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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늑약 반대 의지 담긴 「민영환 유서(명함)」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 19세기 후반 사회상 등 45년간의 기록 「홍재일기」, 노동자의 삶의 흔적 담긴 「부평 미쓰비시 줄사택」 등록 예고

노촌魯村 2024. 6. 13. 16:52

국가유산청(청장 최응천)은 지난 5월 17일 출범 이후 첫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민영환 유서(명함)」를 등록하고,「홍재일기」「부평 미쓰비시 줄사택」을 등록 예고하였다.

이번에 등록된민영환 유서(명함)대한제국의 외교관이며 독립운동가인 충정공 민영환(18611905)이 을사늑약에 반대하며 순절할 당시 2천만 동포들에게 각성을 촉구하는 유서가 적힌 명함이다. 민영환의 옷깃 속에서 발견되었으며 마지막에 결고(訣告) () 대한제국(大韓帝國) 이천만(二千萬) 동포(同抱)라고 적혀 있어 동포들에게 남긴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유서가 적힌 명함은 봉투에 넣은 채로 유족이 소장하고 있다가 1958년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기증되었다. 자결 순국 당시의 긴박한 상황과 민충정공의 정신을 후세에게 알릴 수 있는 사료적·문화유산적 가치가 매우 높은 유산이다.

등록 예고된 「홍재일기」는 전북 부안군의 유생 기행현(奇幸鉉)이 23세(1866년)부터 68세(1911년)까지 약 45년간 작성한 일기로 총 7권(책)이며, 1책의 제목은‘도해재일기(道海齋日記)’, 2책부터 7책까지의 제목은‘홍재일기(鴻齋日記)’라고 되어 있다.

홍재일기는 기행현의 후손이 보관하고 있으며, 일기에는 그동안 밝혀진 바 없었던 동학농민혁명기 백산대회의 일자가 1894년 음력 3월 26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1866년부터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발발하기 전까지 약 30년간의 물가변동, 가뭄, 세금 등과 관련된 기록과 함께,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부안을 중심으로 당시 지역사회의 변화상과 역사적 사건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 백산대회: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을 알린 대규모 군중집회

「부평 미쓰비시 줄사택」은 일제강점기 미쓰비시(三菱) 제강에 동원된 한국인 노동자들이 합숙생활을 하였던 곳으로, 이번에 등록 예고된 범위는 인천광역시 부평구 소재의 1,329㎡에 해당하는 34필지이다. 연립주택과 같이 여러 호의 집들이 줄지어 있어 속칭 ‘줄사택’으로 불려왔으며, 광복 후에도 도시 노동자들을 비롯한 다양한 계층의 주거공간으로 사용되며 삶의 흔적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등 역사와 주거사(住居史)적 측면에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국가유산청은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신규 등록한 민영환 유서(명함) 등록 예고 「홍재일기」, 「부평 미쓰비시 줄사택」을 해당 지자체, 소유자(관리자)와 협력하여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해 나갈 것이며,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의 근현대유산을 지속적으로 발굴·등록하는 적극행정을 이어갈 것이다.

□ 명 칭 : 민영환 유서(명함)

□ 종 별 : 국가등록문화유산

□ 제작연대 : 1905년

□ 수 량 : 1건 2점(명함 1점, 봉투 1점)

□ 규 격 : 명함 가로 6cm 세로 9.2cm, 봉투 가로 8cm 세로 10.5cm

□ 소 유 자 : 고려대학교박물관

□ 소 재 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로 145 고려대학교 안암캠퍼스

□ 등록 사유

「민영환 유서(명함)」은 대한제국의 외교관이며 독립운동가인 충정공 민영환(1861∼1905년)이 을사늑약에 반대하며 순절할 당시 2천만 동포들에게 각성을 촉구하는 유서가 적힌 명함이다. 명함에 쓴 「결고(訣告) 아 대한제국 이천만 동포」 유서는 명함의 앞면과 뒷면에 연필로 빼곡하게 적혀 있으며 봉투에 넣어져 유족이 소장하고 있다가 1958년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기증되었다. 「민영환 유서(명함)」은 유족이 소장한 전래가 명확하고 상태가 양호하며 내용에 있어서도 자결 순국 당시의 긴박한 상황과 민충정공의 정신을 후세들에게 알릴 수 있는 사료적 및 문화유산적 가치가 높다.

□ 원문 및 번역문

ㅇ (원문)

“嗚呼, 國恥民辱, 乃至於此, 我人民, 行將殄滅於, 生存競爭之中矣, 夫要生 者必死, 期死者得生, 諸公豈不諒只, 泳煥徒以一死仰報, 皇恩, 以謝我二千萬同胞兄弟, 泳煥死而不死, 期助諸君於九泉之下, 幸我同胞兄弟, 千萬倍加於奮勵, 堅乃志氣, 勉其學問, 結心戮力, 復我自由獨立, 則死者當喜笑於冥冥之中矣, 嗚呼, 勿少失望, 訣告我大韓帝國二千萬同胞”

ㅇ (번역문)

“오호! 나라의 치욕과 백성의 욕됨이 이에 이르렀다. 우리 인민은 장차 생존 경쟁에서 모두 죽어서 사라질 것이다. 대개 살기를 바라는 자는 반드시 죽고, 죽기를 각오한 자는 도리어 살 것이니 여러분은 어찌 이것을 알지 못하는가. 영환은 한번 죽음으로써 황은(皇恩)에 보답하고, 우리 2천만 동포 형제에게 사죄한다. 그러나 영환은 죽어도 죽지 않고, 지하에서라도 여러분을 기어이 도울 것이다. 동포 형제들은 천만 배나 마음과 기운을 더하여 지기(志氣)를 굳게 하고, 학문에 힘쓰며, 한마음으로 서로 돕고 힘을 모아 우리의 자유 독립을 회복하라. 그러면 죽어서라도 마땅히 저세상에서 기뻐 웃으리라. 오호! 조금도 실망하지 말지어다. 대한제국 2천만 동포에게 영결을 고하노라.”

ㅇ 민영환은 자결 당시 국민, 재경외국사절, 황제에게 올리는 유서를 작성하였는데 자결 다음날인 1905년 12월 1일 大韓每日申報(국한문)에 ‘殉國 閔泳煥氏衣衿中에 搜出 各公舘에 所寄書와 警告韓國人民 遺書全文이 如左하니’라는 기사와 함께 국민 각성을 요망하는 ‘警告韓國人民遺書’, 외국 사절에게 일본의 침략을 바로 보고 한국을 구해달라고 요청하는 ‘各舘舘寄書’가 수록되었음

□ 명 칭 : 홍재일기

□ 종 별 : 국가등록문화유산

□ 제작연대 : 1866~1911년

□ 수 량 : 7책

□ 규 격 : 22.0 × 19.5㎝ 등

□ 소 유 자 : 기곤

□ 소 재 지 :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입암면 정읍남로 781-8(대흥리 324)

□ 등록 사유

「홍재일기」는 전북 부안군 유생 기행현(奇幸鉉)이 23세(1866년)부터 68세(1911년)까지 약 45년간 작성한 일기로 총 7책(1,099쪽, 약 425,552자)이며, 1책의 제목은 ‘도해재일기(道海齋日記)’, 2책부터 7책까지의 제목은 ‘홍재일기(鴻齋日記)’라고 되어 있다.

홍재일기는 기행현의 후손이 보관하고 있으며, 일기 내용은 동학농민혁명기 백산대회 일자를 1894년 음력 3월 26일로 특정하였고, 1866년부터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발발하기 전까지의 약 30년간의 물가변동, 가뭄, 세금 관련 내용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부안을 중심으로 당시 지역사회의 변화상과 역사적 사건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 명 칭 : 부평 미쓰비시 줄사택

□ 종 별 : 국가등록문화유산

□ 제작연대 : 1939년

□ 수 량 : 1,329.00㎡

□ 규 격 : 34필지(760-285∼316, -762, -1158)

□ 소 유 자 : 인천광역시 부평구

□ 소 재 지 :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대로 168

□ 등록 사유

부평 미쓰비시 줄사택은 일제강점기 미쓰비시(三菱) 제강에 동원된 한국인 노동자들이 합숙생활을 하였던 곳으로, 연립주택과 같이 여러 호의 집들이 줄지어 있어 속칭 줄사택으로 불려왔으며, 광복 후에도 도시 노동자들을 비롯한 다양한 계층의 주거공간으로 사용되어 오는 과정에서 삶의 흔적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등 역사(歷史) 및 주거사(住居史)적 측면에서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서의 등록 가치를 인정받았다.

토지대장,등기부등본 목록
일련
번호
소재지 지번 지목 면적() 소유자
공부 편입
34필지   1,329 1,329  
1 부평구 부평동 760-285 대지 20 20 부평구청
2 부평구 부평동 760-286 대지 30 30 부평구청
3 부평구 부평동 760-287 대지 29 29 부평구청
4 부평구 부평동 760-288 대지 30 30 부평구청
5 부평구 부평동 760-289 대지 30 30 부평구청
6 부평구 부평동 760-290 대지 30 30 부평구청
7 부평구 부평동 760-291 대지 30 30 부평구청
8 부평구 부평동 760-292 대지 30 30 부평구청
9 부평구 부평동 760-293 대지 30 30 부평구청
10 부평구 부평동 760-294 대지 30 30 부평구청
11 부평구 부평동 760-295 대지 55 55 부평구청
12 부평구 부평동 760-296 대지 44 44 부평구청
13 부평구 부평동 760-297 대지 30 30 부평구청
14 부평구 부평동 760-298 대지 29 29 부평구청
15 부평구 부평동 760-299 대지 31 31 부평구청
16 부평구 부평동 760-300 대지 55 55 부평구청
17 부평구 부평동 760-301 대지 8 8 부평구청
18 부평구 부평동 760-302 대지 33 33 부평구청
19 부평구 부평동 760-303 대지 30 30 부평구청
20 부평구 부평동 760-304 대지 33 33 부평구청
21 부평구 부평동 760-305 대지 30 30 부평구청
22 부평구 부평동 760-306 대지 33 33 부평구청
23 부평구 부평동 760-307 대지 30 30 부평구청
24 부평구 부평동 760-308 대지 33 33 부평구청
25 부평구 부평동 760-309 대지 30 30 부평구청
26 부평구 부평동 760-310 대지 33 33 부평구청
27 부평구 부평동 760-311 대지 69 69 부평구청
28 부평구 부평동 760-312 대지 76 76 부평구청
29 부평구 부평동 760-313 대지 53 53 부평구청
30 부평구 부평동 760-314 대지 53 53 부평구청
31 부평구 부평동 760-315 대지 50 50 부평구청
32 부평구 부평동 760-316 대지 105 105 부평구청
33 부평구 부평동 760-762 대지 19 19 부평구청
34 부평구 부평동 760-1158 대지
(실제도로)
78 78 부평구청

출처 : 국가유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