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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남산자료실

용장골(절골) 약사여래상이 있는 절터

노촌魯村 2008. 1. 6. 14:55

 용장골(절골) 약사여래상

이곳은 용장계의 절골로 불리지는데 몇 단으로 되어있는 돌 축대로 보아 당시 웅장한 절터였음을 알 수 있다. 유물로는 법당 자리에 있는 약사여래상과 석탑의 일부가 남아 있다. 약사여래조상(높이 121cm)의 머리는 찾지 못했으나 몸체는 비교적 잘 남아있다. 가사는 양어깨에 걸친 통견이며 옷주름 얇고 아름다운데 왼손에는 약 그릇을 들었으며 오른손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1940년 조사 된 보고서에 의하면 이 불상 앞에 직사각형의 연화 대좌가 묻혀 있는데 복련 하대석 위에 직사각형의 중대석을 얹고 그 위에 앙련 대석을 올렸다. 중대석 4면에 새긴 힘찬 사천왕은 아직도 땅속에 묻혀 있고 탑재의 일부는 100m 아래에 있다. 당시 이 불상대좌 앞에서 소형 금동여래좌상(높이 3.2cm)은 지금 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40년 보고서의 약사여래상

1940년 보고서의 약사여래좌상의 실측도(실측 단위는 자(尺))

 

 약사여래상 뒷 모습

 머리가 떨어진 부분

 

 용장골(절골) 약사여래상이 있는 절터의 첫 축대

 약사여래상이 있는 금당 자리의 축대

 약사여래상이 있는 금당 자리의 축대

 약사여래상이 있는 금당 자리의 절터

 약사여래상이 있는 금당 자리의 절터(뒤 쪽에서 아래 쪽으로)

 약사여래상이 있는 금당 자리의 축대의 돌못

  약사여래상이 있는 금당 자리의 축대의 돌못

  약사여래상이 있는 금당 자리의 축대 아래에 있는 폐탑(옥개석)

지금은 옥개석 1매와 기단 일부를 계곡 안에서 볼 수 있을 뿐이며, 원래의 위치나 크기 등은 확실하지 않다. 하층 기단 전체 너비는 171cm이고, 상층 기단을 받치는 윗면의 너비는 112cm에 불과 하며, 옥개석 역시 매우 작고 탑신부와 접하는 하면의 너비는 50cm이고 상면의 너비는 45cm이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왜소한 3층탑의 일부라고 생각된다.(1940년 보고서에서)

 

 

약사여래상이 있는 금당 자리 축대에서 약 100m 아래 쪽에 있는 석탑의 기단부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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