양식은 전국 향교 명륜당 건물 중에서 수작으로 평가된다.
* 박공: 맞배지붕의 측면에 ∧자형으로 붙인 건축 부재(部材)
* 보아지: 보가 기둥과 연결될 때 맞춤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받침목
* 도리: 서까래를 받치는 부재
「순천향교 대성전」은 정면 5칸, 옆면 3칸 규모의 건물로 전남지역에서는 나주향교 대성전(보물 제394호), 화순향교 대성전(전남 유형문화재 제63호) 다음으로 규모가 크고 웅장하다. 대성전의 공포와 가구구조 등의 세부형식과 종도리 밑면에서 1649년(인조 27)에 쓴 상량묵서가 확인되어 17세기 중엽의 건축으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분명하다. 따라서 순천향교 대성전은 외2출목 삼익공의 특징적인 공포형식, 간결하고 소박한 가구수법 등에서 조선 후기 유교건축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는 호남지방의 문묘건축이라 할 수 있다.
* 외2출목: 처마의 지지점을 기둥 밖으로 2번 빼주는 방식
* 삼익공: 새 날개 모양의 익공이 3개인 유형
「구미 금오서원 정학당」은 길재를 포함하여 선산부와 연고가 있는 김종직, 정붕, 박영, 장현광이 배향된 금오서원의 강당으로, 임진왜란 직후 현재 위치에 새로 건립하여 변형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또한 이를 증명하는 기록과 현판들이 남아 있어서 서원의 역사와 변천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건축 양식적으로는 영쌍창(靈雙窓)이 남아 있어서 임진왜란 직후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서원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면서도 지역적 특징과 고유한 특성을 간직하고 있으며, 건축 미학적 가치가 뛰어나고 임진왜란 직후 창건된 건물로 조선중기 강당 건축의 모범을 보인다.
「구미 금오서원 상현묘」는 선산부와 연관이 있는 길재, 김종직, 정붕, 박영, 장현광을 배향하고 있으며,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없어지지 않고 사액된 47개 서원 중 하나인 금오서원의 사당이다. 상현묘는 건립과정의 기록이 명확하고 임진왜란 이후 중건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특히 창호의 치목(治木)기법, 살미의 형태나 대공의 모습 등을 볼 때 조선중기의 건축구조와 양식을 잘 유지하고 있는 품격 있는 전국에서도 보기 드문 서원의 사당이다.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압도적인 규모에 팔작지붕을 가지고 전체가 개방되어 있어, 다른 곳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외관을 가지고 있다. 경사지에 자리한 병산서원의 강학공간과 제향공간을 외부로부터 막아주는 방어막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병산서원의 맞은편에 있는 강과 절벽이 이루는 승경을 서원 내부로 끌어들이는 시각적 틀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자연의 경치를 그대로 두고 건축물의 조정을 통하여 그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려내는 전통적인 조경수법인 ‘차경(借景)’의 예를 잘 살린 누각이다.
만대루는 서원 누각이 가져야 하는 기능을 잘 유지하면서, 경관을 이용하는 전통적인 조경 기법을 잘 살렸고, 인공적 조작과 장식을 억제하고 건축의 기본에 충실한 성리학적 건축관을 잘 보여주는 우리나라 서원 누각의 대표작이자, 병산서원 건축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안동 도산서원 도산서당」은 1561년(명종 16) 건립 된 이후 철저한 보존관리 방침과 보수 절차에 의하여 관리되어 건립 후 약 460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다. 퇴계의 건축관이 반영된 초기 형태의 서당으로 16세기 건축형식과 독자적인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서당건축의 초기적인 형태인 3칸 구성이지만 좌실우당(左室右堂)형의 보기 드문 평면으로 최소한의 공간에 주칸(기둥과 기둥 사이)의 너비를 다르게 하거나 퇴칸을 활용하는 등의 변형을 통하여 효용성을 높이고 있다. 또한 퇴계가 건축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여 건축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고 문헌을 통해 건축 참여인물과 관련 내용 등을 확인할 수 있어 서당건축 연구의 귀중한 자료다.
「안동 도산서원 농운정사」는 도산서당과 더불어 퇴계가 직접 설계한 건축물로 정면 4칸, 측면 3칸 규모의 민도리식 맞배지붕으로 ‘공(工)’자형 평면이다. 일반적으로 공(工)자형 건물은 풍수지리 양택론에서 금기로 여겨왔기 때문에 거의 나타나지 않는 평면 형태로 기존의 다른 서원 건물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다.
<가서(家書)>, <도산기(陶山記)>, <도산서당영건기사(陶山書堂營建記事)>, <퇴도선생언행통록(退陶先生言行通錄)> 등의 고문헌을 통해 건축 참여인물과 과정, 관련 내용 등을 자세하게 확인 할 수 있다. 농운정사는 동재서헌(東齎西軒)의 위계적인 배치, 복합적인 용도에 따른 실의 배치와 구성, 다양하고 위계적인 창호 형식 등을 퇴계가 설계 단계부터 구상한 것으로 다른 건축에서 찾아 볼 수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 민도리식: 첨차나 익공 등의 공포부재를 사용하지 않고 출목도 없는 결구법
특히, 농운정사의 창호는 용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설치하였는데 높이와 크기를 조절하여 서로 다르게 구성한 점은 실내에서 주변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눈높이를 맞추기 위한 의도로 볼 수 있다.
「옥천 이지당」은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이자 의병장인 중봉 조헌이 옥천 지역에서 유상(游賞 : 놀고 구경함)하고 후학을 양성했던 업적을 기리고자 세운 정자형 정사(精舍) 건물로 우암 송시열이 ‘이지당(二止堂)’ 이라 이름 짓고 친히 현판을 썼다. 마루와 온돌로 된 소박한 ‘一’자 형의 본채를 중심으로 좌우로 누가 부가된 ‘ㄷ’자 형의 독특한 평면구조를 보여 주는 서당 건물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20건의 서원·향교 문화재는 역사·예술·학술·건축 가치가 뛰어나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하다.
문화재청은 앞으로도 건조물 문화재 주제연구를 통하여 가치가 알려져 있지 않은 건조물 문화재를 적극 발굴하여 국민들에게 알리고 활용하는 사업을 추진하는 등 지역 문화재의 사회적 가치 제고와 주변환경 정비 등 역사문화환경을 개선하는 사업도 관심을 가지고 지원할 계획이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한 「강릉향교 명륜당」 등 20건의 서원·향교 문화재에 대하여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수렴된 의견을 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 절차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 종 별 : 보물
□ 문화재명 : 강릉향교 명륜당(江陵鄕校 明倫堂)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강원도 강릉시 명륜로 29(교동 233)
ㅇ 구조/형식 : 목조/정면11칸‧측면2칸, 누각문루형, 무고주 5량가, 홑처마 맞배지붕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1413년 중건, 1623년 중수, 1644년 중창)
ㅇ 소유자(관리자) : 강릉향교
ㅇ 지정면적 : 301.7㎡(보호구역 4,777.2㎡)
□ 지정사유
ㅇ「강릉향교」는 영동지방의 거진인 강릉도호부의 향교로서 고려시대에 가장 먼저 건립된 교육기관의 하나로 손꼽히며, 1413년 중건되어 향교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음. 대성전을 비롯한 명륜당 등은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시에도 불타지 않아 조선전기 목조건축물의 규모와 모습을 간직하고 있음. 개화기 이후에는 열악한 교육환경에서 근대학교의 설립주체로 참여거나 교육의 장을 제공하여 근대교육의 맥을 이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곳임.
ㅇ 이와 같이 강릉향교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향교교육의 모습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역사적 산물이며, 배향인물 또한 유교의 전통을 그대로 간직한 곳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님.
ㅇ「강릉향교 명륜당」은 정면11칸, 측면2칸의 누각형건물로서 현존하는 향교 명륜당 중 가장 큰 규모임.
ㅇ 명륜당은 조선 초기에 「남루(南樓)」라는 이름으로 11칸 장루(長樓) 형태의 독립건물로 존재하다가 17세기 초반에 누각을 수리하여 명륜당으로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소규모 수리를 거쳐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음.
ㅇ 강릉향교의 명륜당은 조선초기에 초창되어 17세기 이후 명륜당으로 전용한 사례로 향교 장루의 전통을 계승한 건축물임. 유사한 사례가 강원도 일부 향교에서 나타나고 있으나 강릉향교 명륜당은 그 가운데서도 규모가 크고 건축의 격식이 뛰어나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가치가 충분함.
□ 종 별 : 보물
□ 문화재명 : 강릉향교 동무‧서무‧전랑(江陵鄕校 東廡‧西廡‧前廊)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강원도 강릉시 명륜로 29(교동 233)
ㅇ 구조/형식
- 동무‧서무 : 목조/정면5칸‧측면1칸, 3량가, 홑처마 맞배지붕
- 전랑 : 목조/정면9칸‧측면1칸, 행랑형식, 홑처마 맞배지붕(중앙칸 솟을지붕)
ㅇ 수 량 : 3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
- 동무‧서무 : 1413년 중건, 1613년 중창, 1623년 중창
- 전랑 : 1486년 중수, 1862년 중건
ㅇ 소유자(관리자) : 강릉향교
ㅇ 지정면적 : 361.1㎡(보호구역 4,777.2㎡)
□ 지정사유
ㅇ「강릉향교」는 건축물의 위치와 규모, 기법, 공간구조의 비례와 적합성, 유서 깊은 역사성 등에서 향교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대표성과 역사성, 조형성은 대성전과 명륜당을 비롯한 동무ㆍ서무, 전랑(내삼문) 등 모든 부속건물과 일체가 되어 서로 융합됨으로서 가능한 것임.
ㅇ「강릉향교」에 봉안된 위패의 수는 총 136위인데, 대성전에 21위, 동무에 58위, 서무에 57위를 봉안하고 있음. 동무와 서무는 각각 5칸 건물로 대성전 앞마당의 좌우를 채우고 대성전의 측면까지 뻗어있음. 동무와 서무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익공과 종도리 형태를 들 수 있는데, 동무에는 초익공과 판대공이, 서무에는 물익공과 동자대공이 각각 사용됨.
ㅇ 강릉향교 동무ㆍ서무는 원래 3칸 건물이 5칸 건물로 확대되고 수리과정에서 양식이 혼용되었으나, 정성스럽게 제작된 사롱창, 베개 모양 받침을 갖는 동자대공, 둥글게 감아올린 보아지의 초각 등에서 고식의 건축기법이 계승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음.
ㅇ 강릉향교 전랑은 제향공간의 출입문으로 전면 강학공간과 후면 제향공간을 구분하는 건물임. 대성전 전면에 가로로 길게 지어진 행랑으로 되어 있어 특이한 형태인데, 이는 향교 내 삼문 형식이 갖추어지기 이전의 형식으로 추정되며, 1721년 중수(전랑중수기록) 이후 큰 변화 없이 현재에 이르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있음.
ㅇ 전랑은 18세기에 전체 칸수가 축소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보머리의 삼분두 형태 등을 고려해 볼 때 그 이전의 구성형식을 계승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고, 또 신문(神門)으로서의 격식을 드러내기 위해 어칸의 기둥을 높이고, 보 아래의 인방재를 추가하여 초익공과 유사한 머리장식을 돌출시켰으며, 서까래의 단면을 조절하여 겹처마의 느낌을 가미한 점 등에서 건축적 탁월성을 보여줌.
ㅇ 이상의 사유로 역사적, 학술적, 건축사적 가치가 뛰어나 보물로 지정해 보존 관리할 필요가 있음.
□ 종 별 : 보물
□ 문화재명 : 수원향교 대성전(水原鄕校 大成殿)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향교로 107-9(교동 43)
ㅇ 구조/형식 : 목조/정면5칸‧측면3칸, 초익공, 2고주 7량가, 겹처마 맞배지붕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1636년 건립 추정, 1789년 이건, 1795년 중건)
ㅇ 소유자(관리단체) : 경기도향교재단(수원향교)
ㅇ 지정면적 : 지정구역 238.7㎡(보호구역 4,871.3㎡)
□ 지정사유
ㅇ 수원향교는 수원도호부의 향교로서 18세기 말 읍치를 이건하면서 향교도 현 위치로 옮겨 다시 지은 독특한 사례로 신읍은 정조가 주도한 화성 축성과 함께 화성유수부로 승격되었는데 서울 다음으로 중요시된 도시로 변모하며 유수부의 위상에 맞춰 향교 역시 격식을 충실히 갖춤.
ㅇ「수원향교 대성전」은 정조의 어명을 받아 1795년 2고주 7량가 20칸 규모로 다시 지은 건물로, 특히 향교가 현 위치로 이건 되고 대성전이 새로 지어지는 과정은 당시 공사보고서라 할 수 있는 『화성성역의궤』등의 문헌에 상세히 전함.
ㅇ 대성전의 규모는 서울 문묘, 나주향교, 상주향교, 제주향교, 대정향교와 함께 현존하는 조선시대 향교 대성전 중에서 손꼽히는 큰 규모를 가지며, 경기도 내 향교 대성전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임.
ㅇ 전체적인 가구법이나 주요 부재의 치목기법, 공포와 화반의 간결한 의장기법 등은 조선후기 관영건축 기술자의 성숙된 기술을 바탕으로 익공계 건축의 완성단계를 보여주는 격식을 갖춘 건물로 평가됨.
ㅇ 또한 목공사를 맡은 목수를 특정할 수 있으며 이 목수가 지은 다른 사례와 비교를 통해 목수의 기법과 구조, 세부의 상관성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건축사의 기술적 변천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건물임.
ㅇ 따라서 수원향교 대성전은 조선시대 향교건축 중 국가에서 주도한 관영건축으로는 보기 드문 사례이며, 대지 조성부터 기단, 목조 가구구성, 지붕, 세부 의장에 이르기까지 전국단위에서 동원된 기술자들이 양질의 재료를 솜씨 좋게 가공하여 적절한 비례로 완성한 건물이므로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의미에서 보물로 지정가치가 있음.
□ 종 별 : 보물
□ 문화재명 : 안성향교 대성전(安城鄕校 大成殿)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경기도 안성시 향교길 90-4(명륜동 118)
ㅇ 구조/형식 : 목조/정면5칸‧측면2칸, 1출목 2익공, 1고주 7량가, 전면 겹처마‧후면 홑처마 맞배지붕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1630∼1660년 재건, 1872년‧1883년 등 중수)
ㅇ 소유자(관리자) : 경기도향교재단(안성향교)
ㅇ 지정면적 : 지정구역 166.6㎡(보호구역 1,524.9㎡)
□ 지정사유
ㅇ「안성향교 대성전」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7세기 중엽에 재건 된 이후로 현재까지 여러 차례 수리가 이루어 졌으나 건축의 형태와 구조, 의장 등 전반에 걸쳐 건립 당시의 고식기법을 잘 유지하고 있음.
ㅇ 대성전은 정면에 개방된 퇴칸을 구성하고 맞배지붕을 얹은 조선시대 사묘건축의 전형적인 형태를 하고 있으며, 정면 5칸의 간살 구성은 조선시대 군ㆍ현 단위 향교의 대성전으로서는 규모가 큰 편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음.
ㅇ 특히 정면 툇보 위에서 주심도리를 감싸고 있는 승두의 사용, 서까래와 부연 및 우물마루 귀틀의 치목기법 등에 고식기법을 찾아 볼 수 있어 조선중기 건축기법의 연구에 귀중한 학술자료임.
ㅇ 또한 지붕 가구의 삼중량 구성은 구부러진 대들보와 반듯한 직선의 중량, 종량들이 만들어 내는 독특한 시각효과는 17세기 전반에 자연곡선의 목재를 사용하는 시대성을 잘 보여주고 있음. 특히 기호지방에는 남아있는 사례가 많지 않은데 안성 양성향교와 죽선향교 대성전 등 안성 지역 향교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지역성을 보임.
ㅇ 대성전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 제한적으로 공급될 수밖에 없었던 건축재료와 인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대성전이 갖는 위계적 의미를 과도하지 않게 잘 구현해 내면서 조형적으로도 우수함.
ㅇ 이상의 사유로 역사적, 학술적, 건축사적 가치가 뛰어나 보물로 지정해 보존 관리할 필요가 있음.
□ 종 별 : 보물
□ 문화재명 : 안성향교 풍화루(安城鄕校 風化樓)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경기도 안성시 향교길 90-4(명륜동 118)
ㅇ 구조/형식 : 목조/정면11칸‧측면1칸, 민도리, 3량가, 홑처마 맞배지붕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1630∼1660년 사이 재건, 1687년 벼락으로 수리)
ㅇ 소유자(관리자) : 경기도향교재단(안성향교)
ㅇ 지정면적 : 지정구역 159.4㎡(보호구역 1,524.9㎡)
□ 지정사유
ㅇ「안성향교 풍화루」는 누각형태의 정면 11칸, 측면 1칸의 장대한 규모를 가지며, 유식을 위한 누와 향교 출입을 위한 외문의 역할을 겸하는 문루로서, 현존하는 조선시대 향교 문루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큼.
ㅇ 특히 경사지라는 입지여건의 특징을 잘 살려 외부에서 향교 내부가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향교 전면을 효과적으로 가리면서도 측면 규모를 1칸으로 하여 내부의 명륜당에서 볼 때 위압적이고 답답해 보이지 않도록 적절한 높이와 규모를 가진 건물로 평가됨.
ㅇ 풍화루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 제한적으로 공급될 수밖에 없었던 목재를 경제적으로 사용하여 효율적으로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시각적 안정감과 조화로운 비례를 갖춰 건축 조형미를 잘 구현해 냄.
ㅇ 또한, 하층 기둥에 일부 남아있는 건립 당시 기둥의 자귀질 치목 흔적이나, 17세기의 시대적 특징을 잘 유지하고 있는 영쌍창 등은 조선 중기 건축 기법 연구에 좋은 학술적 자료임.
ㅇ 이상의 사유로 역사적, 학술적, 건축사적 가치가 뛰어나 보물로 지정해 보존 관리할 필요가 있음.
□ 종 별 : 보물
□ 문화재명 : 산청 단성향교 명륜당(山淸 丹城鄕校 明倫堂)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교동길 13–15(강누리 595-1)
ㅇ 구조/형식 : 목조/정면5칸‧측면2칸(전퇴 포함 3칸), 중당협실형 누각식, 대청 5량가‧온돌방 3량가, 겹처마+홑처마 익공계 맞배지붕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1725년 창건, 1864~1865‧1909년 보수)
ㅇ 소유자(관리자) : 단성향교
ㅇ 지정면적 : 132.7㎡(보호구역 3,365.3㎡)
□ 지정사유
ㅇ「단성향교」는 고려 인종 때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으나, 조선 세종 때에 현 위치인 교동으로 옮긴 후 18세기까지 대성전에서 제향기능만 유지하다가, 1725년에 명륜당을 상량하고 1728년에 완공하여 향교로서의 면모를 갖춤.
ㅇ 단성향교는 전당후재형(前堂後齋型) 배치로 전국에는 많은 사례가 있으나, 경남지역에는 유일하며, 누(樓)형 명륜당을 지닌 향교는 전국에 약 10곳도 되지 않음.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익공계 맞배지붕의 누각식 건물로, 중앙 3칸은 2층의 누각으로 만들고, 양측 협칸은 누하(樓下) 부분에 석축을 쌓고, 누상(樓上) 부분에 방을 만듦.
ㅇ 지붕형식에 있어서도 평면형태는 일자형이나 지붕은 공(工)자형 맞배지붕으로 처리하였는데, 건물중앙부의 높은 지붕(5량가)과 좌우 익사(온돌방) 쪽의 낮은 지붕(3량가)이 접속하며 특징적인 공(工)자형 지붕을 형성함. 전국 향교 명륜당 건물에서는 단성향교 포함 3곳 밖에 없는 독특한 양식으로 희소성이 높음.
ㅇ 1725년 중건된 단성향교 명륜당은 그 후 여러 차례의 수리가 이루어졌으나 누각형식을 수용한 독특한 평면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공(工)자형의 독특한 지붕형태와 가구형식은 유래가 드문 건물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학술적으로 가치가 크며, 조선후기 유교문화와 지역문화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가치가 있음.
ㅇ 이상의 사유로 역사적, 학술적, 건축사적 가치가 뛰어나 보물로 지정해 보존 관리할 필요가 있음.
□ 종 별 : 보물
□ 문화재명 : 밀양향교 대성전(密陽鄕校 大成殿)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경상남도 밀양시 교동 3길 19(교동 733)
ㅇ 구조/형식 : 목조/정면3칸‧측면2칸, 외1출목 2익공, 5량가, 겹처마 맞배지붕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1602년 중건, 1617년‧1820년 이건, 1803년 중수)
ㅇ 소유자(관리자) : 경상남도향교재단(밀양향교)
ㅇ 지정면적 : 지정구역 116.9㎡(보호구역 5,819.4㎡)
□ 지정사유
ㅇ「밀양향교」는 좌묘우학(左廟右學)의 배치를 보이는 병렬식 향교의 대표사례로 경상남도 30여개 향교 가운데 병렬식배치를 취하고 있는 향교는 거창향교를 비롯하여 4곳으로 직렬식배치법의 다른 향교와 차별성을 보이며, 특히 대성전과 명륜당이 좌향을 달리하는 경우는 밀양향교가 유일함.
ㅇ「밀양향교 대성전」은 초창은 뚜렷하지 않지만, 임진왜란으로 향교의 전각들이 모두 소실된 후 1602년에 현 위치로 향교를 옮겨 중건하였음. 이후 1617년에 현 명륜당 동남쪽 아래로 이건하였다가 1820년에 명륜당의 서쪽인 본래 위치(현위치)로 이건하였음. 이건하면서 17세기의 공포는 배면에 19세기의 공포는 전면에 사용하여 200년이란 시차를 두고 조선중기와 후기의 시대적 건축기술의 흐름과 특징을 모두 보여주고 있어 건축양식사 차원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가짐.
ㅇ「밀양향교 대성전」은 임란 때 소실된 후 1602년에 중건되어 건립시기가 빠른 편에 속하며, 1617년, 1820년 2차에 걸쳐 이건을 하였으나, 승두를 이용한 건축가구법과 기둥, 익공, 창호 등에서 구재를 재사용하여 조선 중기의 고식의 기법들이 잘 보존되어 있음.
ㅇ 이상의 사유로 역사적, 학술적, 건축사적 가치가 뛰어나 보물로 지정해 보존 관리할 필요가 있음.
□ 종 별 : 보물
□ 문화재명 : 밀양향교 명륜당(密陽鄕校 明倫堂)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경상남도 밀양시 교동 3길 19(교동 733)
ㅇ 구조/형식 : 목조/정면5칸‧측면2칸, 외1출목 2익공, 5량가, 겹처마 맞배지붕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1618년 중건, 1803년 중수)
ㅇ 소유자(관리자) : 경상남도향교재단(밀양향교)
ㅇ 지정면적 : 지정구역 233.7㎡(보호구역 5,819.4㎡)
□ 지정사유
ㅇ「밀양향교 명륜당」은 경남지역 향교 건축 중 보존상태가 양호한 건물로, 임란 때 소실된 것을 1618년에 중건한 것으로 조선 중기 명륜당 건축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로 평가됨. 규모가 큰 명륜당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型)* 평면을 잘 보존하고 있고, 익공형태가 17세기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규모에 따른 구조적 보강법도 경남지역 명륜당 건물에서 흔하지 않는 사례임.
* 중당협실형(中堂夾室型): 중앙마루를 중심으로 좌우협간에 방을 두는 평면형태
ㅇ 명륜당은 1618년에 중건 이후 여러 차례의 수리가 있었음에도 고졸한 형식의 외1출목 이익공 형식으로 연봉이나 연화로 장식되지 않은 쇠서의 형태와 대청 배면에는 고식 창호의 흔적, 창방의 모접기기법 등 고식의 치목기법이 남아있고 다양한 반자형식 등에서 건축적 특성을 지니고 있어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타 명륜당과 비교해도 학술적 문화재적 가치 면에서 뒤지지 않음.
ㅇ 이상의 사유로 역사적, 학술적, 건축사적 가치가 뛰어나 보물로 지정해 보존 관리할 필요가 있음.
□ 종 별 : 보물
□ 문화재명 : 상주향교 대성전‧동무‧서무(尙州鄕校 大成殿‧東廡‧西廡)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경상북도 상주시 신봉2길 111(신봉동 203-1)
ㅇ 구조/형식‧
- 대성전 : 목조/정면5칸‧측면3칸, 양 측면 2고주 7량가·내부 1고주 7량가, 이익공, 겹처마 맞배지붕
- 동무‧서무 : 목조/정면10칸‧측면1.5칸, 1고주 5량가, 민도리, 홑처마 맞배지붕
ㅇ 수 량 : 3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대성전 1610년 재건, 1617년 중건/동무‧서무 1612년 중건)
ㅇ 소유자(관리자) : 경상북도향교재단(상주향교)
ㅇ 지정면적 : 지정구역 839.5㎡(보호구역 7,259.5㎡)
□ 지정사유
ㅇ「상주향교」는 상주목의 향교로 고려 때부터 기록이 나오는 유서 깊은 향교이며, 1486년 목사 강구손(姜龜孫)이 성전, 루, 동재 등을 중수하였다고 함.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광해군 때 대대적인 복구가 이루어졌고, 이후 중수와 일제강점기 때 기능이 바뀌면서 창호 등에 변형이 있었으나, 당시의 양식과 배치를 유지하고 있음.
ㅇ 대성전은 5칸 전퇴개방형의 규모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를 가진 서울 문묘 및 성균관 대성전(보물 제141호) 다음으로 큰 제주향교 대성전(보물 제1902호)과 같은 규모임. 조선시대 향교의 기능에 따른 건물과 배치구성, 지방행정체계에 대한 설위형식이 지역별로 시기적 변화양상이 있었음을 밝힐 중요한 건축사적 특성을 가진 건물임.
ㅇ 동무ㆍ서무는 1612년(광해군 4)에 창건된 이후 몇 차례의 수리 과정이 있었지만 규모 및 구조형태는 조선중기 창건 당시의 원형을 대체적으로 잘 간직하고 있음. 정면 10칸, 측면 1.5칸으로 면적은 135㎡인데, 서울 문묘 동무·서무(11칸*2칸, 307.7㎡), 경주향교 동무·서무(12칸*1칸, 139.6㎡) 다음으로 큰 규모로, 기단과 처마도리를 경사지에 맞춰 건물 전체 높이는 같게 하고, 양 단부의 횡 방향으로 긴 넓적한 자연석 초석 위에 처마도리를 받치는 보조기둥을 세운 가구 구성이 돋보임. 전체적으로 기단과 창호, 공포, 대공, 주두와 소로 등에서 조선 중기 이후 향교 건축의 특성이 잘 나타나고 있음.
ㅇ 대성전과 동무ㆍ서무는 건축 연혁이 명확하고 조선중기에 중창된 뒤 위치의 변경이 없으며, 대체적으로 당시의 구조양식 등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음. 특히 정형화되고 엄격한 배치구성이 돋보이며, 문묘 다음으로 큰 규모이며, 경사 지형을 고려한 탁월한 입면구성을 갖추고 있음.
ㅇ 이상의 사유로 역사적, 학술적, 건축사적 가치가 뛰어나 보물로 지정해 보존 관리할 필요가 있음.
□ 종 별 : 보물
□ 문화재명 : 경주향교 명륜당(慶州鄕校 明倫堂)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17-1
ㅇ 구조/형식 : 목조/정면5칸‧측면3칸, 어칸 1고주 5량가‧양 협칸 2고주 5량가, 이익공, 겹처마 맞배지붕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1614년 중건)
ㅇ 소유자(관리자) : 경상북도향교재단(경주향교)
ㅇ 지정면적 : 304.9㎡(보호구역 9,839.1㎡)
□ 지정사유
ㅇ 경주향교의 시초는 신라의 국학으로, 유교적 교육기관이 설립되었고, 고려시대에도 그 자리에 향학이 운영되었으며, 조선시대 기록에도 신라의 국학 자리를 잇는다고 기록됨.
ㅇ 명륜당은 1614년 중건 이래 18세기와 19세기에 중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는 오래된 건축물로서, 정면 5칸, 측면 3칸의 2고주 5량가의 맞배집으로 우리나라 현존하는 향교 명륜당 가운데 객사형(성균관, 나주향교 명륜당)을 제외한 단일 건물로는 가장 규모가 큰 사례임.
ㅇ 중수기 등의 문헌 기록이 풍부하게 남아 있어 건축 연혁을 자세히 알 수 있고, 기단과 초석에 사용된 석재의 가공, 익공의 초각, 지붕가구의 구성에서 17세기 건축의 면모를 볼 수 있으며, 같은 시설 내 대성전(보물 제1727호)과 호응하는 규모와 품격을 가지고 있음.
ㅇ 규모와 형식면에서 경주라고 하는 고도(古都)의 위상에 걸맞게 여타의 향교 건축을 뛰어넘는 최고의 수준을 갖추고 있어서, 국가지정문화재로서 갖추어야 할 역사적, 양식사적 가치를 충분히 갖추고 있음.
ㅇ 이상의 사유로 역사적, 학술적, 건축사적 가치가 뛰어나 보물로 지정해 보존 관리할 필요가 있음.
□ 종 별 : 보물
□ 문화재명 : 경주향교 동무‧서무‧신삼문(慶州鄕校 東廡‧西廡‧神三門)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17-1
ㅇ 구조/형식
- 동무‧서무 : 목조/정면12칸‧측면1칸, 초익공, 3량가, 민도리, 홑처마 맞배지붕
- 신삼문 : 목조/정면3칸‧측면2칸, 초익공, 3량가, 홑처마 맞배지붕
ㅇ 수 량 : 3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동무‧서무 1604년 중건/신삼문 1602년 중건)
ㅇ 소유자(관리자) : 경상북도향교재단(경주향교)
ㅇ 지정면적 : 581.8㎡(보호구역 9,839.1㎡)
□ 지정사유
ㅇ 동ㆍ서무는 1604년 중건 이래 1829년, 1995년 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며, 대성전과 함께 경주 향교의 제향공간을 구성하는 건축물임. 정면 12칸으로 우리나라 현존하는 향교의 무 건축물 가운데 가장 길며, 큰 도리칸의 규모를 갖고 있고, 장식을 지극히 억제하고 있음. 또한 기둥과 인방재가 가로세로로 이루어진 격자형의 골격에 회벽으로 마감한 단순한 벽면과 홑처마의 맞배지붕, 수를 줄인 최소한의 창호와 3량가의 가구구성 등에서 조선시대 제사건축의 이념을 잘 보여주고 있음. 초석과 대공의 형태 등에서 17세기 중건 시의 건축 상황과 양식을 찾아볼 수 있음.
ㅇ 신삼문은 기록상으로 대성전이 중건되는 1602년에 함께 중건되었다고 전하며(南門으로 표기), 보수나 중수 역시 대성전과 함께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오래된 건축물임. 정면 3칸, 측면 2칸의 3량가 맞배집으로 평삼문의 형식과 문짝, 문얼굴, 홍살 등의 세부 형식에서 향교 제향 공간의 신문으로서의 역사적 모범이 될 만하며, 기단과 초석에 사용된 석재의 가공, 신방목과 대공 등의 부재 가공과 양식 등에서 고식을 보여주고 있음. 특히 문지방으로 사용되는 하인방의 하부에 신방목과 신방석이 남아 있는 것이 구조적으로 특이한 점인데, 이러한 특징은 대성전에서도 발견되며 신라시대의 수법이 그대로 남아 있은 것으로 보여 매우 주목되는 부분임.
ㅇ 이상의 사유로 역사적, 학술적, 건축사적 가치가 뛰어나 보물로 지정해 보존 관리할 필요가 있음.
□ 종 별 : 보물
□ 문화재명 : 담양 창평향교 대성전(潭陽 昌平鄕校 大成殿)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교촌길 43-11(교산리 138)
ㅇ 구조/형식 : 목조/정면3칸‧측면3칸, 2고주 5량가, 겹처마 맞배지붕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1479년 이건, 1689년 중수)
ㅇ 소유자(관리자) : 창평향교
ㅇ 지정면적 : 147.5㎡(보호구역 3265.6㎡)
□ 지정사유
ㅇ 담양 창평향교는 창건 이래 여러 번의 중수를 거쳤으며, 현재의 모습은 중수기를 통해 1689년(숙종 15)에 갖추어 진 것을 알 수 있음. 향교의 배치 형식은 ‘ㅁ’자 형으로 독특한 모습이며, 대성전 앞에 마당을 담장으로 구획하고 담장 밖 좌우에 동·서재를 두고 축선에서 약간 치우쳐 명륜당을 두고 있음.
ㅇ 강학구역은 호남지방 향교의 특징인 ‘전당후재(前堂後齋)’형식인데 대지가 협소한 관계로 동재와 서재가 대성전에 매우 근접해 있어 마치 다른 향교의 동서무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임.
ㅇ 대성전의 공포는 밑면이 교두형(翹頭形, 만두모양)으로 된 헛첨차 구성이 향교건축에서 특이한 구성으로 헛첨차가 있으므로 상부 살미는 소로받침 높이만큼 간격이 생기는데, 이는 서로 붙어있는 익공계 공포와 구분이 됨.
ㅇ 헛첨차 바깥쪽 위에 소로를 놓아 행공첨차를 받고 있으며, 초제공 위로는 외목도리에 붙어있는 장식화 된 운공이 있음. 헛첨차 구성은 수덕사 대웅전, 강릉 객사문, 송광사 하사당 등과 유사하고, 나주향교 대성전도 창평향교 대성전 공포와 전체 짜임이 유사함.
ㅇ 또한 기둥 윗몸은 창방으로 결구하였고 창방과 주심도리의 장혀 사이로는 주칸 마다 화반을 1구씩 배치하였는데 섬세하고 화려하게 모두 파련각을 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임.
ㅇ 따라서, 담양 창평향교의 대성전은 향교 배치형식의 특이성, 목조건축의 우수한 조형성, 주심포 짜임, 가구구조의 튼실함, 향교건축 형식과 건축사적 의미 등을 고려했을 때 보물로 지정해 보존 관리할 가치가 충분함.
□ 종 별 : 보물
□ 문화재명 : 담양 창평향교 명륜당(潭陽 昌平鄕校 明倫堂)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교촌길 43-11(교산리 138)
ㅇ 구조/형식 : 목조/정면4칸‧측면3칸(우측면 2칸), 우측면 5량가, 홑처마 맞배지붕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1600년대 중건 추정)
ㅇ 소유자(관리자) : 창평향교
ㅇ 지정면적 : 130.9㎡(보호구역 3265.6㎡)
□ 지정사유
ㅇ 담양 창평향교는 창건 이래 여러 번의 중수를 거쳤으며, 현재의 모습은 중수기를 통해 1689년(숙종 15)에 갖추어 진 것을 알 수 있음. 향교의 배치 형식은 ‘ㅁ’자 형으로 독특한 모습이며, 대성전 앞에 마당을 담장으로 구획하고 담장 밖 좌우에 동·서재를 두고 축선에서 약간 치우쳐 명륜당을 두고 있음.
ㅇ 명륜당은 정면 4칸, 측면 3칸(우측면은 2칸) 규모의 맞배지붕이며, 양 박공 면에 풍판을 설치하지 않아 목구조가 잘 드러나 보이고, 대성전을 향하는 전면이 창호 없이 모두 개방되어 있는데 이는 호남지방 향교에서는 보기 드문 사례임.
ㅇ 명륜당 부재의 짜임은 기둥머리에 헛첨차를 끼우고 헛첨차 바깥쪽 위에 소로를 놓아 행공첨차를 받고 있으며 대성전에서는 헛첨차 밑면이 단순한 교두형이나 명륜당은 정교하게 곡선으로 초각을 하여 장식화의 의지가 나타남.
ㅇ 전체적으로는 포작이 전면으로 나와 긴 처마의 하중을 잘 떠받고 있어 구조적 안정을 이루고 있으며, 제공살미는 끝이 대성전 보다 더 뾰쪽하며 형상은 쇠서형임. 초제공 위로는 외목도리에 붙어있는 장식화된 운공이 있어 더욱 의장성이 돋보이는데 특히 아름답고 튼실한 것은 잘 새겨진 파련대공임.
ㅇ 따라서, 담양 창평향교의 명륜당은 향교 배치형식의 특이성, 목조건축의 우수한 조형성, 주심포 짜임, 가구구조의 튼실함, 향교건축 형식과 건축사적 의미 등을 고려했을 때 보물로 지정해 보존 관리할 가치가 충분함.
□ 종 별 : 보물
□ 문화재명 : 순천향교 대성전(順天鄕校 大成殿)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전라남도 순천시 향교길 60(금곡동 182)
ㅇ 구조/형식 : 목조/정면5칸‧측면3칸, 2출목 3익공, 1고주 5량가, 겹처마 맞배지붕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1649년 건립, 1780‧1801년 이건)
ㅇ 소유자(관리자) : 순천향교
ㅇ 지정면적 : 지정구역 225.2㎡(보호구역 5,781.8㎡)
□ 지정사유
ㅇ「순천향교」는 고려 성종 대에 학교가 설치되었는데, 호남지역에서는 순천, 나주, 전주 3곳뿐으로, 이러한 중요성과 위상 때문에 1407년 순천도호부의 향교로 설치되어, 여수ㆍ광양ㆍ돌산 등 인근 군현들의 향교를 관할하게 됨.
ㅇ 순천향교는 1407년에 건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 대성전은 건물의 도리하부에 쓰인 상량문이 1649년의 것임. 그 후 1780년에 이건할 때 이 건물의 주요 부재를 그대로 옮겨 간 것이며, 다시 1801년 이건할 때도 부재들을 대부분 사용하여 같은 규모로 건립한 것으로 보아 본 건물의 건축연대는 1649년으로 볼 수 있음.
ㅇ 대성전은 개방된 전퇴를 둔 정면 5칸, 측면 3칸의 건물로서 다른 향교의 대성전 건물과 비교할 때, 규모ㆍ구조ㆍ양식 및 의장적인 측면에서 웅장하고 우수함.
ㅇ 공포(栱包)는 전후면이 똑같이 교두형(翹頭形) 첨차(檐遮)들로 짜인 외2출목의 주심포계 건축으로 분류되는데, 이러한 공포구성은 건축물의 연대를 1700년대 또는 그 이상으로 올려 볼 수 있는 부분임.
ㅇ 순천향교 대성전은 건축연혁이 분명한 17세기 중엽의 유교건축으로, 나주향교 대성전과 함께 호남을 대표하는 목조건축이라 할 수 있음. 외2출목 3익공의 특징적인 공포형식, 간결하고 소박한 가구 수법 등에 시대성 및 조선후기 유교건축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어 학술적ㆍ역사적인 측면에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함.
□ 종 별 : 보물
□ 문화재명 : 구미 금오서원 정학당(龜尾 金烏書院 正學堂)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유학길 593-31(원리 276)
ㅇ 구조/형식 : 목조/정면5칸‧측면3칸, 5량가, 이익공, 겹처마 팔작지붕1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1602년 중건)
ㅇ 소유자(관리자) : 금오서원
ㅇ 지정면적 : 215.4㎡(보호구역 5,237.6㎡)
□ 지정사유
ㅇ 금오서원은 길재를 포함하여 김종직, 정붕, 박영이 배향된 서원으로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임. 처음 금오서원의 위치는 길재가 노년을 보냈던 구미 금오산으로 1572년 봄에 창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모든 건물이 소실된 후 1602년에 현재의 위치에 재건함.
ㅇ 재건 이후 중건 기록이 없이 현재까지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청방칸에 고주를 사용한 가구구성, 영쌍창, 창틀 구성에서 고식 수법을 잘 보여주고 있음. 온돌방 부분까지도 원기둥을 사용하고 부재의 규격을 크게 하였으며, 장식은 배제하여 엄격한 느낌을 주며, 여기에 지붕가구 세부와 공포 형식에서 절제미 등 미학적인 건축 양식과 조형미가 돋보임.
ㅇ 또한 정면 간살의 경우 정칸에 비해 퇴칸을 한 자 정도 크게 하여 일반적인 건물과는 반대로 하였는데 이는 기능적으로 온돌방을 크게 쓰려는 의도이지만 고도의 미학적 관점이 녹아있는 점이 뛰어남.
ㅇ 정학당은 서원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면서도 지역적 특징과 고유한 특징을 간직하고, 건축적으로 미학적 가치가 뛰어나며 임란직후 창건된 조선 후기의 강당건축의 모범을 보임으로서 보물로 지정 가치가 충분함.
□ 종 별 : 보물
□ 문화재명 : 구미 금오서원 상현묘(龜尾 金烏書院 尙賢廟)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유학길 593-31(원리 276)
ㅇ 구조/형식 : 목조/정면3칸‧측면3칸, 2고주 5량가, 1출목 이익공, 겹처마, 맞배지붕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1602년 중건)
ㅇ 소유자(관리자) : 금오서원
ㅇ 지정면적 : 124.0㎡(보호구역 5,237.6㎡)
□ 지정사유
ㅇ 상현묘는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출목 2익공 5량가의 맞배지붕 건물로, 평면구성은 전면에 퇴칸을 설정하지 않고 전후 평주 사이에 벽과 출입문을 설치하여 사당 내부 공간을 넓게 확보한 점이 눈에 띄며, 출목 2익공의 세부 형상은 17세기의 시대특징을 간직하고 있으며 내부 지붕틀은 대들보와 종보를 걸고 장식이 가미된 대공을 설치함.
ㅇ 조선시대 사당 건물은 적어도 전면에는 개방된 퇴칸을 갖추는 것이 일반적이나 전면에 개방된 퇴칸을 두게 되면 내부 사당 공간이 지나치게 협소해 질 우려가 있어서 부득이 전면 퇴칸 없는 사당건물도 적지 않게 발견되는데 금오서원 상현묘는 현존하는 사례 가운데서 비교적 건립 시기가 이른 17세기 초에 속하는 건물이어서 가치가 있음.
ㅇ 금오서원 상현묘의 또 다른 건축적 가치 중 하나는 이 건물이 17세기 초 출목익공식을 갖춘 사당 건물의 뛰어난 사례인 점임. 출목익공은 익공식의 공포를 구성하면서 처마 내밀기를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외출목을 갖추어 처마 서까래를 지지하도록 한 것이며 현존하는 이른 시기의 대표적인 사례로 종묘 정전 건물을 들 수 있음. 종묘 정전은 규모와 격식 등에서 상현묘와는 차원이 다르지만 두 건물의 기본적인 익공 결구 방식은 동일하여 상현묘 역시 17세기 초 출목 익공의 좋은 사례로 꼽을 수 있으며, 시기적으로는 오히려 종묘 정전보다 6년 앞서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님.
ㅇ 이상의 사유로 역사적, 학술적, 건축사적 가치가 뛰어나 보물로 지정해 보존 관리할 필요가 있음.
□ 종 별 : 보물
□ 문화재명 :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安東 屛山書院 晩對樓)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경상북도 안동시 병산길 386(병산리 31)
ㅇ 구조/형식 : 목조/정면7칸‧측면2칸, 3량가, 민도리, 홑처마 팔작지붕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1717년 이전 건립)
ㅇ 소유자(관리자) : 병산서원(안동시)
ㅇ 지정면적 : 76.2㎡
□ 지정사유
ㅇ 만대루는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조선 중기 대표 문신・학자인 류성룡과 류진을 모신 병산서원의 누각건물로 유생들이 유식하고 주변 산천의 풍광을 보며 시회를 가졌던 공간임.
ㅇ 건립은 17세기 서원의 창건기에 비롯하였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현재의 건물이 그 당시의 것 그대로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박하고 단단한 가구의 구성과 세부 기법의 처리는 조선후기의 번잡함이나 장식적 면과 다른 조선중기의 특색을 유지함.
ㅇ 만대루는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로 최소한의 구조부재만을 이용하여 공간을 조성하여 주변 자연경관과 하나가 되도록 조영하여 한국 누각 건물의 조형미와 절제미를 보여줌. 우리나라 서원의 문루 중 긴 장방형 평면과 벽체 없는 기둥과 간결한 가구 구조이며, 주요 경관 요소인 병산과 낙동강, 모래를 조망하도록 하여 주변의 탁월한 입지환경을 기반으로 내부에서 외부로의 시각적 경관성을 고려하였음. 강학 영역보다 낮게 조성한 대지 위에 절제된 건축은 주변 건물과 조화를 반영한 점이 서원의 본질적 질서체계와 건축 조영원리를 따르면서 병산서원만의 독자적인 입지 선정 및 지형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음.
ㅇ 서원 누각이 가져야 하는 기능을 잘 유지하면서, 경관을 이용하는 전통적인 조경 기법을 잘 살렸고, 인공적 조작과 장식을 억제하고 건축의 기본에 충실한 성리학적 건축관을 잘 보여주는, 우리나라 서원 누각의 대표작으로 평가됨.
ㅇ 이상의 사유로 역사적, 학술적, 건축사적 가치가 뛰어나 보물로 지정해 보존 관리할 필요가 있음.
□ 종 별 : 보물
□ 문화재명 : 안동 도산서원 도산서당(安東 陶山書院 陶山書堂)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서원길 154(토계리 680)
ㅇ 구조/형식 : 목조/정면3칸‧측면1칸, 3량가, 민도리, 맞배지붕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1561년 건립)
ㅇ 소유자(관리자) : 도산서원(안동시)
ㅇ 지정면적 : 28.9㎡
□ 지정사유
ㅇ 도산서당은 퇴계의 건축관이 반영된 초기 형태의 서당으로 16세기의 건축형식과 독자적인 특성이 잘 드러남. 집이 들어선 터는 선비가 학문에 침잠하고 자연을 관상하기에 알맞은 환경을 갖추고, 건물은 전체 3칸의 작은 규모지만 후면과 서측면에 툇기둥을 세우고 동측면에는 익첨을 두어 한 사람의 선비가 거처하기에 부족함 없는 공간을 갖춤. 이황 사후에 도산서원을 세우면서는 서당 건물과 농운정사를 그대로 둔 채 그 뒤로 서원을 조성하여 선현의 유적을 온전하게 보존함.
ㅇ 도산서당은 조선 성리학의 큰 학맥을 이룬 퇴계 이황이 말년의 10년을 보낸 곳으로, 선생 생전의 건물모습이 거의 달라지지 않고 유지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선생은 주요한 저술 작업을 하고 수많은 제자들을 가르쳤던 곳으로, 도산서당은 16세기 선비들이 추구한 건축적 이상이 잘 구현된 건물로 평가됨.
ㅇ 정면 3칸, 측면 1칸 최소한의 규모 안에 마루와 온돌, 부엌 각 1칸의 간결한 실내 구성을 하여 선비의 일상을 담고 있으며, 소박하면서 기능적인 다양한 형태의 창문을 설치하여 단정한 건물 외관을 이룸. 선생 사후에는 서당을 그대로 남겨 두고 그 뒤편으로 서원을 조성하여 선현의 유적과 서원이 경내에 함께 남아있는 드문 사례로 역사적 가치가 충분함.
ㅇ 이상의 사유로 역사적, 학술적, 건축사적 가치가 뛰어나 보물로 지정해 보존 관리할 필요가 있음.
□ 종 별 : 보물
□ 문화재명 : 안동 도산서원 농운정사(安東 陶山書院 隴雲精舍)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서원길 154(토계리 680)
ㅇ 구조/형식 : 목조/정면4칸‧측면3칸, 工자형, 3량가, 민도리, 맞배지붕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1561년 건립)
ㅇ 소유자(관리자) : 도산서원(안동시)
ㅇ 지정면적 : 109.4㎡
□ 지정사유
ㅇ 조선시대 향촌에서 선비와 제자들 사이에 이루어진 학문과 교육의 현장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드문 사례로, 퇴계 이황은 벼슬을 버리고 향촌에 내려가 학문에 전념하기 위해 도산서당을 지었으며 그에 인접해서 제자들이 기거하며 공부할 수 있는 농운정사를 지음. 스승과 제자가 적절한 거리를 두고 하나의 영역 안에서 거처하는 모습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이런 모습은 조선시대 다른 곳에서도 널리 이루어졌겠지만 대부분 사라지고 말았으며 도산서당과 농운정사는 드물게 남아있는 사례의 하나로 꼽힘.
ㅇ 농운정사는 조선의 학문세계나 정치활동에서 큰 활동을 한 영남 선비들이 젊은 시절 퇴계의 가르침을 직접 받으며 공부하던 산실이며, 그 원형이 잘 남아있는 유적임. 이 건물에서 공부한 인물은 헤아릴 수 없이 많으며, 그 중에는 도산서원에 배향된 퇴계의 제자 조목을 비롯해서 영남의 큰 학맥을 이룬 학봉 김성일, 임진왜란의 국난을 헤쳐나간 서애 유성룡이 있었고 그밖에도 기라성 같은 학자들이 이 건물을 거처 감.
ㅇ 건축형태에서 농운정사는 도토마리 집의 원형을 살려 지은 교육시설의 뛰어난 사례로 꼽히며, 그 평면은 가운데 몸채를 두고 전면과 후면 양 끝에 마루방과 헛간을 갖춘 ‘工’자 형태를 이룸. 농운정사의 도토마리 양식은 도산서당 건립을 맡았던 승려장인 법연의 구상에 근거한 것이며, 그의 제자 정일에 의해 완성됨. 도토마리 집은 지금도 안동지역 민가에 일부 남아있으며 농운정사가 지어지던 16세기에는 더 넓은 범위에서 수용되었던 건축형태로 보이며, 18, 19세기 중부지방 사찰의 대방은 도토마리 양식과 유사한 형태로 꼽힘. 이런 점에서 농운정사의 도토마리 양식은 건축사적으로 의미 있는 건축형태의 하나라고 평가됨.
ㅇ 이상의 사유로 역사적, 학술적, 건축사적 가치가 뛰어나 보물로 지정해 보존 관리할 필요가 있음.
□ 종 별 : 보물
□ 문화재명 : 옥천 이지당(沃川 二止堂)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충청북도 옥천군 군북면 이백6길 126 (이백리 33번지)
ㅇ 구조/형식 : 목조/정면6칸‧측면1칸 몸채에 좌측3칸‧우측2칸 익랑을 연결한 ‘ㄷ’자 정자형, 민도리, 홑처마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1674년 건립)
ㅇ 소유자(관리자) : 이지당계
ㅇ 지정면적 : 152.6㎡(보호구역 1,447.4㎡)
□ 지정사유
ㅇ「옥천 이지당」은 의병장이자 성리학자인 중봉 조헌이 16세기 말 옥천에 머물면서 빼어난 경치를 벗 삼아 유상하며 동네 이름을 따서 각신서당을 짓고 학생들을 가르쳤던 것에서 비롯되며, 그의 사후 80여 년 뒤인 1674년 무렵에 김만균이 주도하여 왼쪽 누를 첨건하는 등 면모를 일신하고 송시열이 명칭을 이지당으로 지었음. 김만균과 송시열, 조헌은 옥천이라는 지연과 기호학파라는 학연으로 연결되어 있은데, 이러한 관계는 조헌 사후에 이지당이 정사(精舍)로 활용되고 유지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함.
ㅇ 이지당의 입지는 금강 상류의 한 지류인 서화천을 굽어보는 산비탈에 터를 잡아 앞으로는 너럭바위와 유유하게 흐르는 강이 펼쳐지고, 뒤로는 기암에 기대고 있어 사철 수려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임.
ㅇ 정사건축(精舍建築)의 성격에 누정(樓亭)이라는 성격을 불어넣은 복합건축으로 ‘ㄷ’자형 평면구성과 양 익랑을 중층의 누로 꾸민 건축유구로서 조선 후기의 소박하고 단아한 건축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음. 특히 본채 양쪽의 누는 이지당 영역의 외부공간을 한정하고 전방으로 펼쳐지는 수려한 경관을 감상하며 천인합일을 추구하는 유식공간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정사건축에 2층의 누를 덧붙여 지은 경우는 매우 드문 형태임.
ㅇ 이상의 사유로 역사적, 학술적, 건축사적 가치가 뛰어나 보물로 지정해 보존 관리할 필요가 있음.
<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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