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여수 거문도 근대역사문화공간」, 「민영환 유서(명함)」를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하였다.
* 근대역사문화공간: 근대 시기에 형성된 거리, 마을, 경관 등 역사문화자원이 집적된 지역
이번에 등록 예고하는 「여수 거문도 근대역사문화공간」은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에 소재한 우리나라 근현대시기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등록 예고된 구역(26,610㎡) 내에는 해방 이후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었던 모습을 볼 수 있는 ‘여수 거문도 구 삼산면 의사당’과 19세기 말 이후 동아시아 지역의 근대산업유산으로서 상하이와 거문도를 연결하는 ‘여수 거문도 해저통신시설’을 비롯하여 거문도사건 등 다양한 역사와 어촌마을의 근대생활사를 간직한 상징적인 근대문화유산들이 곳곳에 분포되어 있어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보존·활용할 가치가 높다.
* 거문도사건: 1885년 영국이 러시아의 조선 진출을 견제하기 위해 거문도를 불법 점령한 사건
「민영환 유서(명함)」는 대한제국의 외교관이며 독립운동가인 충정공 민영환(1861∼1905)이 을사늑약에 반대하며 순절할 당시 2천만 동포들에게 각성을 촉구하는 유서가 적힌 명함이다. ‘결고(訣告) 아 대한제국 이천만 동포’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유서가 명함의 앞면과 뒷면에 연필로 빼곡하게 적혀 있으며, 명함은 봉투에 넣은 채로 유족이 소장하고 있다가 1958년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기증되었다. 자결 순국한 민충정공의 정신을 후세에게 알릴 수 있는 뛰어난 사료적·문화유산적 가치를 지녔기에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해 보존·관리할 필요가 있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등록 예고한 「여수 거문도 근대역사문화공간」과 「민영환 유서(명함)」에 대하여 30일의 예고기간 동안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또한,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의 근현대유산을 지속적으로 발굴·등록하는 적극행정을 추진해 나갈 것이다.
□ 명 칭 : 여수 거문도 근대역사문화공간
□ 종 별 : 국가등록문화유산
□ 소 재 지 :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 35번지 등 일원
□ 등록 예고 대상 : 여수 거문도 근대역사문화공간(26,610㎡/105필지)
□ 등록 예고 사유
「여수 거문도 근대역사문화공간」은 우리나라 근현대시기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 1885년 영국군의 거문도 점령 사건 이후 각 시기별 항만시설, 군사시설, 수산업관련 시설 등 역사적 흔적이 남아 있으며, 각 시기를 대표하는 다양한 근대문화유산들이 곳곳에 분포하고 있어 근대역사문화공간인 면 단위로 보존 및 활용 가치가 높다.
ㅇ 여수 거문도 구 삼산면 의사당
- 해방 이후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었던 도서지역 의회 의사당으로 사용된 건물로 현존하는 사례가 드물며, 특히 지역의 재료를 사용하여 건립한 건축물로 근대기 도서지역의 건축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어 등록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ㅇ 여수 거문도 해저통신시설
- 19세기 말 이후 동아시아 지역의 근대산업유산으로서 상하이와 거문도를 연결하는 해저케이블로 관련 사례와 그 흔적이 많지 않으며, 영국군의 불법점령 사건과 연관된 흔적의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남아 있는 장소성에 의미가 큰 유산으로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할만한 가치가 있다.
□ 명 칭 : 민영환 유서(명함)
□ 종 별 : 국가등록문화유산
□ 제작연대 : 1905년
□ 수 량 : 1건 2점(명함 1점, 봉투 1점)
□ 규 격 : 명함 가로 6cm 세로 9.2cm, 봉투 가로 8cm 세로 10.5cm
□ 소 유 자 : 고려대학교박물관
□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로 145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
□ 등록 예고 사유
「민영환 유서(명함)」은 대한제국의 외교관이며 독립운동가인 충정공 민영환(1861∼1905년)이 을사늑약에 반대하며 순절할 당시 2천만 동포들에게 각성을 촉구하는 유서가 적힌 명함이다. 명함에 쓴 「결고(訣告) 아 대한제국 이천만 동포」 유서는, 명함의 앞면과 뒷면에 연필로 빼곡하게 적혀 있으며 봉투에 넣어져 유족이 소장하고 있다가 1958년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기증되었다. 「민영환 유서(명함)」은 자결 순국한 민충정공의 정신을 후세들에게 알릴 수 있는 사료적 및 문화유산적 가치를 지녔다.
□ 원문 및 번역문
ㅇ (원문)
“嗚呼, 國恥民辱, 乃至於此, 我人民, 行將殄滅於, 生存競爭之中矣, 夫要生 者必死, 期死者得生, 諸公豈不諒只, 泳煥徒以一死仰報, 皇恩, 以謝我二千萬同胞兄弟, 泳煥死而不死, 期助諸君於九泉之下, 幸我同胞兄弟, 千萬倍加於奮勵, 堅乃志氣, 勉其學問, 結心戮力, 復我自由獨立, 則死者當喜笑於冥冥之中矣, 嗚呼, 勿少失望, 訣告我大韓帝國二千萬同胞”
ㅇ (번역문)
“오호! 나라의 치욕과 백성의 욕됨이 이에 이르렀다. 우리 인민은 장차 생존 경쟁에서 모두 죽어서 사라질 것이다. 대개 살기를 바라는 자는 반드시 죽고, 죽기를 각오한 자는 도리어 살 것이니 여러분은 어찌 이것을 알지 못하는가. 영환은 한번 죽음으로써 황은(皇恩)에 보답하고, 우리 2천만 동포 형제에게 사죄한다. 그러나 영환은 죽어도 죽지 않고, 지하에서라도 여러분을 기어이 도울 것이다. 동포 형제들은 천만 배나 마음과 기운을 더하여 지기(志氣)를 굳게 하고, 학문에 힘쓰며, 한마음으로 서로 돕고 힘을 모아 우리의 자유 독립을 회복하라. 그러면 죽어서라도 마땅히 저세상에서 기뻐 웃으리라. 오호! 조금도 실망하지 말지어다. 대한제국 2천만 동포에게 영결을 고하노라.”
ㅇ 민영환은 자결 당시 국민, 재경외국사절, 황제에게 올리는 유서를 작성하였는데 자결 다음날인 1905년 12월 1일 大韓每日申報(국한문)에 ‘殉國 閔泳煥氏衣衿中에 搜出 各公舘에 所寄書와 警告韓國人民 遺書全文이 如左하니’라는 기사와 함께 국민 각성을 요망하는 ‘警告韓國人民遺書’, 외국 사절에게 일본의 침략을 바로 보고 한국을 구해달라고 요청하는 ‘各舘舘寄書’가 수록되었음
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