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도동리 신묘명각석문 (鬱陵島道東里辛卯銘刻石文.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13호.경북 울릉군 울릉읍 도동리 581-1 향토사료관)
1937년 도동 축항공사 때 바다에서 인양한 비석이다. 당시 2개가 있었으나 현재는 1개만이 남아있다.
비석은 가로 70cm, 세로 80cm의 부정형 현무암편으로서 평탄면에 2단으로 각기문(刻記文)을 새겼다. 상단기문은 가로 31cm, 세로 33cm 넓이에 10행으로 새겼고, 하단기문은 가로 18cm, 세로 40cm 넓이에 10행으로 새겼다. 글자의 크기는 2cm 내외의 작은 글자이다.
이 각석문은 ‘신묘오월(辛卯五月)’이라 새겨져 있어서 조선 숙종 37년으로 추정되는 신묘년의 기록으로 추정된다.
울릉도 도동리 신묘명 각석문은 울릉도의 근세 흐름을 금석문으로 입증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문화재청 자료)
마름모꼴의 바위 면에 20행, 총 143자가 각자되어 있다. 글자의 순서는 날짜, 수토 내용, 수토관 및 수행원들의 이름 순으로 새겨넣었다. 현존하는 각석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辛卯五月初九日到泊于倭舡倉以爲日後憑考次 萬里滄溟外將軍駕彩舟平生仗忠信履險自無憂搜討官折衝將軍三陟營將兼僉節制使朴錫昌拙句刻石于卯方軍官折衝朴省三折衝金壽元倭學閑良朴命逸軍官閑良金元聲都沙工崔粉江陵通引金蔓營吏金嗣興軍色金孝良中房朴一貫及唱金時云庫直金危玄食母金世長奴子金禮發使令金乙泰”
반면 망실된 1기는 1735년(영조 11)에 만들어진 것으로 높이 47㎝, 바닥 너비 37㎝, 상부 너비 19㎝이며, 내용은 “擁正十三年乙卯閏四月初八月搜討官三陟營將具億軍官崔獜朴元昌倭學金善義”라 되어 있었다고 한다.(출처 : 디지탈울릉문화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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