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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전쟁의 실상을 보여주고, 이 땅에서 다시는 6·25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주기 위해 마련됐다.
일시 : 2012년 1월17일 - 22일
장소: 대구문화예술회관
주최 : 6.25전쟁미술대전조직위원회. 갤러리 쉐자아르
후원 : 대구광역시. 경상북도. 대구지방보훈청. 대구교육청. 6.25전쟁참전유공자회. (주)금복주. (주)진명엔지니어링
6.25전쟁 그림전은 6.25전쟁 이후 최대의 전쟁 작품전으로 최예태, 노재순, 신제남 등 원로 및 중진 화가들이 대거 참여했으며, 김일해, 류성하, 장이규 등 대구․경북 지역의 유명한 화가들도 참여했다.
6.25전쟁 과정의 발발에서 휴전까지를 스토리텔링에 따라 100-200호의 대작(유화)으로 생생하게 화폭에 담아 낸 것이 큰 특징으로, 총 40점이 전시된다.
인민군 남침(이호근 작가)
아! 6.25(류영도 작가)
UN안보리 파병결의(박형덕 작가)
피난(노재순 작가)
다부동 전투(한병국 작가)
인천상륙작전(김일해 작가)
승리(권혁 작가)
서울수복(김계환 작가)
이승만대통령 평양입성 연설(이길한 작가)
백마고지전투
현리전투
흥남 철수작전(박형덕 작가)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1950년 12월 부산에 물자를 내려놓은 뒤 12월22일 흥남부두(흥남항)로 갔다. 당시 흥남부두는 미군과 한국군 10만5천명과 피난민 9만명으로 혼잡한 상태였다. 미국 군함과 비행기가 중공군에 폭격을 하는 동안 군함과 상선 약 200척이 흥남철수작전에 동원됐다.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정원은 60명이었고, 이미 선원 47명이 타고 있었기 때문에 원래는 13명만 더 태울 수 있었다. 당시 미 육군 제10군단장 알몬드 장군의 민사고문으로 있던 한국인 의사 현봉학씨가 피난민들을 모두 태워달라고 간곡하게 요청했고, 레너드 P. 라루 선장은 배에 실려있던 무기를 모두 버리고 피난민을 최대한 태우라고 명령했다. 피난민들도 자신의 짐을 버리고 승선해 모두 1만4천명이 탈 수 있었다. 피난민이 승선하는 동안 미 육군 3사단은 후방을 방어하다 세명이 죽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28시간 동안 항해해서 부산항으로 이동했다. 음식과 물, 이불, 의약품이 모두 부족했고, 적이 공격하는 와중이었지만 희생자는 한명도 없었다. 선원들은 옷을 벗어 여성과 아이들에게 줬지만 상태는 심각했다. 한때는 젊은이들이 음식을 달라며 폭동을 일으키기 직전까지 갔다. 12월 24일 부산항에 도착했지만 이미 피난민으로 가득찼다는 이유로 입항이 거절됐다. 같은 날 알몬드는 흥남부두에 내려놓은 무기를 중공군에게 뺏기지 않도록 흥남부두를 폭파시켰다. 라루 선장은 할 수 없이 50마일을 더 항해해서 크리스마스인 25일 거제도 장승포항에 피난민을 내려놓았다. 항해 도중 아기 5명이 태어났다.(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에서)
1.4후퇴(장이규 작가)
반공포로 석방
휴전협정(최순열 작가)
비극(류영도 작가)
남북상봉(류성하 작가)
이승만 대통령
백선엽 대장
더글라스 맥아더 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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