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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사찰 일주문 등 8건 ‘보물’ 지정- 사찰 일주문 4건, 사찰 문루 1건, 사찰 불전 1건, 누정건축 1건, 신라말기 승탑 1건 -

노촌魯村 2022. 12. 28. 15:38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순천 선암사 일주문」 등 8건의 문화재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한다.

  이번에 지정되는 문화재들은 사찰 일주문(一柱門) 4건, 사찰 문루(門樓)와 불전(佛殿), 누정건축(樓亭建築), 승탑(僧塔) 등 각 1건이며, 지역별로 살펴보면 전라남도와 경상북도 각 2건, 대구광역시와 경기도, 전라북도, 경상남도 각 1건이다.

  특히 이번에 4건이 지정되는 사찰 일주문은 사찰이 시작되는 영역을 표시하는 정문으로 기둥만 일렬로 서있는 독특한 형식의 문이다. 문화재청은 지난해부터 전국의 50여 건의 사찰 일주문을 조사하고 전문가 검토와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이번에 4건의 일주문을 보물로 지정하게 되었다.

  「순천 선암사 일주문(順天 仙巖寺 一柱門)」(전라남도 순천시)은 조계문(曹溪門)으로도 불리며 1540년 중창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일주문 앞쪽에는 ‘조계산선암사(曹溪山仙巖寺)’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선암사 일주문은 단칸 맞배지붕과 다포식 공포로 되어있으며, 기둥 구조는 기둥과 창방(기둥 상부에서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가로 부재)으로 단순하게 구성됐다.

  선암사 일주문의 초창 기록은 확인할 수 없으나 조선시대 기록을 통해 중창 이후 임진왜란(1592)과 병자호란(1636) 때 유일하게 소실을 면한 건축물임을 알 수 있다.

* 맞배지붕: 건물 모서리에 추녀가 없고, 책을 펼쳐 엎어 놓은 것과 같은 형태의 지붕

* 다포식: 공포를 기둥 위와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꾸며 놓은 건축양식

「문경 봉암사 봉황문(聞慶 鳳巖寺 鳳凰門)」(경상북도 문경시)은 정확한 창건 기록은 없으나, 다른 기록을 통해 1723년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일주문 앞쪽에는 희양산봉암사(曦陽山鳳巖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뒤쪽에는 봉황문(鳳凰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봉암사 일주문은 단칸 맞배지붕과 다포식 공포로 되어있다.

  「대구 동화사 봉황문(大邱 桐華寺 鳳凰門)」(대구광역시 동구)은 1633년(인조 11년)에 처음 건립되었고, 1965년에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동화사 봉황문은 단칸 팔작지붕이며 다포식 공포이다. 구조는 주기둥 상부에 비스듬히 부재를 덧댄 형태와 주기둥 옆에 2개의 보조기둥을 세운 형태가 혼합된 형식으로 드문 사례이다.

* 팔작지붕 : 전후좌우 네 면에 지붕이 있고, 좌우 면에 작은 삼각형의 박공이 만들어지는 지붕 형태

  「구례 천은사 일주문(求禮 泉隱寺 一柱門)」(전라남도 구례군)은 사찰의 역사에 대한 기록물인 사적기(事蹟記)에 따르면 1723년에 창건되었다. 일주문의 앞쪽에는 원교 이광사(圓嶠 李匡師, 1705~1775)가 쓴 ‘지리산천은사(智異山泉隱寺)’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사찰에 화재가 자주 발생하자 원교 이광사가 흐르는 물과 같은 글씨체(水體)로 이 편액을 써서 걸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천은사 일주문은 단칸 팔작지붕과 다포식 공포로 되어있다. 보통 일주문은 문지방이 목재로 되어 있는데, 석재로 된 문지방석이 주기둥 사이에 있는 사례는 천은사 일주문이 유일하다.

  「고성 옥천사 자방루(固城 玉泉寺 滋芳樓)」(경상남도 고성군)는 상량문 등 기록에 따르면 1664년에 법당 맞은편에 위치한 정문(正門)으로 처음 건립되었고, 1764년에 누각형태로 중창되어 ‘정루(正樓)’ 또는 ‘채방루(採芳樓)’라 지칭하였다. 앞쪽에는 ‘옥천사(玉泉寺)’ 라는 편액이, 뒤쪽에는 ‘자방루(滋芳樓)’ 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자방루는 대웅전에 비해 큰 규모로, 정면의 모든 칸에는 판문(板門)을 두어 개방과 폐쇄를 조절할 수 있다.

  「상주 대산루(尙州 對山樓)」(경상북도 상주시)는 우복 정경세*(愚伏 鄭經世, 1563~1633)가 낙향한 후 우산리에 들어와 은거하고 학문을 닦는 장소로 1602년에 처음 짓고 1778년에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진 누정 겸 서실(書室)이다. 종갓집의 학문과 교류의 거점 역할을 하였으며, 조선시대 지방 선비의 학문적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역사적 자료이다. 중층 누각의 팔작지붕 건물로 배산임수 배치이다. 전체적인 평면구성은 ‘丁’자형으로 남쪽의 ‘ㅣ’자형 건물은 단층의 정사(亭舍, 정자 형태의 집)로 강학공간, 북쪽의 ‘ㅡ’자형 건물은 누각으로 휴양, 접객, 독서를 위한 다목적 공간이다.

* 17세기 영남학파의 전통을 잇는 학자로서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어 김장생(金長生)과 함께 예학의 대가로 불렸으며, 100여 명의 제자를 배출함

  「성남 봉국사 대광명전 (城南 奉國寺 大光明殿)」(경기도 성남시)이 있는 봉국사는 조선 현종의 딸인 명혜(明慧)와 명선(明善) 두 공주가 병에 걸려 잇달아 세상을 떠나자 이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왕실 주도로 창건한 절이다. 각종 기록에 따르면 봉국사를 1674년 새로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대광명전의 목재 연륜연대 조사에서도 주요부재가 17세기 후반의 것으로 확인되어 봉국사 창건과 함께 세워진 불전임을 알 수 있다.

  내부 닫집(부처님 머리 위로 지붕이 있는 작은 공간)의 화려한 구성은 이 건물이 왕실의 지원 아래 조성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며 불상을 중심으로 주변의 장엄을 돋보이게 치장한 방식은 조선후기 불전 사례의 하나로 평가된다.

  「남원 실상사 편운화상탑 (南原 實相寺 片雲和尙塔)」(전라북도 남원시)은 고승인 편운화상(?~910)에 대한 공양과 추모의 의미를 담은 조형물이다. 탑신 표면에 새겨진 명문에 따르면 후백제와 관련한 문화유산으로, 연호와 간지 등에 의하여 910년에 조성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신라 말 고려 초 고승을 위한 사리탑은 팔각당(八角堂)형 양식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편운화상탑은 향완(그릇 모양 몸체에 나팔모양의 높은 받침대가 있는 향로)의 형상과 비슷하다.

  기단부와 탑신부를 비롯한 전체적인 비례와 비율 등이 조화로워 당대 최고의 장인이 설계와 시공을 담당했던 것으로 판단되어 예술적 가치도 높다.

  문화재청은 앞으로도 가치가 알려지지 않은 건조물 문화재를 적극 조사·발굴하여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알리고 활용하는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또한 지역 문화재의 사회적 가치 제고와 주변 환경 정비 등을 위한 역사문화환경 개선 사업에도 관심을 가지고 지원할 계획이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보물로 지정한 「순천 선암사 일주문」등 사찰 일주문 4건과 사찰 문루인 「고성 옥천사 자방루」 1건, 사찰 불전인 「성남 봉국사 대광명전」 1건, 누정건축인 「상주 대산루」1건, 신라말기 승탑인 「남원 실상사 편운화상탑」1건 등 총 8건의 문화재가 체계적으로 보존 관리될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 소유자(관리자) 등과 적극적으로 협조할 계획이다.

 □ 종 별 : 보물

□ 문화재명 : 순천 선암사 일주문(順天 仙巖寺 一柱門)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802번지

ㅇ 구조/규격 : 단칸 맞배지붕/ 일주문식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미상

ㅇ 소유자(관리자) : 선암사

ㅇ 지정면적 : 37.3㎡

□ 지정사유

ㅇ 「순천 선암사 일주문」이 위치한 선암사는 통일신라시대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설과 신라시대 아도화상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조계문으로도 불리는 일주문에 대한 기록은 1540년 중창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현 일주문 앞쪽에는 ‘조계산선암사(曹溪山仙巖寺)’라는 현판이 뒤쪽에는 ‘고청량산해천사*(古淸涼山海川寺)’ 현판이 걸려있다.

* 1759년 화재 이후 선암사에서 해천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823년 다시 선암사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ㅇ 선암사 일주문은 단칸 맞배지붕과 주상포, 주간포의 다포식 공포로 되어있다. 축부(軸部/ 기둥 부분)는 양팔보(기둥과 창방으로 단순하게 구성된 T자형) 형식으로 되어있으며, 창방(기둥머리에 가로로 맞추는 목재) 전체 배치형식은 ‘口’자형이다. 주기둥 옆에는 흙과 돌을 사용하여 쌓은 뒤에 횟가루로 표면을 마감한 짧은 담장이 설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기둥은 하부에서 상부로 갈수록 직경이 작아지는 민흘림 형식이다.

ㅇ 내부 의장은 특별하게 장치한 것은 없으나 2001년에 주기둥 내측 상부에 용두(龍頭)를 추가 한 것을 들 수 있다. 일주문 내부에 용두로 장엄을 베푼 예는 대구 동화사 일주문과 장흥의 보림사 일주문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 사찰은 천장에서 용두가 내려와 있어 선암사의 용두를 기둥에 거는 방식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ㅇ 순천 선암사 일주문은 초창 모습은 확인할 수 없으나 조선시대 기록을 통해 확인된 중창 이후 임진왜란(1592)과 병자호란(1636)의 전화를 피해 유일하게 소실을 면한 건축물로서 조선 중기 건축물의 건축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어 그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있다. 뿐만 아니라 일주문 형식에서 양팔보형은 순천 선암사 일주문과 북한의 안변 보현사 일주문으로 남북한을 통틀어 2개의 사례가 존재한다.

□ 종 별 : 보물

□ 문화재명 : 문경 봉암사 봉황문(聞慶 鳳巖寺 鳳凰門)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산54번지

ㅇ 구조/규격 : 단칸 맞배지붕/ 일주문식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미상

ㅇ 소유자(관리단체) : 대한불교조계종 봉암사

ㅇ 지정면적 : 54㎡

□ 지정사유

ㅇ 「문경 봉암사 봉황문」이 위치한 봉암사는 신라시대 말기에 지증도헌(智證道憲) 선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봉황문에 대한 창건 기록은 없으나 대체로 1723년 이전으로 보인다. 일주문 앞쪽에는 희양산봉암사(曦陽山鳳巖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뒤쪽에는 봉황문(鳳凰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ㅇ 봉암사 봉황문은 5량가의 단칸 맞배지붕과 주상포, 주간포의 다포식 공포로 되어있다. 축부(軸部)는 문경지역에 편중된 궁판형(기둥 중간과 하부에 목재를 끼운 난간 형태)으로 되어있다. 기둥은 민흘림이고 지붕은 연목과 부연의 겹처마이다.

ㅇ 창방(기둥 사이에 가로로 맞추는 목재) 배치형식은 ‘H’자형이다. 보통 일주문의 창방은 ‘口’자형이나 ‘日’자형 배치가 주를 이루는데 봉황문의 배치방식은 도리방향 주심창방이 하중분담의 중심이 되는 ‘H’자형으로 공포의 일단배열(‘ㅡ’자형)에서 이단배열(‘口’자형, ‘日’자형)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하중처리방식을 보이고 있다.

ㅇ 공포는 외출목만을 있고 내출목은 생략하였으며, 통제공에 주두를 주요지점에 사용하여 공포를 통한 축부의 하중전달을 용이하게 하였다. 이러한 공포배열은 지붕도 크게 유지하면서 평방과 창방이 전후면의 처마를 가리지 않아 일주문을 높고 개방감 있게 만드는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수법은 오직 봉암사 봉황문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수법일 정도로 독창적이다.

□ 종 별 : 보물

□ 문화재명 : 대구 동화사 봉황문(大邱 桐華寺 鳳凰門)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 산124-1

ㅇ 구조/규격 : 단칸 팔작지붕/ 일주문식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

ㅇ 소유자(관리단체) : 대한불교조계종 동화사

ㅇ 지정면적 : 11.2㎡

□ 지정사유

ㅇ 「대구 동화사 봉황문」이 위치한 동화사는 신라시대에 창건(極達和尙 또는 心地王師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봉황문으로 불리는 일주문은 조선후기 1633년(인조 11년)에 처음 건립되었다. 원래는 옹호문(擁護門) 자리에 위치하였으나 1965년에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봉황문 앞쪽에는 ‘팔공산동화사봉황문(八公山桐華寺鳳凰門)’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ㅇ 동화사 봉황문은 5량가의 단칸 팔작지붕이며 주심포와 주간포를 가진 다포식이다. 축부는 주천방(柱穿枋, 기둥을 꿰뚫는 부재)을 사용한 상부사재형(上部斜材形, 양팔보형에서 주기둥의 상부에 비스듬히 부재를 덧댄 형태)과 보조기둥형(주기둥 옆에 2개의 보조기둥을 세운 형태)이 혼합된 형식으로 사례가 드물다. 보조기둥은 1920년~1951년 사이에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ㅇ 창방(기둥머리에 가로로 맞추는 목재) 전체 배치형식은 주기둥 사이에 창방이 놓인 ‘日’자형으로 평방의 배치형식인 ‘口’자형과 다르게 구성되어 있다.

ㅇ 공포는 지역적인 특색이 있는 교두형공포(날개 모양 등으로 도출되지 않은 단조롭게 깎은 공포)로 내부 사면과 외부사면 모두가 동일하다. 또 포간 거리가 중앙에서 멀어질수록 좁아지는 다포식이다. 처마는 연목(서까래)와 부연(종된 서까래)을 사용한 겹처마로 되어있다. 봉황문 내부천장은 우물반자 형식으로 우물은 총 4개로 구성하였으며, 중앙 2개소의 우물을 제외하고 양측단 우물에는 용두(龍頭) 2개가 걸려 있다.

ㅇ 대구 동화사 봉황문은 지역적으로 계통이 비슷한 교두형 공포장식을 가지고 있고 다른 일주문 축부와 구별되는 독특한 축부를 가지고 있다.

□ 종 별 : 보물

□ 문화재명 : 구례 천은사 일주문(求禮 泉隱寺 一柱門)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 산1-1

ㅇ 구조/규격 : 단칸 팔작지붕/ 일주문식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

ㅇ 소유자(관리자) : 대한불교조계종 천은사

ㅇ 지정면적 : 9.5㎡

□ 지정사유

ㅇ 「구례 천은사 일주문」이 위치한 천은사는 신라 헌강왕때 연기(烟起 또는 緣起)조사가 창건했다는 설과 신라 흥덕왕때 덕운(德雲)조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일주문은 사찰의 최근(2015년) 사적기(事蹟記)에 따르면 1723년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일주문의 이름은 알 수 없지만(曺溪門이라는 기록이 있으나 일주문을 의미하는지는 불확실) 앞쪽에는 원교 이광사(圓嶠 李匡師, 1705~1775)가 쓴‘지리산천은사(智異山泉隱寺)’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ㅇ 천은사 일주문은 단칸 팔작지붕과 주상포, 주간포의 다포식 공포로 되어있다. 축부(軸部/ 기둥 부분)는 지리산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보조기둥형으로 2본의 주기둥과 4본의 보조기둥으로 구성되어 있다.

ㅇ 창방(기둥머리에 가로로 맞추는 목재) 전체 배치형식은 ‘日’자형으로 평방의 배치형식인 ‘口’자형과 다르게 구성되어 있다. 1973년 이전 사진에는 일주문 옆에 담장이 없었는데, 후대에 담장이 부가되어 사찰의 경계영역을 표시하고 있다. 지붕 처마는 원형 단면의 서까래와 방형 단면의 부면으로 구성된 겹처마 형식이다.

ㅇ 천은사 일주문은 1723년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진 건물로 이후의 수리이력에 대해서는 정확히 근거와 함께 알려진 것이 없다. 특징으로 공포대를 높게 올려 외형이 다른 일주문에 비해 높다란 느낌을 주고, 또한 보통 일주문의 문지방이 목재로 되어 있는데 석재로 된 문지방석이 주기둥 사이에 있는 예는 천은사 일주문이 유일하다. 또 천은사 일주문 편액은 사찰에 화재가 자주 발생하자 원교 이광사가 흐르는 물과 같은 글씨체(水體)로 편액을 써서 걸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역적인 특성과 함께 조선시대 일주문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 종 별 : 보물

□ 문화재명 : 고성 옥천사 자방루(固城 玉泉寺 滋芳樓)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경상남도 고성군 개천면 북평리 408

ㅇ 구조/규격 : 단층 팔작/ 정면 7칸·측면 3칸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

ㅇ 소유자(관리자) : 대한불교조계종 연화산 옥천사

ㅇ 지정면적 : 138.84㎡

□ 지정사유

ㅇ 「고성 옥천사 자방루」는 상량문 등 기록에 따르면 1664년에 법당 맞은 편에 위치한 정문(正門)으로 처음 건립되었고, 1764년에 누각형태로 중창되어 ‘정루(正樓)’ 또는‘채방루(採芳樓)’라 지칭하였다. 옥천사 사역 내로 진입하는 길은 자방루 양쪽에 있는 출입구를 이용하는 방식(隅角出入, 문루 아래를 통하지 않고 옆으로 출입하는 방식)이다. 정면에는 ‘옥천사(玉泉寺)’ 라는 편액이, 배면에는 ‘자방루(滋芳樓)’ 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ㅇ 정면 7칸 측면 3칸의 5량가 자방루는 대웅전에 비해 큰 규모로 누하주(樓下柱, 누마루 밑 기둥) 없는 단층 전각의 구성을 하고 있으며, 내부는 고주(高柱, 내부기둥)를 두고 통간(通間, 내부 벽체가 없음)형으로 사용되고 있다. 자방루 앞으로 외정(外廷, 바깥마당)이 자리하고 있는데, 지면의 고저차를 극복하기 위해 158cm가량의 자연석 석축을 조성한 후, 그 위에 60cm 높이의 기단을 다시 설치하였다. 공포는 익공형(새 날개 모양의 단순한 공포) 공포로 지붕의 연목이 노출되는 연등천장을 하고 있다. 자방루의 정면의 모든 칸에는 판문(板門)을 두어 개방과 폐쇄를 조절 가능하게 하고 있다. 대웅전을 마주하고 있는 배면에는 76cm 높이의 난간을 설치하여 개방하였다.

ㅇ 자방루는 평면구성은 내부 고주가 종단면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고, 대웅전 쪽 마루 한 칸을 없애고 외부공간으로 처리했으며, 자방루의 공포와 화반(花盤, 상부 목재를 받치는 부재), 고주 상부 보아지(기둥과 대들보를 연결하는 부재)의 화려한 장엄에서 조선후기 사찰의 누각건축에서 나타난 장엄의 사례 중 손꼽히는 수작으로 평가할 수 있다.

□ 종 별 : 보물

□ 문화재명 : 상주 대산루(尙州 對山樓)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채릉산로 799-46

ㅇ 구조/규격 : 중층 누각의 팔작지붕 / 정면 · 측면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

ㅇ 소유자(관리자) : 정춘목

ㅇ 지정면적 : 170.92㎡

□ 지정사유

ㅇ 「상주 대산루」는 우복 정경세*(愚伏 鄭經世, 1563~1633)가 낙향한 후 우산리에 들어와 은거하고 학문을 닦는 장소로 1602년에 처음 짓고 1778년에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다듬어진 누정 겸 서실(書室)이다. 종갓집의 학문과 교류의 거점 역할을 하였으며, 조선시대 지방 선비의 학문적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역사적 자료이다.

* 17세기 영남학파의 전통을 잇는 학자로서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어 김장생(金長生)과 함께 예학의 대가로 불렸으며, 100여 명의 제자를 배출함

ㅇ 상주 대산루는 5량가 중층 누각의 팔작지붕 건물로 배산임수 배치를 두고 있다. 전체적인 평면구성은 ‘丁’자형으로 남쪽의 ㅣ자형 건물은 단층의 정사(亭舍, 정자 형태의 집)로 강학공간, 북쪽의 ㅡ자형 건물은 누각으로 휴양, 접객, 독서를 위한 다목적 공간으로 삼았다. 정사는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로 대청 2칸, 온돌방 2칸으로 구성하였으며, 누각은 정면 2칸, 측면 5칸 규모로 1칸 규모의 온돌방을 중심으로 앞쪽은 누마루, 뒤쪽은 서고로 구성하였다.

ㅇ 정사와 누각 두 개의 건물을 ‘丁’자형으로 연결하는 방식과 두 공간을 이어주는 자연석 계단과 담장, 누각 2층에 구성된 온돌, 기둥 밖으로 돌출시켜 도리를 거는 출목도리 형식의 가구구성에 나타난 독특한 건축기법 등은 대산루의 건축적 가치를 잘 보여주고 있다.

ㅇ 또한 인근에 위치한 우복 종가 등 관련 건물과 함께 주변 경관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이곳에서 향촌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다양한 문집과 문서 등이 생산된 점 등을 고려할 때,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높아 국가지정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 종 별 : 보물

□ 문화재명 : 성남 봉국사 대광명전 (城南 奉國寺 大光明殿)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로 79

ㅇ 구조/규격 : 단층 맞배/ 정면 3칸·측면 3칸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

ㅇ 소유자(관리자) : 대한불교조계종 봉국사

ㅇ 지정면적 : 44.6㎡

□ 지정사유

ㅇ 봉국사는 조선 현종의 딸인 명혜(明慧)와 명선(明善) 두 공주가 병에 걸려 잇달아 세상을 떠나자 이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왕실 주도로 창건하였다.

ㅇ 각종 기록에 봉국사를 1674년 새로 창건한 것으로 전하는데, 대광명전의 목재 연륜연대 조사에서 주요부재가 17세기 후반의 것으로 확인되어 봉국사 창건과 함께 세워진 불전임을 알 수 있다.

ㅇ 봉국사 대명광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5량가 구조이며 공포는 익공(翼工, 기둥머리 위에서 보를 받치는 새의 날개 형상을 한 초각 부재로 공포 형식의 하나)계의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17세기에 흔하지 않은 출목익공식의 공포구성을 갖추고 있다. 출목익공은 17세기 초 종묘 정전에서 나타나지만, 불전에서는 흔한 사례가 아니다.

ㅇ 현재 공포의 모양과 장식은 19세기의 시대 특징을 보인다. 살미가 바깥으로 길게 뻗어 있고 살미 끝에 연꽃 장식이 올라있고 상부 제공은 용머리 조각을 두는 등 19세기 전형적인 장식적 모습을 취하였다. 또한 귀공포는 익공식이면서 다포식의 귀포 구성을 연상시키는 방식을 갖추고 있는데, 이런 형태들은 이 건물의 공포가 19세기에 와서 변화되었음을 보여준다.

ㅇ 내부 닫집(부처님 머리 위로 지붕이 있는 작은 공간)의 화려한 구성은 이 건물이 왕실의 지원 아래 조성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며 불상을 중심으로 주변의 장엄을 돋보이게 치장한 방식은 조선후기 불전 사례의 하나로 평가된다.

□ 종 별 : 보물

□ 문화재명 : 남원 실상사 편운화상탑 (南原 實相寺 片雲和尙塔)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산3번지

ㅇ 구조/규격 : 섬록암(Diorite) / 석 구조 / 높이 176cm

ㅇ 수 량 : 1기

ㅇ 조성연대 : 신라말기

ㅇ 소유자(관리단체) : 대한불교조계종 실상사

ㅇ 지정면적 : 3㎡

□ 지정사유

ㅇ 남원 실상사 편운화상탑은 고승인 편운화상에 대한 공양과 추모 등의 의미가 반영된 기념적인 조형물이다.

ㅇ 편운화상탑은 탑신 표면에 명문을 새겨, 법맥과 주인공, 조성 시기 등을 파악할 수 있게 하였다. 그에 따르면 편운화상탑은 후백제와 관련한 문화유산이자 연호와 간지 등에 의하여 910년에 조성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ㅇ 신라말 고려초에는 고승을 위한 사리탑은 팔각당형 양식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편운화상탑은 공양과 추모를 위하여 향을 피울 때 사용한 향완을 모티브로 설계와 시공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사례가 드문 유물일 뿐만 아니라, 당시 장인의 기발한 착상과 창의성을 엿볼 수 있는 문화유산이다.

* 향완(香垸) : 불전에 향을 피우는 향로의 일종으로 그릇 모양의 몸체에 나팔모양의 높은 받침대가 있는 향로

ㅇ 편운화상탑은 전체적으로 향완의 조영과 친연성(親緣性)을 보여주고 있으며, 독특하게 평면도 원형(圓形)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기단부와 탑신부를 비롯한 전체적인 비례와 비율 등이 잘 어울리고 있어 당대 최고의 장인이 설계와 시공을 담당했던 것으로 판단되어 예술적 가치도 높은 걸작이라 할 수 있다.

ㅇ 이처럼 남원 실상사 편운화상탑은 보존 상태가 양호한 신라말 고려초에 건립된 대부분의 승탑이 국보나 보물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점, 원형과 원위치를 유지하고 있는 점,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가 높은 점, 완전성과 진정성 측면 등이 탁월한 것으로 사료되기 때문에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 관리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판단된다.

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