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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이공제비 및 군수이후범선영세불망비(李公제碑및郡守李侯範善永世不忘碑)

노촌魯村 2009. 12. 16. 18:07

 

 이서공원

 

이공제비및군수이후범선영세불망비(李公제碑및郡守李侯範善永世不忘碑.시도유형문화재 제23호 (수성구). 대구 수성구  상동 182. 이서공원 내)  

  • 규 모 : 건물(비각1칸 9.72㎡), 비석3기(이공제비2, 이후범선영세불망비1기)
  • 이공제비는 이서(李 漵) 선생의 치적을 기리기 위해 대구 주민들이 세운 송덕비(頌德碑)²이다. 대구분지의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 금호강에 유입하는 신천은 홍수때만 되면 범람하여 피해가 극심하였다. 그러나 1776년(조선 정조 원년) 이서가 대구판관으로 부임하여 주민의 피해를 염려해 정조2년(1778년) 주민 부담없이 사재를 털어 10여리에 걸쳐 제방을 축조하여 홍수의 피해를 막았다. 이에 주민들은 이판관이 쌓은 제방을 중국 송나라의 명학이던 소식이 항주자사로 있을 때 축조한 제방을 “소공제”라고 명명한 것을 본떠서 “이후언(李侯堰) 또는 이공제(李公堤)”라 칭하였다. 1797년(정조 21)에 이공제비를 세우고 매년 1월 14일에 향사를 올렸다. 중앙의 비는 1986년 신천대로 공사 때 수성교 서편 지하에서 발견된 것으로 1808년(순조 8)에 세운 것으로, 1797년 세운 비가 초라해 이서 선생의 업적을 영구히 기리고자 다시 비를 세운다고 적혀 있다. 이공제비와 나란히 오른쪽에 서 있는 군수이후범선영세불망비는 1899년에 세운 것으로 1898년(광무2)에 큰 홍수가 있어 이공제 하류 부분이 훼손되어 대구 읍성이 위험하게 되자, 군수 이범선(李範善)이 주민 부담없이 국고로 수천금의 비용을 들여 단시일에 공사를 완공하자 주민들은 그의 공적을 보답하고자 비석을 세웠다. 이 비석들은 지방수령으로 재직 당시 치수에 힘쓴 업적을 기려 백성들이 세웠다. 이 비석들은 중구 대봉동 655번지 신천대로변에 있었으나 주변 수목으로 인해 시계(視界)가 불량하여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주변 공간이 협소하여 2000.9.6 역사의 교육장으로 활용코자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 주(註)
    1) 이서(李 漵) : 1732~1794.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계호(季浩). 공은 동악공(휘 안눌)의 5대손이다. 1759년(영조35년) 문음(門蔭)으로 입사하여 1776년부터 2년6개월 동안 대구 판관으로 있으면서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들었다. 가장 큰 업적은 신천 범람으로 인한 피해를 제방을 축조하여 막은 치수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2) 송덕비(頌德碑) : 관직에 있으면서 은혜와 교화를 끼쳤을때 백성들이 공덕을 칭송하여 만드는 비(碑). 일명 선정비(善政碑), 유애비(遺愛碑)라고도 한다 (대구 수성구청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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