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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영천

영천 치일리 인종태실(永川治日里仁宗胎室)

노촌魯村 2009. 12. 7. 20:37

 

 운부암. 중암암. 은해사 삼거리에 있는 이정표 

 은해사.운부암.중암암 삼거리(신일지 못뚝. 인종태실 이정표(안내판))에서 인종태실 가는 길

(다음 지도 스카이뷰에서 캡쳐)

 인종태실 올라가는 길

 

영천치일리인종태실(永川治日里仁宗胎室.시도유형문화재 제350호 (영천시).경북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산24 )  

인종태실은 중종 16년(1521)에 조성되었다. 이후 인종이 죽고난 후 명종1년에 가봉(加封) 공사가 있었고 숙종 37년(1711)에는 수개(修改)가 있었다. 1928년에 일제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태실의 관리가 어렵다는 명목을 내세워, 54기의 태실을 경기도의 서삼릉으로 이봉하였는데, 이때 인종태실도 태호(胎壺)를 경기도 서삼릉으로 이봉하였다. 이때 옮겨진 것은 태항아리, 지석 1점 등이다. 현재 남아있는 석물은 귀롱대와 가봉비를 비롯한 석물들이 완형 혹은 파손되 상태로 남아있다. 인종태실은 가봉된 다른 어떤 태실보다 그 규모가 크고 각종 석조물의 장식이 화려하며 웅장하다. 또한 조성연대가 분명하여 태실 조성양식과 조각기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문화재청 자료) 

인종(仁宗, 1515-1545. 재위1544 ~1545)은 조선의 제12대 임금. 중종의 장남으로 어머니는 영돈녕부사 윤여필(尹汝弼)의 딸 장경왕후(章敬王后)이며, 비는 첨지중추부사 박용(朴墉)의 딸인 인성왕후(仁聖王后)이다

 

 

 

인종의 태실은 산중돌혈(突穴)의 전형적인 형태로 조선의 왕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로 조성됐다

 

 

 

 

 

 

 

 

 

 

 

 복원전 귀부 모습(문화재청 사진)

  복원전 귀부 모습(문화재청 사진) 

 복원전 이수 모습(문화재청 사진)

 

 

 

 

 

 

 

    복원 후 남은 석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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