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음의 눈으로 보고자, 눈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기록하고자합니다.

대구

동화사 비로암(桐華寺毘盧庵)

노촌魯村 2010. 11. 3. 22:09

대구 동화사 비로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大邱 桐華寺 毘盧庵 石造毘盧遮那佛坐像.보물  제244호.대구 동구  도학동 30)

 

민애왕(재위 838∼839)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만든 동화사 비로암 3층석탑(보물 제247호)과 동시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1.29m의 불상이다. 둥근 얼굴은 풍만하고 눈·코·입이 작아지고 있으며, 미소가 사라지고 단아한 모습이다. 8세기 불상에 비해 어깨는 뚜렷하게 좁아졌으며, 가슴은 평평하고, 하체의 처리도 역시 둔화되었다. 이러한 위축되고 둔화된 표현은 9세기 중엽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불상양식이다. 손모양은 비로자나불이 일반적으로 취하고 있는 모습으로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싼 형태이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데, 규칙적으로 얇은 평행의 옷주름선이 있고, 아랫도리에 있는 U자형 무늬가 특이하다. 부처의 몸 전체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는 배(舟) 모양으로, 가장자리를 불꽃이 타오르는 모양으로 표현하였다. 광배의 꼭대기 부분에는 삼존불, 양쪽에는 8구의 작은 부처가 배치되어 있다. 대좌(臺座)와 광배(光背)를 갖추고 있으며 손상이 거의 없는 9세기에 유행하던 비로자나불상의 대표적인 예이다.(문화재청 자료)

비로자나불(石造 毘盧遮那佛 坐像)

보물 제244호 통일신라, 863년경 동화사 비로암 대적광전

비로자나불은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의 중심 그 자체이다. 우리나라 비로자나불의 가장 큰 특징은 지권인智拳印이라는 손 모양이다. 지권인은 왼손 집게손가락을 오른손으로 감싸는 형태이다.단아한 얼굴에는 근엄한 표정이 스며 있다. 법의法衣는 두 어깨를 감싼 통견식通肩式이며, 밀집된 옷 주름은 9세기 중엽에 나타나는 신라 불상의 특징이다. 배 모양의 광배[舟形光背]는 안에 원형의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따로 표현하였고, 삼존불과 8구의 작은 부처를 조각하였다. 대좌는 방형의 지대석에 8각의 대좌받침을 놓고 연꽃〔仰蓮, 覆蓮〕을 표현한 상․하대석을 올렸다. 상/하대석 사이의 중대석에는 7마리의 사자獅子와 구름무늬가 새겨졌다. 『화엄경華嚴經』에서는 비로자나불이 연꽃이 가득 찬 연화장세계의 사자좌 위에 앉아 있다고 묘사된다(동화사 자료)

동화사비로암삼층석탑(桐華寺毘盧庵三層石塔.보물  제247호.대구 동구  도학동 30)

 

동화사 서쪽 언덕에 자리잡은 비로암의 대적광전 앞뜰에 세워져 있는 3층석탑으로,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기단의 각 층에는 네 면마다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새겼다.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기 한 돌로 이루어져 있고,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본뜬 조각을 두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수가 층마다 4단이며, 처마는 곱게 뻗어 나가다가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과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차례로 올려져 있다. 각 기단 위에 괴임을 여러 개 둔다거나, 지붕돌 네 귀퉁이의 들린 정도가 크지 않은 점 등에서 통일신라 후기의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는 단정하고 아름다운 작품이다. 1966년 부처님의 사리를 담는 기구 일부를 도둑 맞았으나, 없어지지 않은 사리돌그릇에 통일신라 경문왕 3년(863)에 민애왕의 명복을 빌고자 이 탑을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문화재청 자료)

민애대왕 석탑 사리호(敏哀大王石塔舍利壺.보물  제741호.서울 중구  필동3가 26 동국대학교도서관)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보물 제247호) 내에서 발견된 통일신라시대의 사리 항아리이다. 사리를 탑에 보관하기 위해 사용된 이 항아리는 높이 8.3㎝, 아가리 지름 8.0㎝, 밑지름 8.5㎝이다. 현재는 크고 작은 4개의 조각으로 깨졌고, 뚜껑도 없어졌으며 몸통도 완전하지 않은 상태이다. 이와 같은 손상은 도굴 당시에 입은 피해로 보인다. 아가리가 넓고 어깨가 부풀어 있으며, 아랫부분이 좁은 항아리 모양으로 작고 아담하다. 이러한 형식은 법광사 삼층석탑, 취서사 삼층석탑에서 출토된 사리 항아리와 같은 것으로 9세기 중엽 신라에서 유행하던 양식이다. 항아리 표면 전체에 흑칠을 한 점이 특이하다. 어깨부분에는 꽃 구름무늬와 촘촘한 빗금 꽃무늬를 두 칸에 나누어 새겨 둘렀다. 몸통에는 가로, 세로로 칸을 내어 7자 38행의 글자를 음각하였다. 글 중에는 이 항아리가 신라 민애왕(재위 838∼839)을 위하여 건립된 석탑과 연관이 있으며,민애왕의 행적들이 꼼꼼하게 적혀있다. 또한 탑을 만든 시기가 경문왕 3년(863)임을 알 수 있게 하는 내용이 있다. (문화재청 자료)

 

 약사삼존불(동)

 아미타삼존불(서)

 석가삼존불(남)

비로자나삼존불(북)

 

'대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동지석묘군(上洞支石墓群)   (0) 2010.12.22
대구방짜유기박물관  (0) 2010.11.05
동화사 금당암(桐華寺金堂庵)  (0) 2010.11.03
충익공 곽재우장군 묘소  (0) 2010.09.04
대구 팔달동 유적  (0) 2010.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