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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밖(국외)/중국

개봉부 1

노촌魯村 2006. 8. 22. 13:07

개봉부는 황하범람에 의해서 매몰되었다고 한다. 새로 지어진 개봉부 앞에 있는 호수 밑에 바로 개봉부가 있다고 했다.

 

 

개봉부 앞의 호수가에서 아침 운동하는 노인

  포청천(999~1062)은 중국 송나라(북송) 시대의 명판관으로서 실존 인물이다.이름은 증(拯),자(字)는 희인(希仁)이라 하였으며, 청렴결백하고 강직한 성품에 직언을 서슴지 않았고, 낮은 자들과 서민의 편에 서서 정의를 실천하는데 앞장섰던 당대에 보기 드문 청백리로 중국인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당시 북송은 범중엄(范仲淹)의 신정(新政)이 실패로 끝난 후 조정의 부패가 날로 극심해졌다고 한다. 특히 경성 개봉부(開封府)에서는 고관대작들과 황제 인척들의 부정부패가 더욱 심하였으며, 그들은 국법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
  가우(嘉祐) 원년(1056) 12월, 이러한 혼란한 정치적 상황하에서 인종(仁宗)은 개봉(開封)의 질서를 정돈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포증을 개봉부지부(開封府知府)에 임명하였다. 포증은 그 이듬해 3월에 정식으로 부임하여 가우 3년 6월까지 약 1년 4개월간 개봉부를 맡았다. 개봉부는 황실의 내외척과 권문세족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그전에는 그 누구도 그 직책을 맡고 권문세족들과 내통하여 뇌물을 받지 않은 적이 없었다.
  포증은 개봉부지부에 임명된 이후 이러한 부패를 척결하기로 결심하였다. 송대의 법규에 의하면, 누구든 관청에 고소를 할 때는 먼저 대리인에게 부탁하여 고소장을 쓴 다음 담당관리를 통하여 그것을 지부에게 전달해야 하였다. 이때 간악한 소송 대리인들은 사기를 쳐서 무고한 소송인들의 재물을 갈취하곤 하였다.
  포증은 그러한 법규를 철폐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백성이 고소를 할 때는 직접 개봉부 앞으로 와서 북을 치도록 하였다. 그리고 북소리가 울리면 개봉부에서는 정문을 열고 백성들이 직접 안으로 들어와서 고소를 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개봉부의 관리들은 더 이상 중간에서 농간을 부릴 수 없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 당대에 보기 드문 청백리로 널리 중국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으며 그에 대한 많은 일화가 전해 내려 오고 있다.
  원래 개봉부는 황하범람에 의해서 매몰되었다고 한다. 새로 지어진 개봉부 앞에 있는 호수 밑에 바로 개봉부가 있다고 했다. 

개봉부 앞의 거리

개봉부 앞의 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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