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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망우당공원

노촌魯村 2009. 7. 3. 23:30

 

영남제일관(위의 사진 클릭하시면 원본 사진이 ...) 

영남제일관은 대구읍성 4개 성문중 하나로 1590년(선조 23)에 축조된 토성으로, 임진왜란 때 허물어진후 1736년(영조 12)에 석성으로 재건됐다가 1906년 대구읍성이 철거될 당시 성문들도 함께 철거됐다. 이후 대구 상징물 건립의 필요성에 따라 1980년 망우당공원에 중건됐다.

  • 우리민족은 고래(古來)로 구릉과 산성을 방수(防守) 의 요충으로 중시하여 각종 성(城)을 쌓았으나 평지에 성을 축조하는 것은 드물었다. 지방행정관서가 있는 곳의 평지에 축성된 대구 읍성(邑城)은 1590년(선조23년)에 처음 만들 때는 흙으로 쌓은 토성(土城)이었으 나, 임진왜란 때 허물어진 뒤 1736년(영조 12)에 돌로 다시 쌓아 석성(石城)을 만들었다. 성에는 동서남북에 4개의 정문을 두었는데, 동문은 진동문(鎭東門), 서문은 달서문(達西門), 남문은 영남제일관(嶺南第一關), 북문은 공북문(拱北門)이라 하였다. 1906년 읍성이 철거될 때 성문들도 함께 철거되었다. 현재의 영남제일관은 1980년에 그 자리를 옮겨 새로 세웠으나 성루(城樓)의 위치·규모·품격 면에서 원형과 동떨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지금은 대구제일의 향토상징 관문으로서 금호강과 함께 대구시민들이 대자연의 운치를 마음껏 즐기는 곳이다.
  • 망우당공원에 들어서면 하얀 성벽 위로 번듯한 누각 하나가 맨먼저 눈에 띈다. 바로 영남제일관이다. 영남제일관은 조선시대에 축조된 대구읍성의 남문으로서, 일제시대 때 철거된 것을 1980년에 옛모습을 찾아 이곳에 중건해 놓았다.

     

     

     

     

     

     

     

     영남제일관 현판

     낙서루 현판

     

     

     

     대구부수성비(大邱府修城碑 시도유형문화재 제5호 (수성구) )

    조선 고종 때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해 온 김세호가 대구부성을 수리한 후 그 기념으로 세운 비이다. 대구부성은 영조 때 경상관찰사 민응수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는데 그 후 성이 훼손되어도 제대로 보수가 이루어지지 않던 것을 김세호가 수리한 것이다. 비는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올린 모습이다. 비문에는 공사에 관한 내용과, 유공자에게 상을 내린 일이 적혀 있다. 고종 6년(1869)에 세운 비로, 관찰사 김세호가 직접 비문을 짓고, 당시 공사 책임관이었던 최석로가 글씨를 썼다. 광무 10년(1906) 대구부성이 헐리면서 갈 곳을 잃었다가 1932년 대구향교 경내로 옮겨 놓았고, 1980년 영남 제1관문을 고쳐 세우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다(출처 : 문화재청)

     

     영영축성비(嶺營築城碑 시도유형문화재 제4호 (수성구) )

    임진왜란 때 허물어진 대구토성을 돌로 다시 쌓은 후 이를 기념하고자 세운 비이다. 비는 직사각형으로, 바닥돌 위에 비몸을 세운 간단한 모습이다. 비문에 의하면 성의 둘레는 2,145보(步)이며, 네 개의 문을 만들고 성을 지키기 위한 군량, 전포 등을 갖춘 창고를 두었다. 석성의 공사기간은 6개월이며, 동원된 인원은 78,534명에 달한다. 성이 완성된 뒤에는 여러 장사들을 모아 활쏘기대회를 열어 상을 주었다 한다. 경상도 관찰사였던 민응수가 나라에 건의하여 영조 13년(1737) 대구 남문 밖에 세워두었으며, 민응수가 비문을 짓고, 백상휘가 글씨를 썼다. 광무 10년(1906)에 성은 헐리게 되었고, 비는 1932년 향교로 옮겨 보존되다가 1980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출처 :문화재청)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곽재우 장군은 전국 최초로 의병을 일으켰으며 신출귀몰한 전략을 펴 큰 공을 세웠다. 당시 장군은 붉은 복장에 백마를 탄 모습으로 전장에 나타나곤 해서 홍의장군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공원 내에는 말을 타고 장검을 찬 곽재우 장군의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동상 가까이에 망우당 기념관을 지어 장군의 유품을 보관해 두고 있다.

     

     

     

     

     

     임란호국영남충의단

     

     

     

     

     

     

     

     

     임란충의관

     

     

     

     

     

     

     

     

     

     

     

     

     

     

     

     

     

     

     

     

     

     

     

     

     

     

     

     

     

     

     

     

     

     

     

     

     

     

     

     

     

     

     동암 서상일 선생의 상

     

    등록문화재 제4호

    대구 효목동 조양회관:대구 동구 효동로2길 94 (효목동)

    대구독립운동의 대표적 유적지인 조양회관도 공원 내에 있다. 조양회관은 3.1운동 이후 일본의 식민지정책으로 회유되기 쉬운 민중을 깨우치고 민족혼을 심기 위해 청년들을 대상으로 민족의식을 일깨우던 공간으로 1922년 10월 서상일(제헌국회의원)이 중구 대신동에 건립한 것을 1984. 6. 9 망우당공원 내에 이전 복원하였습니다. 붉은 벽돌로 지은 2층 건물로`조양'이란 이름에는 `조선의 빛'이라는 뜻이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