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쌍계사(智異山雙磎寺.경상남도 기념물 제21호.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8)
신라 성덕왕 21년(722)에 지어진 쌍계사는 의상대사의 제자인 대비(大悲)와 삼법(三法)이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도을 닦은 곳이다. 처음에는 절 이름이 옥천사였으나, 신라 후기 정강왕 때 고쳐 지으면서 쌍계사로 바뀌었다. 지금의 절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벽암선사가 조선 인조 10년(1632)에 다시 지은 것이다. 현재 이곳에는 쌍계사진감선사대공탑비(국보 제47호), 쌍계사부도(보물 제380호), 쌍계사대웅전(보물 제500호), 쌍계사팔상전영산회상전(보물 제925호)과 일주문, 천왕상, 정상탑, 사천왕상 등 수많은 문화유산과 칠불암, 국사암, 불일암 등 부속암자가 있다. 지리산 쌍계사는 서부 경남일원의 사찰을 총람하는 조계종 25개 본사 중 하나이며, 우리나라 불교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므로 그 가치가 크다. (문화재청 자료)
東國花開洞
우리나라 화개동은
壺中別有天
항아리속 별천지라네
仙人推玉枕
선인이 옥베개를 밀치니
身世忽千年
몸과 세상이 어느새 천년일세
萬壑雷聲起
골짜기마다 물소리 우레 같고
千峯雨色新
봉우리마다 초목은 비에 새로워라
山僧忘歲月
산속 스님은 세월을 잊고서
惟記葉間春
나뭇잎으로만 봄을 기억하네
지봉유설(芝峯類說)에 실려 있는 고운(孤雲) 최치원 선생의
화개동천(花開洞天)을 노래한 시이다
쌍계사일주문(雙磎寺一柱門.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6호 )
지리산 기슭에 있는 쌍계사는 신라 성덕왕 23년(723)에 삼법이 처음 지었고, 임진왜란(1592)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인조 19년(1641)에 다시 지었다. 절의 입구에 세워져 있는 일주문은 속세를 떠나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이며, 항상 한마음을 가지고 수도하고 교화하라는 의미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양쪽에 기둥을 하나씩 세워 지붕을 받치고 있는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배치되어 있는 다포식이다. 앞면에는 3구씩·옆면에는 2구씩 배치하여, 처마가 매우 화려하며 공포로 꽉 차 있는 듯하다. 기둥 앞뒤에는 보조 기둥을 두어 지붕을 안전하게 지탱하고 있는데, 보조 기둥 머리 부분에는 연꽃무늬를 장식하였다. 화려한 다포계 후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일주문이다.(문화재청 자료)
쌍계사금강문(雙磎寺金剛門.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7호 )
금강문은 일주문 다음에 통과하는 문으로 천왕문과 함께 절에 들어오는 공간으로 불법을 수호하고, 속세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의미있는 장소이다. 이곳에서는 금강역사를 모시고 있는데 금강역사는 불교를 수호하고 악을 벌하는 천신으로 문의 왼쪽에는 부처님을 늘 모시는 ‘밀적금강’이 있고 오른쪽에는 ‘나라연금강’이 있다. 쌍계사 금강문은 신라 문성왕 2년에 진감국사가 지었고, 인조 19년(1641)에 벽암선사가 다시 지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1979에 수리한 것이다. 건축양식은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1층이다.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단순한 맞배지붕이다. 가운데 칸은 개방하여 통로로 사용하고, 양 끝 칸은 벽으로 막아서 금강역사를 모시고 있다. 문 앞에는 벽암스님이 쓴 ‘금강문’이란 현판이 있다. 쌍계사 금강문은 전체적으로 부재 크기가 다소 작아서 가냘프고, 약한 느낌을 주는 건물이다.(문화재청 자료)
쌍계사천왕문(雙磎寺天王門.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6호 )
쌍계사 천왕문은 숙종 30년(1704)에 박봉스님이 지었고 순조 25년(1825)에 고쳤으며, 현재의 건물은 고산스님이 1978년에 다시 수리한 것이다. 사천왕을 모시는 문으로 사천왕은 부처님께 의지하여 불법을 수호하고 수도하는 스님과 선량한 사람을 돕는 4명의 수호신이다. 동주를 다스리는 지국천왕, 서주의 광목천왕, 남주의 증장천왕, 북주를 다스리는 다문천왕이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가운데 칸은 개방해서 통로로 사용하고 있고, 양 옆칸은 벽으로 막은 후 사천왕상을 모시고 있다. 사천왕상은 나무로 만든 것으로 조각 솜씨가 뛰어나다. 천왕문은 금강문보다 충실하고 튼튼하며, 다소 격이 높지만 금강문과 거의 비슷한 건축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문화재청 자료)
하동쌍계사사천왕상(河東雙磎寺四天王像.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1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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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河東 雙磎寺 眞鑑禪師塔碑.국보 제47호)
최치원의 사산비문
신라 말기 학자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4개의 비문.
지리산(智異山)의 쌍계사진감선사대공탑비(雙溪寺眞鑑禪師大空塔碑), 만수산(萬壽山)의 성주사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 초월산(初月山)의 대숭복사비(大崇福寺碑), 희양산(曦陽山)의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碑) 등에 적힌 문장을 가리킨다. 소재지는 경상남도 하동군(河東郡) 화개면(花開面) 쌍계사, 충청남도 보령시(保寧市) 성주면(聖住面) 성주사터, 경상북도 경주시(慶州市) 외동읍(外東邑) 숭복사터, 문경시(聞慶市) 가은읍(加恩邑) 봉암사이다. 850년 입적한 진감선사의 일대기를 서술한 진감선사비문은 신라 정강왕(定康王)의 명을 받아 886년 찬술되었고 비는 887년 건립되었다. 888년 입적한 낭혜화상의 비문은 889년 찬술되었고 비는 890년 세워졌다. 신라 왕실과 관련된 숭복사의 건립과정을 밝힌 대숭복사비문은 888년 또는 889년 찬술되었고 비는 896년 세워졌다. 882년 입적한 지증대사의 생애를 서술한 지증대사비문은 893년 비문 찬술이 완성되었고 비는 924년 세워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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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돌에는 구슬을 두고 다투는 용의 모습이 힘차게 표현되어 있고, 앞면 중앙에는 ‘해동고진감선사비’라는 비의 명칭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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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쌍계사 대웅전(河東 雙磎寺 大雄殿.보물 제500호)
쌍계사는 통일신라 성덕왕 21년(722) 대비화상과 삼법화상이 세워 옥천사라 불렀다고 하며 정강왕(재위 886∼887)이 두 개의 계곡이 만나는 절 주변의 지형을 보고 쌍계사로 고쳤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절이 불에 탔던 것을 벽암대사가 인조 10년(1632) 다시 고쳐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절의 중심 법당으로 석가모니 불상을 모신 대웅전은 이 때에 다시 지은 건물로 짐작한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다. 이를 다포 양식이라 하는데 밖으로 뻗쳐 나온 재료들의 형태가 비교적 우아한 곡선과 오래된 양식을 보이고 있다. 가운데 3칸에는 4짝의 여닫이문과 기둥 사이에 공포를 2개씩 놓고 있으며, 양쪽 끝 칸은 2짝씩 문을 달아 공포를 1개씩 놓았다. 건물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천장 안쪽을 가린 우물천장으로 꾸몄고 불단 위로 지붕 모형의 닫집을 화려하게 만들어 놓았다. 전체적으로 기둥이 높아 건물의 규모가 크게 느껴지는데 조선시대 불교 목조 건축의 형태를 잘 보존하고 있어 중요한 연구 자료가 되고 있다. (문화재청 자료)
하동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河東 雙磎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및 四菩薩立像.보물 제1378호 )
하동 쌍계사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나무로 만든 삼세불좌상 중 아미타불을 제외한 석가모니불과 약사불, 그리고 일광·월광·관음·세지보살로 추정되는 네 보살입상이다. 중앙에 모셔져 있는 석가모니불은 본존불로서 삼불상 중 가장 크고 건장한 신체에 넓은 무릎을 하여 안정되어 보인다. 육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 동그스럼해진 머리는 이마 위쪽과 머리 꼭대기에 중앙계주(계珠)와 정상계주가 표현되어 있으며, 둥글넓적한 얼굴에는 근엄한 듯 온화한 미소가 엿보인다. 옷은 양어깨를 모두 덮고 있는 통견(通肩)형식으로 오른팔이 드러나도록 함으로써 17세기 전반 경 이후 불상들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옷 입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손 모양은 왼손을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을 무릎 아래로 내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는데, 실제 인물의 손처럼 표현되어 사실성이 돋보여 조성 화원의 뛰어난 조각 솜씨를 느끼게 한다. 정면을 향하여 본존불의 오른쪽에 모셔져 있는 약사불은 굽어보는 듯한 자세와 머리 모양, 얼굴 표정, 짧아진 목과 당당한 어깨, 넓은 무릎, 사실성 넘쳐나는 손의 표현, 밋밋한 듯 부피감이 있는 신체 등 본존불과 동일한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석가모니불에 비하여 크기가 다소 작아지고 아미타인(阿彌陀印)의 손 모양을 하고 있으며, 얼굴과 귀가 약간 길어지고 변화된 옷 입는 방식과 보다 복잡해진 옷주름 등만이 다를 뿐이다. 사보살입상은 약사불과 아미타불 좌·우에 서 있는 네 구의 보살입상으로 일광·월광보살상과 관음·세지보살상으로 추정된다. 네 구의 상 모두 배를 앞으로 약간 내민 듯한 S자 모양의 늘씬한 체구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으며, 귀걸이·목걸이·팔찌 등의 장식을 하였다. 약사불의 양 옆에 있는 일광·월광보살상은 보관 중앙에 해와 달 모양이 표현되어 있으며, 왼손을 어깨 위로 들고 오른손을 아래로 하여 연꽃가지를 들고 있다. 한편 아미타불의 양 옆에 있는 관음·세지보살상은 오른손을 어깨 위로 들고 왼손을 아래로 내렸는데, 각각 연꽃가지와 정병을 들고 있다. 양어깨를 모두 덮고 있는 천의 자락, 양 손·발 등의 조각 수법이 매우 자연스럽고 사실적이어서 석가모니불 및 약사불상과 함께 작품성이 뛰어나다. 불상 안에서 발견된 조성기에 의하면, 조선 인조 17년(1639)에 청헌(淸憲)비구를 비롯한 11명의 화승들에 의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쌍계사 목조삼세불좌상 및 사보살입상은 조선시대 17세기 전반 경의 불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문화재청 자료)
대웅전 천장
쌍계사명부전(雙磎寺冥府殿.)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3호)
쌍계사 명부전은 숙종 13년(1687)에 성안대사가 지었고, 숙종 36년(1710)에 신민대사가 수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건물이다. 앞면 5칸·옆면 2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명부전은 지장전, 업경전이라고도 한다.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10대 제왕을 모시고 있다. 지장보살이 강조될 때는 지장전이라 하고, 10대 제왕이 강조될 때는 명부전이라 한다. 명부전은 칠성각, 산신각처럼 한국절의 특유한 법당으로 한국불교의 토착화 과정을 나타내는 좋은 증거가 된다. (문화재청 자료)
쌍계사 금강계단
청학루(팔상전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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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정상탑전(六祖頂相塔殿.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5호 )
건물의 앞쪽에는 조선시대 명필인 추사 김정희가 쓴 현판이 걸려있다
건물의 앞쪽에는 조선시대 명필인 추사 김정희가 쓴 현판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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