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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밖(국외)/중국

서안비림박물관

노촌魯村 2007. 8. 14. 11:19

 서안비림박물관 앞의 서안 성벽

 서안비림박물관 정문

 

  

 

 

 

  비림

비림(碑林)은 1087년 북송 철종 2년에 개성석경을 보존하기 위하여 세워졌다. 현재 한(漢)대부터 청(淸)대에 이르기까지 각 조대의 비석과 1천여 개의 묘비가 전시되어 있는데, 비석들이 모여 마치 '숲을 이룬 것 같다'하여 '비림(碑林)'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개성 석경은 114개의 석판에 유교경전 13경(655,025자)을 조각한 것으로, 여기에 당대 명필 구양순과 안진경, 이양수 등의 친필 석각과 조철, 소식, 조맹부 등 명사들의 진적비등이 집중 되어 있다. 비림은 중국 고대 서예 예술의 보고이자 고대 문헌서적과 비석의 조각 도안 등 이 집대성되어 있는 곳으로, 대외 문화 교류의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 유적지이다. 섬서성 박물관 안에 있지만, 박물관보다 더 널리 알려져 있다. 

 비림 현판

'비림'이라고 쓰여진 현판에는 '碑'자에 점 하나가 없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설이 있다. 첫째, 현판은 청나라 때 아편을 싣고 온 영국의 배를 태워 아편전쟁(阿片戰爭)을 부른 임칙서(林則徐)가 쓴 것이다. 당시 임칙서는 아편전쟁이 화친으로 돌아서자 전쟁도발자로 몰려 신강위구르지역으로 유배되었다. 임칙서는 유배지에서 풀려나 돌아오는 길에 임칙서는 나머지 점 하나를 쓰겠다고 했으나 돌아오는 길에 병사하여 글자를 끝내 채우지 못했다는 설.  둘째, 서예에는 '碑'자의 위쪽의 획을  글씨의 균형상 쓰지 않는다는 설이 있다. 그 예로 비림 내부의 大秦景敎行中國(대진경교유행비)'流'자에도 한 획이 없고, '碑'자에도 한 획이 없다

 비림에서 제일 큰 비석 : 효경이 기록되어 있따함. 당 현종의 글씨

 

 

 

 비림 박물관  전시실

 

 

 

 

 

 대진경교유행중국비

(대영박물관에 복사 품이 있다함 : 大秦景敎行中國'流'자에도 한 획이 없고 '碑'자에도 한 획이 없다)

 

 

 

 

 

 

 

 

 

 

탁본하는 모습

 종이를 물로 비석에 붙치고 물기가 어느 정도 건조 될 때까지 기다림

 먹물로 탁본를 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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