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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명성황후생가

노촌魯村 2008. 12. 11. 17:42

 

 

 

 

     

     

 조선 고종황제의 비(妃) 명성황후가 태어나 황후로 책봉되던 16세까지 살던 집으로 숙종13년(1687년)에 건립 되었다 명성황후는 여흥부원군 민치록의 딸로 철종2년(1851년)에 태어나 고종의 비로 책봉된후 고종 32년(1895년) 을미사변으로 일본인에 의해 시해될 때까지 개화의 소용돌이 속에서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쳤다
이 집의 건립 당시에는 행랑채 사랑채가 있었으나 없어졌고 현재 남아 있는 안채는 1975~1976에 중수한 것이다. 

 명성황후기념관

 명성황후순국숭모비

 

 

 

 

 

 

 

 

 

 

 

 

 조선 제26대 고종 황제의 비로 뛰어난  외교력으로 자주성을 지키면서 개방과 개혁 정책을 추진하다 1895년 양력 10월8일 새벽 을미사변으로 일본인들에 의해 시해당하여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쳤던 명성황후가 출생하여 8세까지 살던 집이다. 1687년 (숙종 13년) 인현왕후의 아버지인  민유중의  묘막으로  건립되었는데 당시 건물로 남아있는 것은 안채 뿐이었으나, 1995년에 행랑채와 사랑채, 별당채 등이 복원됨으로써 면모가 일신되었다.

 

 안채

 부엌

 

 

 권오창화백이 그린 명성황후 진영

 곳간

 별당

 

 명성황후탄강구리비

 

명성황후탄강구리비 (明成皇后誕降舊里碑.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1호.경기 여주군 여주읍 능현리 250-1 )

명성황후 민씨의 생가에 남아 있는 비로, 비가 서있는 이 자리는 어렸을적 그녀의 공부방이 있더 터라고 한다.
명성황후는 조선 철종 2년(1851)에 태어나, 고종 3년(1866)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그후 조선말의 어지러운 격동기를 보내다, 고종 32년(1895) 일본 자객에 의해 시해되면서 파란만장한 삶을 마쳤다. 광무 1년(1897) 조선의 국호를 ‘대한제국’이라 선포할 때, 명성황후로 추봉되었다.
비는 반듯한 사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비의 앞면에는 ‘명성황후탄강구리(明成皇后誕降舊里,명성황후가 태어난 옛마을)’라는 비의 명칭을 새겼고, 뒷면에는 ‘광무팔년갑진오월일배음경서(光武八年甲辰五月日拜飮敬書,광무 8년 갑진오월 어느날 엎드려 눈물을 머금고 공경히 쓰다)’라 새겨놓았다. 글씨를 쓴 이는 알 수 없으나 황태자 시절의 순종이 썼을 것으로 추측된다.
1904년에 세운 것으로, 세울 당시에는 생가가 제법 규모를 갖추고 있었다 하나, 현재는 일부만 남아있다. 비를 보호하고 있는 비각은 많이 퇴색되고 낡아서, 1970년도에 새로이 보수하였다. (문화재청 자료)

 민유중 신도비

 

 

 

감고당(위의 사진 클릭하시면 원본 크기의 사진이 보입니다.)

 감고당

 

 

 

 사랑채

 

 사랑채 내부

 행랑채

안채

 부엌

 

 안채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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