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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사찰 일주문 6건 ‘보물’ 지정 예고- 「합천 해인사 홍하문」, 「함양 용추사 일주문」 등 조선 전~후기 건축양식 반영된 문화유산

노촌魯村 2023. 8. 25. 21:30

문화재청(청장 최응천)합천 해인사 홍하문 6건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오는 2023년 8월 28일(월) 지정 예고한다.

일주문(一柱門)은 조선시대 사찰의 삼문(三門) 체계가 성립되면서 나타나는 사찰 진입부의 첫 번째 건축물이다. 대부분 다포계의 화려한 양식을 취하고 있으며, 조선전기에서 후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시기적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사찰의 주불전(主佛殿) 위주로 문화유산 지정이 되었고, 기타 건물은 상대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 2021년까지 일주문 중에는 부산 범어사 조계문이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되어 있었다.

* 다포: 공포를 기둥 위와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꾸며 놓은 건축양식

이에 문화재청은 2022년부터 전국 사찰의 일주문 50여 건에 대한 일괄 조사를 실시한 후, 전문가 검토와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높은 것을 선별하여 지난해 12순천 선암사 일주문(順天 仙巖寺 一柱門)4을 보물로 지정하였다. 이번에는 6건의 일주문을 추가로 보물 지정 예고한다.

합천 해인사 홍하문(陜川 海印寺 紅霞門)(경상남도 합천군)은 정확한 창건 연대를 알 수 없으나, 1457(세조 3)에 중수하여 지금까지 다섯 차례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어 세조의 지원 아래 해인사가 확장되는 과정에서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정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정면 평방에 6개 공포, 전체 14개 공포를 올린 다포식 공포 구조로 서까래와 부연이 있는 겹처마 지붕이다. 맞배지붕을 한 일주문은 정면에서 봤을 때 5개 공포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일주문은 6개 공포를 올려 상대적으로 웅장하다.

* 중수 : 건축물 따위의 낡고 헌 것을 다시 손을 대어 고침

* 맞배지붕 : 지붕면의 앞뒤로만 경사를 지어 기와를 올리는 지붕으로 옆에는 판재를 이어 붙여서 비바람을 막음

* 평방: 기둥 위에 가로로 놓여 지붕을 받치는 부재

함양 용추사 일주문(咸陽 龍湫寺 一柱門)(경상남도 함양군)은 함양 용추계곡 일대에 존재했던 옛 장수사(長水寺)일주문으로 1711(숙종 37)에 건립되었다. 625전쟁 당시 장수사가 화재로 모든 전각이 소실될 때 유일하게 화를 피하였다. 현재는 장수사의 암자였던 용추사의 일주문으로 사용되고 있다.

단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서까래와 부연으로 구성한 겹처마 구조이며, 정면 평방에 7개 공포, 전체 20개 공포의 다포식 공포이다. 이 일주문도 7개 공포로 구성되어 웅장하다.

* 팔작지붕 : 맞배지붕 옆에 삼각형의 합각을 남기고 경사를 지어 기와를 올리는 지붕

곡성 태안사 일주문(谷城 泰安寺 一柱門)(전라남도 곡성군)2017년 보수공사에서 확인된 상량문에 의하면 조선전기인 1521(중종 16)조계문(曹溪門)’으로 창건되었고, 상량문에는 태종의 둘째 아들인 효령대군(孝寧大君, 1396~1486)의 수결(手決, 서명) 흔적이 남아있다. 공포의 형식과 짜임은 조선 후기의 건축 기법을 잘 보여주는데 이를 통해 창건 이후 지속적으로 보수되어 온 건물임을 알 수 있다.

주기둥 상부 안쪽에 용두(龍頭)를 설치하였고 용두에는 두 뿔, 큰 눈, 눈썹, 크게 벌린 입과 이빨, 머리 뒷부분의 갈기 등이 화려하고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 창방: 기둥머리에 가로로 맞추는 목재

하동 쌍계사 일주문(河東 雙磎寺 一柱門)(경상남도 하동군)‘영남하동부쌍계사사사적기문’ 따르면 1641(인조 19)에 세워졌다. 전면 1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며, 전면 평방에 5개 공포, 전체 14개 공포의 다포식 공포 구조이고, 측면의 규모가 큰 편이다. 또한 대웅전으로 이르는 일직선상의 축에 따라 일주문, 금강문, 사천왕문 등의 전각을 건립한 산지가람배치 형식이 잘 보존되어 있다.

달성 용연사 자운문(達城 龍淵寺 慈雲門)(대구광역시 달성군)1695(숙종 21)에 창건된 것으로 상량문(1695)과 중수기(1938)가 남아있어 건축연대와 중수연대가 확실하다. 처음 명칭은 일주문으로 건립되었으나, 1920년 사진자료에는 자운문으로 편액이 되어 있어 그 이전에 명칭이 변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정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우진각 지붕틀을 구성한 뒤 맞배형의 덧지붕을 씌워서 건축했다. 정면 평방에 5개 공포, 전체 14개 공포의 다포계 공포 구조로 겹처마 지붕이며, 주기둥의 부재 형태가 하부에서 벌어지는 비스듬한 형태로 독특하다.

* 주선: 기둥 옆에 붙여 지지하는 부재

순천 송광사 일주문(順天 松廣寺 一柱門)(전라남도 순천시)은 건립연대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1802(순조 2) 중창되었으며 1842(헌종 8) 큰 화재로 송광사의 대부분 전각이 소실되었으나 일주문은 살아남았다는 조계산송광사사고(曹溪山松廣寺史庫)’ 등을 통해 1802년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1886년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순천조계산송광사사적에 포함된 송광사 배치도에서도 그 위치를 확인할 수 있다.

정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겹처마 지붕이며, 공포는 정면 평방에 5개 공포, 전체 12개 공포의 다포식 구조이다. 주기둥 안쪽 상단에 용두를 두었는데 조선 후기에 자주 보이는 장엄이다.

* 풍판 : 맞배지붕의 양 측면에 비바람을 막기 위해 판재를 이어 붙여 만든 부분

* 장엄 : 부처에게 올려 장식하는 일

문화재청은 이번에 예고한 합천 해인사 홍하문등 사찰 일주문 6건의 문화유산에 대하여 30일간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 심의 절차를 거쳐 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이번 사찰 일주문의 보물 지정 예고는 적극행정의 일환으로 지방자치단체와 협력을 통해 추진하였다.

□ 종 별 : 보물

□ 문화재명 : 합천 해인사 홍하문(陜川 海印寺 紅霞門)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ㅇ 구조/규격 : 단칸 맞배지붕/ 일주문식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

ㅇ 소유자(관리자) : 대한불교조계종 해인사

ㅇ 지정면적 : 19.32㎡

□ 지정사유

ㅇ 「합천 해인사 홍하문」은 창건 연대를 알 수 없으나, 1457년(세조 3년)에 중수하여 지금까지 다섯 차례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어 세조의 지원 아래 해인사가 확장하는 과정에서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또 유척기(俞拓基, 1691~1767)의 ‘유가야산기(遊伽倻山記)’기록으로 보아 적어도 18세기에 일주문인 홍하문, 그 다음에 봉황문, 해탈문이 차례로 있었음을 알 수 있다.

ㅇ 전면의 ‘가야산해인사(伽倻山海印寺)’ 현판은 해강 김규진(海崗 金圭鎭, 1868~1933)의 글씨이고 *주련(柱聯, 기둥에 붙이는 글귀)도 해강의 글씨이다. 내부 중앙의 ‘홍하문’ 글씨는 주원영(朱源榮, ?~?)의 글씨이고, 배면의 ‘해동제일도량(海東第一道場)’이라는 현판은 박해근(朴海根, 1919~1973)의 글씨이다. ‘홍하문’ 명칭은 해인사에 이르는 계곡인 홍류동(紅流洞)과 부처님의 붉은 광명을 뜻하는 불교적 표현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 역천겁이불고 긍만세이장금(歷千劫而不古 亘萬歲而長今, 천겁이 지났어도 옛날이 아니며 만세를 지나도 항상 지금)

ㅇ 「합천 해인사 홍하문」은 정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옛 그림에 보면 지붕이 팔작지붕으로 그려졌는데 19세기쯤 중수할 때 맞배지붕으로 변경된 것으로 보인다. 정면 평방에 6개 공포, 전체 14개 공포를 올린 다포식공포 구조로 겹처마 지붕이다. 축대는 5단으로 구성되고 기단은 장대석 외벌대 기단이다. 홍하문의 축부 유형은 상하부사재형(上下部斜材形)으로 주기둥 옆에 부재를 붙여 보강한 다음 다시 창방과 신방목 끝에 비스듬히 부재를 덧대었다.

* 해인사 일주문이 그려진 그림으로는 정선(鄭敾, 1676~1759)이 부채에 그린「해인사도」와 김윤겸(金允謙, 1711~1775)의 「해인사도」가 있는데 정선의 그림에서는 일주문의 기둥형태가 비교적 자세하게 그려져 있어 현재의 모습과 유사한 형태를 보이고 있으나, 김윤경의 그림에서는 기둥이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음. 그런데 두 사람 모두 지붕은 팔작 형태로 그리고 있음.

ㅇ 창방 전체 배치형식은 주기둥 사이에 창방이 놓여있는 ‘曰’자형이며 공포가 주기둥 앞과 뒤 출평방 위에 배열되는 이단배열형이다. 기단과 초석은 근년에 수리하면서 화강석 다듬은 돌을 사용하여 새롭게 조성한 것으로 당초 모습과 거리가 있다.

ㅇ 건축형식에서 맞배지붕을 한 일주문은 정면기준 주로 5개 공포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 것에 비해, 이 일주문은 6개 공포로 상대적으로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공포의 짜임 등이 조선전기의 강직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 종 별 : 보물

□ 문화재명 : 함양 용추사 일주문(咸陽 龍湫寺 一柱門)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상원리 960

ㅇ 구조/규격 : 단칸 팔작지붕/ 일주문식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

ㅇ 소유자(관리자) : 용추사

ㅇ 지정면적 : 73.0㎡

□ 지정사유

ㅇ 「함양 용추사 일주문」은 용추계곡 일대에 옛 *장수사(長水寺)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건축물로 1711년(숙종 37)에 두혜(杜慧)가 건립했다.

* 숙종 6년(1680)에 큰 화재로 전소된 이후 현 용추사 위치에서 아래로 내려와 대웅전과 요사채를 중심으로 중창불사 되었고, 숙종 37년(1711)에 일주문이 조성됨

ㅇ 「함양 용추사 일주문」 정면 창방에는 ‘덕유산장수사조계문(德裕山長水寺曹溪門)’이라 쓴 현판이 걸려있다. 현판에서 확인되는 장수사는 일주문 북쪽에 위치하였던 사찰로, 현재의 용추사(龍湫寺) 자리에는 장수사의 암자 중 하나인 용추암(龍湫庵)이 있었다. 일주문 북쪽으로 약 450m 정도 떨어진 곳에 명승인 용추폭포와 용추사가 위치한다. 일주문은 6‧25전쟁 당시 장수사와 용추사가 화재로 모든 전각이 소실될 때 유일하게 화를 피하였고 현재는 장수사의 암자였던 용추사의 일주문으로 사용되고 있다.

* 용추암(龍湫庵)은 영조 1년(1725)에 장수사(長水寺) 옛터에 창건되었고, 용추사는 1959년 용추암의 자리에 사찰을 중건하면서 이름을 용추사로 변경하였음.

ㅇ 「함양 용추사 일주문」은 단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겹처마 구조이다. 정면 평방에 7개 공포, 전체 20개 공포의 다포식 공포 구조이다. 자연석 기단이며 주기둥 등 치목을 최소화한 자연부재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향이 확인된다. 기둥 형태는 상하부사재형(측면에서 X 자 모양으로 주기둥을 지지하는 버팀기둥) 형식으로 되어있으며, 창방(기둥머리에 가로로 맞추는 목재) 전체 배치형식은 주기둥 사이에 창방이 놓여있는 ‘曰’자형이다. 또 공포가 주기둥 앞과 뒤 출평방 위에 배열되는 이단배열형이다.

ㅇ 치목을 최소화한 자연재를 적극 사용한 점에서 부재 확보의 어려움, 경제적 한계 등 당시 사찰의 시대적·경제적 상황이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며, 사찰의 시작부로서 위계성을 부여하기 위해 공포 및 지붕을 장엄하고 화려하게 구성하기 위한 건축기법 등이 나타난다.

ㅇ 조선중기 산지가람의 전각배치에서 보여주는 산문(山門)의 전형을 잘 보여주며, 건축형식에서도 팔작지붕을 한 일주문은 정면기준 주로 5개 공포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비해, 이 일주문은 7개 공포로 매우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공포의 형식이 1711년 초창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등 조선중기의 형식미를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가치가 높다.

□ 종 별 : 보물

□ 문화재명 : 곡성 태안사 일주문(谷城 泰安寺 一柱門)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 산 18-1

ㅇ 구조/규격 : 단칸 맞배지붕/ 일주문식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

ㅇ 소유자(관리단체) : 대한불교조계종 태안사

ㅇ 지정면적 : 48.0㎡

□ 지정사유

ㅇ 「곡성 태안사 일주문」은 2017년 보수공사에서 확인된 상량문에 의하면 1521년(중종 16년)‘조계문(曹溪門)’으로 창건되었다. 태안사는 6‧25전쟁 당시 거의 소실되었으나 일주문은 능파각(凌波閣)과 더불어 남아 있는 건물 중 하나이다. 상량문에 태종의 둘째 아들인 효령대군(1396~1486)의 수결(手決, 서명) 흔적이 남아있다.

ㅇ 일부문 앞면에는 ‘동리산태안사(桐裏山泰安寺)’, 뒷면에는 ‘봉황문(鳳凰門)’라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앞면 좌우에는 *주련이 걸려 있다. 용마루 양단에는 1809년 기와를 보수했다는 명문이 남아있다.

* 역천겁이불고 긍만세이장금(歷千劫而不古 亘萬歲而長今, 천겁이 지났어도 옛날이 아니며 만세를 지나도 항상 지금)

ㅇ 「곡성 태안사 일주문」은 정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정면의 평방에 5개 공포, 전체 12개 공포의 다포식 공포 구조로 겹처마 지붕이다. 외부 공포는 단부와 중앙부의 포 간격이 달라 전체 길이를 설정한 후에 공포의 간격을 배분한 것으로 조성에 있어서 시기적인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ㅇ 굵은 민흘림의 주기둥 양쪽 앞뒤에 보조기둥을 세웠다. 주기둥 상부에는 내부에 용두(龍頭)를 설치하였고, 용두는 두 뿔, 큰 눈, 눈썹, 크게 벌린 입과 이빨, 머리 뒷부분의 갈기 등이 화려하고 사실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보조기둥은 정면은 팔각주, 배면은 원주를 사용하였다. 보조기둥 상부 창방을 받치는 주두(柱頭, 기둥위에서 상부를 받치는 부재)는 연화문 모양으로 조각하였다. 창방 전체 배치형식은 주기둥 사이에 창방이 없는 ‘口’자로 이단배치형이다.

ㅇ 공포의 짜임과 전체 구조는 조선 후기 사찰 건축의 기법을 잘 보여주며, 상부 지붕틀의 구조와 기둥, 공포의 배열 등은 맞배지붕형 일주문의 전형적인 형식을 보여준다.

□ 종 별 : 보물

□ 문화재명 : 하동 쌍계사 일주문(河東 雙磎寺 一柱門)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6

ㅇ 구조/규격 : 단칸 팔작지붕/ 일주문식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

ㅇ 소유자(관리단체) : 대한불교조계종 쌍계사

ㅇ 지정면적 : 64.12㎡

□ 지정사유

ㅇ 「하동 쌍계사 일주문」은 ‘영남하동부쌍계사사사적기문(嶺南河東府雙磎寺寺事蹟記文)’에 따르면 벽암(碧巖, 1575~1660)이 1641년(인조 19)에 세웠다고 한다. 일주문에는 2개의 편액이 걸려 있는데, 전면에는 ‘삼신산쌍계사(三神山雙磎寺)’와 배면에는 ‘선종대가람(禪宗大伽藍)’이 달렸다. 이는 근대 서화가로 이름을 떨친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 1868~1933)이 쓴 것이다. *우측 기둥과 **좌측 기둥에는 우송 민효식(友松 閔孝植, 1926~?)이 쓴 주련이 걸려있다.

* 입차문래막존지해(入此門來莫存知解, 이 문 안에 들어서면 모든 알음알이를 버려라.)

** 무해공기대도성만(無解空器大道成滿, 알음알이가 없는 빈그릇이라야 큰 도를 이룬다.)

ㅇ 「하동 쌍계사 일주문」은 전면 1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전면 평방에 5개 공포, 전체 14개 공포의 다포식 공포 구조로 측면에 설치한 창방과 평방이 건물에 비하여 긴 부재를 사용하여 일주문 중 측면의 규모가 큰 편이다. 자연석 초석을 두었고, 구조적으로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주기둥 아래 신방목(기둥 밑에서 가로로 지지하는 부재)을 결구하였으며, 주기둥 전후로도 보조기둥을 설치하였다. 도리 방향으로는 문지방을 결구하였다. 창방 전체 배치형식은 주기둥 사이에 창방이 없는 ‘口’자의 이단배치형이다. 내부 천장은 연꽃 조각을 새겼다.

ㅇ 일주문은 쌍계사의 시작부로서 위계성을 부여하기 위해 공포 및 지붕을 장엄하고 화려하게 꾸몄다. 일주문은 대웅전으로 이르는 일직선상의 축에 따라 금강문, 사천왕문 등의 전각을 건립한 배치형식의 시작점으로서 산지가람배치 형식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일주문의 건축적 특징과 조선후기 공포 양식에 있어서 다포계 건축기법이 잘 남아있는 지리산권의 중요 건축물이다.

□ 종 별 : 보물

□ 문화재명 : 달성 용연사 자운문(達城 龍淵寺 慈雲門)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반송리 산 54-7

ㅇ 구조/규격 : 단칸 팔작지붕/ 일주문식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

ㅇ 소유자(관리단체) : 대한불교조계종 용연사

ㅇ 지정면적 : 49.12㎡

□ 지정사유

ㅇ 「달성 용연사 자운문」은 1695년(숙종 21년)에 창건된 것으로 상량(1695년)문과 중수기(1938년)가 남아있어 건축연대와 중수연대가 확실하다. 처음 명칭은 ‘일주문’으로 건립되었으나, 1920년 사진자료에는 ‘자운문’으로 편액이 되어 있어 그 이전에 명칭이 변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망와(望瓦, 지붕의 마루 끝에 세우는 기와)는 옛 것을 그대로 사용하였는데 명문상 1721년에 제작한 것으로, ‘용연사중수기’에 신축년(1721)에 기와를 구웠다는 기록과 합치된다.

ㅇ 정면에 ‘비슬산용연사자운문(琵瑟山龍淵寺慈雲門)’이란 편액을 걸어 놓았으며, 글씨는 회산 박기돈(晦山 朴基敦, 1873~1948)의 작품이다.

ㅇ 「달성 용연사 자운문」은 정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우진각 지붕틀을 구성한 뒤 위에 맞배형의 덧지붕을 씌워서 건축했다. 정면 평방에 5개 공포, 전체 14개 공포의 다포계 공포 구조로 서까래와 부연의 겹처마 형식이다. 기둥형태는 주기둥을 주선으로 보강한 후 또 하나의 부재를 주선면에 덧붙였는데 이 부재의 형태가 상부에서 중간까지는 주선과 나란하고 하부에서 벌어지는 사재(斜材, 비스듬한 부재) 형태로 독특하며 다른 일주문 건축에서 보기 힘들다.

ㅇ 창방은 주기둥 사이에 창방을 두는 ‘曰’자형으로 이단배열형이다. 보방향주심창방과 출창방의 결구부분은 달동자(창방 모서리에 달린 짧은 기둥)가 끼워져 있는데 달동자 밑면을 국화문으로 조각하여 놓았다.

ㅇ 「달성 용연사 자운문」은 상부구조는 화려하면서도 하부구조는 굵은 기둥과 함께 보조부재를 적극 활용하여 구조적으로도 매우 안정적인 건물로 예술적 가치가 있다.

ㅇ 다른 일주문의 경우는 발견된 창건 기문이나 상량문이 거의 없는 편이나 용연사 자운문의 경우 창건과 중수에 관련된 모든 기록들이 비교적 자세하고 정확하게 남아있어 이 건물에 대한 근거가 명확하고, 또 일주문의 형태가 일제강점기 사진자료와 비교할 때 크게 변하지 않아 가치가 크다.

□ 종 별 : 보물

□ 문화재명 : 순천 송광사 일주문(順天 松廣寺 一柱門)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13

ㅇ 구조/규격 : 단칸 맞배지붕/ 일주문식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

ㅇ 소유자(관리단체) :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

ㅇ 지정면적 : 44.32㎡

□ 지정사유

ㅇ 「순천 송광사 일주문」의 정확한 건립은 확인되지 않으나 ‘조계산송광사사고(曹溪山松廣寺史庫)’등에 의하면 1802년(순조 2) 일주문이 중창되고, 1842년(헌종 8) 송광사의 큰 화재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될 때에도 일주문은 피해를 면했다는 기록을 통해 1802년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886년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순천조계산송광사사적’에 포함된 송광사 배치도와 염재 송태회(念齋 宋泰會, 1872~1942)의 ‘송광사지전도’(1915)에서도 그 위치와 역할을 확인할 수 있다.

ㅇ 「순천 송광사 일주문」에는 정면에 ‘조계산대승선종송광사(曹溪山大乘禪宗松廣寺)’라는 현판이 세로로 쓰여 걸렸으며, 현판의 뒤쪽에 건륭17년이라는 묵서가 있어 1752년에 현판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내부에는‘승보종찰조계총림(僧寶宗刹曹溪叢林)’이라는 현판이 가로로 길게 달렸다. 또 일주문의 ‘사중창기(四重創記)’ 등에는 조계문(曹溪門)이라는 표현도 보인다.

ㅇ 「순천 송광사 일주문」은 정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겹처마 지붕이다. 맞배지붕 측면에 풍판은 하단을 직선형으로 처리하여 측면 공포가 잘 드러나게 했으며, 공포는 정면 평방에 5개 공포, 전체 12개 공포의 다포식 구조이다. 1m 정도의 단 위에 커다란 자연석 초석을 놓고 원형 기둥을 일렬로 세워 상부가구를 형성하였으며, 계단 소맷돌에는 구슬 목걸이가 걸린 석수(石獸)가 조각되어 있다.

ㅇ 기둥 형태는 주기둥 전후로 팔각형의 보조기둥을 세운 보조기둥형이다. 주기둥 안쪽 상단에 용두를 두었는데 조선 후기에 자주 보이는 장엄이다. 창방(기둥머리에 가로로 맞추는 목재) 전체 배치형식은 주기둥 사이에 창방이 없는‘口’자형이다. 주기둥 옆에는 흙과 돌을 사용하여 쌓은 짧은 담장이 설치되어 있다.

ㅇ 기둥 양쪽에 토석담장과 연결된다거나, 보조기둥을 둔 점, 기둥 안쪽에 용두조각을 장엄한 점, 일주문 전면 계단 소맷돌에 동물상을 두었다는 점 등은 전라남도의 지역적인 특성을 보여준다.

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