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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포항

포항 보경사 원진국사비(浦項 寶鏡寺 圓眞國師碑)

노촌魯村 2011. 7. 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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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보경사 원진국사비(浦項 寶鏡寺 圓眞國師碑.보물 제252호. 경북 포항시 북구 송라면 중산리 622 보경사 )

고려시대에 제작된 원진국사비는 당초문양(唐草紋樣)이며, 비 상단귀점이 독특한 형식으로 되어 있다. 원진국사(1187~1221)의 속성(俗姓)은 신씨(申氏), 호(號)는 승형(承逈), 자(字)는 영회(永廻)이며, 13세인 1200년에 희양산(曦暘山) 봉암사(경북 문경시 가은읍 소재)의 동순(洞純)에게서 삭발하고 이듬해 금산사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명종의 후애(厚愛)를 받으며 전국명산을 유력(遊歷)하고 희종 4년(1208년) 금강산 유점사(楡岾寺)에 머물다가 강종(康宗) 3년에 삼중대사가 되고 고종 3년(1206)에 대선사(大禪師)가 되어 보경사 주지가 되었다. 경진년 봄에 의종은 그의 넷째아들을 삭발하여 대사에게 친속하게 하는 등 왕실의 신임을 받았고, 고종 8년팔공산 염불사에 이거한 후 10월 10일 입적하니 왕이 국사(國師)로 추증(追贈)하고 시호를 원진(원진)이라 하였다. 비명은 통의대부 추밀원 우부승선성 국자감 대사성 사자금어대신(通議大夫 樞密院 右副丞宣成 國子監 大司成 賜紫金魚大臣) 이공로(李公老)가 짓고 글씨는 장사랑 대관서승겸 보문각 교감(將士郞 大官署承兼 寶文閣 校勘) 김효인(金孝印)이 썼다. 이 비석은 1224년(고종 11년)에 세워졌는데 갓이 없고 신석양각(身石兩角)을 귀접이한 독특한 형식으로 귀부(龜趺)와 대석(臺石)은 단일석(單一石)이고 비좌(碑座)는 폭(幅)이 배면과 같은 정도의 넓이로 주위에 단변 44연변을 조각하였고, 귀갑(龜甲)은 6각형의 갑문(甲紋)내에 왕(王)자를 질서있게 새겼으며, 귀두(龜頭)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처럼 조각하였으며 신석(身石) 둘레에는 7.4cm의 당초문양(唐草紋樣)을 장식하였다. 귀부(龜趺)는 화강암, 비신(碑身)은 사암(砂岩)으로 되어 있다. 비문의 서체는 큰 글자는 전서체(箭書體)로 옆으로 적었고 작은 글자는 해서체(楷書體)로 아래로 적었다. 글자 크기는 큰 글자는 7.6cm, 작은 글자는 2.0cm이다.(포항시청 자료)

 

귀두(龜頭)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처럼 조각하였으며

신석(身石) 둘레에는 7.4cm의 당초문양(唐草紋樣)을 장식하였다.

 

 

 

 

귀갑(龜甲)은 6각형의 갑문(甲紋)내에 왕(王)자를 질서있게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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