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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고령

개경포(開經浦.개경포기념공원)

노촌魯村 2011. 9. 6.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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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 이송 :

서울 지천사에서 시작하여 장호원과 충주를 지나 조령 · 문경 · 점촌 · 구미를 통과하여 장경나루를 거쳐서 해인사 판전에 도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일설에는 서울에서 한강에 배를 띄워 대장경판을 싣고 서해 바닷길을 통해 남해를 돌아 낙동강 줄기인 지금의 고령군 개진면 개포마을에 이르러, 그곳에 배를 대로 해인사까지 운반했다는 얘기도 있다. 그래서 개포마을의 이름도 ‘경을 풀었다’는 뜻에서 나온 ‘개경포(開經浦)’가 전화된 것이라고 한다.

개포1리 유래 :  개포는 고령읍에서 동쪽으로 6킬로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는, 낙동강변의 중요한 교통요지였습니다. 개포는 또 기암절벽이 연이어져 있어 예로부터 시인묵객의 놀이터로도 유명했으며, 곡물과 어염의 집산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곳은 원래 개산포(開山浦)라 불렀으나 조선 때 승려들이 팔만대장경판을 합천 해인사로 이송할 때 개포나루터에 도착하여 고령읍 화갑(중화리)을 거쳐 해인사에 봉송된 이후부터 개경포(開經浦)로 지칭되었다. 1914년 일본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호학애국(好學愛國)의 혼을 말살하려는 의도에서 ‘경(經)’자를 빼고, 그냥 개포(開浦)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988년 동이 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유래기 :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을 강화도에서 선편으로 서해와 남해. 낙동강을 통하여 경판을 이곳 개포나루에 내려 영남일대 승려와 신도들이 고령읍을 거쳐 해인사까지 운반한 유래가 있어 개경포 또는 개경나루라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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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0년대의 선조때는 낙강칠현(송암 김면,옥산 이기춘,청휘당 이승,육일헌 이홍량,한강 정구,대암 박성, 낙빈이홍우)의 뱃놀이터로 유명.
임진왜란 때는 의병장 김면이 이끄는 군대가 개경포에서 격전을 벌여 왜병 1,600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림

 

법보종찰 해인사 고려대장경(보전과 소실 위기 극복)  바로가기 ;

http://www.haeinsa.or.kr/tripitaka/tripitaka_4.html
 

개경포는 낙동강변 산악자전거 도로의 출발점인 동시에 종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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