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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박진전쟁기념관(朴津戰爭記念館)

노촌魯村 2012. 5. 19. 13:02

박진전쟁기념관(朴津戰爭記念館.경남 창녕군 납지읍 월하리 624)

1950년 6월 25일 새벽, 전차를 앞세우고 기습 남침한 북한 공산군은 일거에 38선을 돌파하여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한 후 한강을 넘어 남으로 침공을 계속하였다. 이에 국군과 유엔군은 힘을 모아 혈전을 거듭하면서 이를 저지하려 하였으나 군사력이 열세하여 눈물을 머금고 후퇴를 계속하다가 개전 40여일이 경과한 8월초에는 마침내 낙동강을 끼고 최후 방어선을 구축하게 되었다. 이에 더 물러설 곳도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왜관-상주-영덕을 연하는 전선은 국군이, 현풍-창녕-진동을 연하는 전선은 유엔군이 방어하게 되었다. 이곳 박진지역은 부산을 점령하기 위해 낙동강을 도하하여 최후의 발악을 하던 북한공산군과 미군이 2주간 사투를 벌였던 격전지이다. 당시 북한의 최정예부 대인 제4사단이 8월 5일 야간에 이목나루터를 이용, 은밀히 기습 침투함으로 강변을 방어하고 있던 미군과 치열한 전투 끝에 8월 11일에는 영산면까지 침공 당하기도 했으나, 9월 15일까지 일진일퇴의 치열한 혈투를 전개하여 적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고 끝까지 이 진지를 사수하였다. 전투의 승리로 전세가 역전되어 아군이 낙동강을 건너 반격하게 되었으며 인천상륙작전의 성공과 함께 압록강까지 진격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전사에 길이 빛날 중요한 전적지이다. (창녕군청자료)

경상남도 창녕군 남지읍 월하리에 있는 한국전쟁 때의 박진지구전투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전쟁기념관은 월상초등학교 폐교 부지에 세운 박진전쟁기념관은 2003년 11월 준공하여 2004년 6월 25일 개관하였다.

남지철교 (南旨鐵橋)

남지철교 (南旨鐵橋.등록문화재 제145호.경남 창녕군 남지읍 남지리961 외)

이 시설물은 창녕과 함안 사이 낙동강을 가로질러 설치한 근대식 트러스 구조의 철교이다. 철근콘크리트 T형 다리로 상부 철골 트러스교의 트러스는 교각부분을 더 높게 설치하여 마치 물결이 치는 듯한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한다. 이 시기에 제작한 철교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우수한 다리로 평가받고 있다. (문화재청 자료)

일제 강점기 치욕의 역사와 한국전쟁 당시 다리가 끊긴 민족의 아픔을 담고 있는 남지철교이지 만, 남지 주민들에게는 삶의 애환과 정서가 담긴 추억의 보고이자 또 다른 문화유산이다. 낙동강을 가로지르며 경남 창녕군 남지읍 남지리와 함안군 칠서면 계내리를 잇는 남지철교가 가설된 것은 1931년부터 1933년 2월 사이이다. 해방 이후 경남 마산과 평북 중강진을 연결하는 국도 5호선의 교량으로 가설되었으며, 1994년까지 60여 년간 사용되었다. 지금은 차량 통행 금지 상태이고, 바로 옆에 새 남지교가 들어섰다. 한국전쟁 때에는 연합군의 최후 방어선으로 핏빛으로 강물이 물들 만큼 이 철교를 사이에 두고 연합군과 북한군의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졌으며, 연합군이 북한군의 도하를 막기 위해 교량의 중앙 부분 25m를 폭파하였다가 1953년 복구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보수 및 보강 공사를 거쳐 주요 교통로로 이용되어 왔는데, 1994년 정밀안전진단공사 결과 차량 통행이 금지되었다. (향토자원-지역정보털털에서) 

남지철교 :

1950. 8. 15. 창녕 남지철교. 국군의 최후 방어선으로 핏빛으로 강물이 물들 만큼 피아 엄청난 희생을 치렀던 격전의 현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