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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청도

도주관(道州館).청도척화비(淸道斥和碑)

노촌魯村 2011. 6. 27.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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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주관(道州館.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2호.  경북 청도군 화양읍 서상리 15-10)

조선시대 청도군의 객사로, 청도군을 ‘도주’라고도 부른다. 객사 안에는 수령이 초하루와 보름에 임금을 상징하는 위패에 절하는 곳인 정청과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나 외국사신이 묵고 갈 수 있는 숙박시설로 되어있다. 1670년 경인 조선 현종 때 지어진 것으로 보이며, 정청은 화양면사무소로 사용되면서 바닥과 벽이 바뀌었다. 그러나 건물의 나머지는 옛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관아터에는 지방업무, 민사소송을 보던 동헌이 남아 있으며, 이 건물 앞에는 역대 군수들의 선한 정치를 기린 비가 서있다. 또한 고종(재위 1863∼1907) 때 대원군이 외세침략에 대해 거부하는 의지를 새긴 척화비도 있다. (문화재청 자료)

 

 

 

   

 

 고려시대 청도군의 지명을 딴 도주관(道州館)은 1543년 중창됐다. 가운데 건물인 정당은 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던 곳으로 지방수령이 초하루와 보름마다 배례하던 곳이다. 이 때문에 동헌보다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정당은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의 익공(翼工)집 양식인데 지붕을 따로 높게 올리고 기둥을 건물 폭에 비해 높게 만들어 고준한 느낌을 준다. 양쪽에는 정면 6칸, 측면 4칸의 좌우익실이다. 숙소로 쓰이던 곳이다. 철거됐던 좌익실이 2005년에 복원돼 도주관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도주관 마당에 있는 석불

도주관 마당에 있는 비석

 청도척화비(淸道斥和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09호. 경북 청도군 화양읍 서상리 15-10)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자는 것이니,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

비의 옆면에 다음 문구가 적혀 있다.

戒吾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 

우리의 만대자손에게 경고하노라.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우다.

척화비란 조선 고종 때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승리로 이끈 흥선대원군이 서양사람들을 배척하고, 그들의 침략을 국민에게 경고하고자 서울 및 전국의 중요한 도로변에 세우도록 한 비로, 이 비도 그 중의 하나이다. 긴 돌을 이어 붙인 네모난 구역안에 서 있는 비는 머릿돌은 얹지 않은 간결한 구조이다. 비문에는 “서양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곧 화친이니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곧 나라를 파는 것이다.”라는 내용을 적어 놓았다. 그 옆에도 작은 글씨를 새겼는데. 내용은 “자손만대에 경고한다. 병인년에 만들고 신미년에 세운다.”이다. 척화비는 고종 8년(1871)에 전국에 동시에 세운 것으로, 고종 19년(1882) 임오군란이 일어나고 대원군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납치된 후 세계 각 나라들과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대부분 철거되었으나, 땅에 묻혔으나 140년이 지난 지금 부산, 경남, 경북, 충북, 전남 등지에 20개 정도 남아 있다. 이처럼 몇 기의 비들이 그 속에 담긴 역사적인 의미를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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