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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안동

안동 소호헌 (安東 蘇湖軒)

노촌魯村 2012. 6. 2.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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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 소호헌 (安東 蘇湖軒.보물 제475호. 경북 안동시 일직면 소호헌길 2 (망호리))

조선 중종 때 문신 서해(徐懈) 선생이 서재로 쓰기 위해 명종(재위 1545∼1567) 때 지은 별당이다. 규모는 앞면 4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부속된 방은 지붕 양식이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왼쪽 3칸은 대청, 오른쪽 1칸은 누마루며 앞쪽으로 온돌방 2칸을 붙여 집의 구조가 T자 모양을 이루고 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에 간략한 새부리 모양의 구조를 짜았다. 누(樓)마루와 온돌방 뒤쪽으로 난간을 둘렀고 건물 안쪽은 민가 건축에서 볼 수 없는 재료를 사용하여 지붕 맨 윗부분에 있는 재료를 받치고 있다. 기와에 새겨진 용 두 마리가 나는 문양은 민가에서 보기 드문 것이며, 건물에 나타나는 오래된 수법들은 조선시대 민가 건축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문화재청 자료)

래 안동 법흥동 임청각의 이명이 다섯째 아들 이고를 분가시킬 때 지어준 것으로 이고의 외동딸과 혼인한 중종 때의 학자 서해에게로 물려 내려진 집

소호헌 평면도

약봉藥峯 태실胎室

서성(1558-1631)은 조선의 문신이다. 자는 현기, 호는 약봉, 본관은 대구이다. 이이. 송익필의 문인으로서 선조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좌랑이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왕을 피란시켰으며 그 후  암행어사·경기도 관찰사·판중추 부사 등을 지냈다. 광해군 때 계축옥사에 연관되어 11년간 유배되었다가 인조반정으로 다시 등용되었다. 이괄의 난과 정묘호란 때에 왕을 피란시켰다. 그는 이인기. 이귀 등과 남지 기로회를 조직하여 역학을 토론했으며, 서화에도 능하였다. 저서로 《약봉집》이 있다.(위키백과 자료)

함재 서해는 퇴계 문하에서 학문을 연구하였지만, 23세로 아깝게도 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죽기 전에 아들을 하나 보았는데, 바로 5도 감사에 5조 판서를 역임한 약봉(藥峰) 서성(徐渻, 1558~1631)입니다.

  

일반적으로 한국 전통 건축에서 기둥 하부 구성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기단 위에 초석을 얹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우는 것으로서, 가장 일반적인 형태이다. 두 번째는 기단 위에 초석을 얹고 그 위에 목재를 가로로 짜서 귀틀을 만든 후 여기에 기둥을 세우는 것으로서, 안동 소호헌(경북 안동시 소재), 장수향교 명륜당(전북 장수군 소재), 전주 풍패지관 서익헌(전북 전주시 소재) 등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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