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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안동

안동 운흥동 오층전탑 (安東 雲興洞 五層塼塔)

노촌魯村 2012. 6. 2. 22:02

 

안동 운흥동 오층전탑 (安東 雲興洞 五層塼塔.보물 제56호.경북 안동시 운흥동 231)

안동역 구내에 있는 탑으로, 전탑의 형태를 띠고 있다. 안동 지방에는 다른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전탑이 다소 있는데, 전탑이란 흙으로 구운 벽돌로 쌓은 탑을 이른다. 탑은 무늬없는 벽돌로 5층을 쌓았다. 몸돌에는 층마다 불상을 모시기 위한 방인 감실(龕室)을 설치했고 특히 2층 남쪽면에는 2구의 인왕상(仁王像)을 새겨두었다. 지붕돌은 벽돌을 사용한 것에서 오는 제약때문에 처마 너비가 일반 석탑에 비해 매우 짧다. 밑면의 받침수는 1층부터 차례로 10단·8단·6단·4단·3단으로 줄어들었고 처마끝에는 기와골을 받기 위해 총총한 나무를 얹고 4층까지 기와를 입혀 놓았다. 이러한 지붕모양은 탑신의 감실과 더불어 목탑양식의 흔적을 보여준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으로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만 남아 있다. 이 전탑은 통일신라시대의 탑으로,『동국여지승람』이나『영가지(永嘉誌)』에 기록된 법림사(法林寺)의 전탑으로 추정된다.『영가지』에 법림사전탑이 7층이라는 점, 조선시대에 크게 보수를 하였다는 점, 탑의 머리장식은 법흥사탑(法興寺塔)과 같이 금동제였으나 임진왜란 직후 명나라 군인들이 도둑질해 갔다는 사실 등이 기록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지금의 모습과는 큰 차이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문화재청 자료)

영가지"에 칠층전탑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본래는 이보다 훨씬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후기 중수때 규모도 작아지고 형태
도 많이 변한 것으로 보인다. 기단은 따로 없으며 장대석을 계단식으로 3단 쌓고 그위에 바로 벽돌의 탑신을 올렸다. 초층 남면에는 작은 감실이 있는데 불상을 안치했을 것이다. 2층남면의 중앙부에는 인왕상 2구가 조각된 화강암 판석이 끼워져 있으며 2층 측면과 3층 전면엔 벽돌 한 장 크기의 구멍이 있다. 이러한 인왕상이나 작은 구멍들은 모두 감실로 보는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작은 구멍은 중국 전탑에서 보이는 광창이 변하여 나타난 것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탑의 옥개석은 전체적으로 기와가 덮여 있다. 그러나 옥개석의 폭이 매우 좁고 옥신석 전체로 보아 균형이 맞지 않아 옥신석 전체 또는 옥개석은 본래의 형태에서 크게 변화되었음을 알수 있다. 이로 미루어 조선 후기에 중수되면서 본래 없던 기와를 전면적으로 올렸을 것으로 보인다. "영가지"에는 법림사 칠층전탑으로 나와 있어서 이곳에 법림사라는 절이 있었음을 알수 있고, 금동 상륜을 임진왜란에 참전했던 명나라 군사들이 1598년 떼어갔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 미루어 다른 전탑처럼 금동 상륜부가 있었음을 알수있다. "영가지"에는 또 같은 경내에 17칸의 철기둥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사찰내에 있던 철제 당간이었을것이다. 현재 탑의 서쪽에 화강암의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 56호로 지정되었다. 안동 동부동 오층전탑은 국가 소유로, 안동역 구내에 있어 주변은 1년에 한두 차례 안동시에서 정기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탑 자체에 대한 보존처리는 수년간 없었다.(향토자원 지역정보포털 자료)

 명칭 변경 : 안동 동부동 오층전탑에서 안동 운흥동 오층전탑 (安東 雲興洞 五層塼塔)으로 변경 

            

 

 

 

 

 

 

 

 

 

 

              

 

 

안동 운흥동 오층전탑 (安東 雲興洞 五層塼塔. 일제시대. 조선고적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