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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청도

청도읍성(淸道邑城)

노촌魯村 2011. 6. 27.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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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문헌고에는 왜적의 침략에 대비해 동래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목에 놓인 읍성을 더 높이 쌓으라는 선조의 어명에 따라 착공 2년만인 1592년에 완성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읍성둘레는 1천570보(약 1천880여m), 높이 5자5척(약1.65m), 여첩(女堞)은 600자이며, 동·서·북 3문이 있다.

 

 청도읍성(淸道邑城.경상북도 기념물 제103호. 경북 청도군 화양읍 교촌리,동삼리,동천리)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을 말한다. 청도읍성은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지은 성으로, 산성과 평지성의 중간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읍지』의 기록에 따르면 성의 둘레는 1570보(1880m)이고, 높이는 5자 5촌(1.7m)이었다고 하나, 일제시대 때 읍성 철거정책에 따라 대부분이 헐리었고, 지금은 성벽의 바닥과 일부만이 남아있다. 성의 평면형은 사각형에 가까우며, 동·서·북쪽에 문터가 남아 있다. 청도읍성은 고려 때부터 있었으며, 당시에는 돌과 흙을 섞어 쌓은 것이었는데, 조선 선조 23년(1590)에 돌로 고쳐쌓아 선조 25년(1592)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문화재청 자료) 

             

 치(雉) : 성벽이 직각으로 꺾인 ‘ㄷ’모양.양쪽 사방을 두루 살필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북문(공북루)

읍성은 임진왜란때 성루가 모두 불탔으며, 서문의 누각인 무회루(撫懷樓)와 동문 봉일루(捧日樓)는 다시 재건됐지만 일제강점기에 소실됐다. 청도군의 읍성복원에 따라 북문인 공북루(拱北樓)만 복원됐다.

  북문(공북루) 앞의 옹성

북문은 항아리 모양의 옹성(甕城)인데 이는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내기 위해 고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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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1일 답사에서 본 청도 읍성 모습 

여담(여장, 女墻) : 성가퀴의 한가지이나 짧게 만들지 않고 한 구역 전체를 감쌀 수 있을 만큼 길게 축조한 담장처럼 생긴 구조. 주로 육축(陸築)의 문루(門樓) 둘레에 쌓는다.
평전(平塼)으로 맞담으로 쌓고 방전(方塼)으로 정리한 위에 개전(蓋塼)을 씌어 완성시키는 것이 보통이다.
벽 위에 둘러 쌓여진 담으로 활이나 조총들을 쏘기 위한 타구가 있다.

 

 

 

 

 

 

 

청도읍성 인근의 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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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처마에 보금자리를 틀고 새끼들에게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주는 후투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