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목수고본 (許穆手稿本.보물 제592호.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용산동6가))
허목수고본(許穆手稿本)는 조선 후기의 유학자인 미수 허목(1595∼1682)이 쓴 수필 원고본들이다.
허목은 전서체에 뛰어난 유학자이며, 23세 때 정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퇴계 이황의 학문을 존중하였다. 이로 인해 스승 정구로부터 퇴계의 학문을 이어 받아 다시 그 학문이 이익에 의해 계승, 발전되는 매개체역할을 하였다.
유물을 보면『동해비첩』1책,『금석운부』2책, 『고문운부』9책으로 총 3종 12책이다. 이것들은 모두 허목의 대표적 전서체 작품들로서 그의 필체를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동해비는 본래 ‘척주동해비’로 현재 삼척군에 있으며, 그 비의 탁본은 많이 유포되어 있다. 원래 동해비의 글씨는 현재의 비보다 더 컸는데 파도에 침몰되어 선생이 따로 작은 글씨로 써둔 것을 보고 다시 새겼다. 크기는 가로 32.7㎝, 세로 50㎝이다.
금석운부는 옛 금석문에 나타난 전서를 총망라하여 만든 전서자전으로, 석판으로 영인간행된 적이 있다. 크기는 가로 22.7㎝, 세로 34.5㎝이다.
고문운부는 옛 문헌 및 금석에 나타난 옛 전서문을 운별로 정리하여 먼저 해서를 쓰고 다음에 각 체의 고문과 전을 기입한 고문자전이다.『금석운부』는 금석자료에 한정되었으나 이 책은 고문헌까지 망라하였으므로, 내용이 더욱 방대하다. 크기는 가로 22.7㎝, 세로 34.5㎝이다..(문화재청 자료)
허목 전서 애민우국 (許穆 篆書 愛民憂國.보물 제592-3호. 부산 남구)
허목 전서 애민우국(許穆 篆書 愛民憂國 )은 장지 두 장에 쓴 것으로 현재까지 알려진 미수 허목(1595-1682)의 편액 글씨 가운데 가장 크며 보존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글씨 양쪽에 [주인 疇人], [미수 眉?][일신 日新]과 [미수 眉?][구주노인 九疇老人]이란 허목의 인장 5개가 찍혀 있다. 고려대박물관 소장 <함취당> 편액과 더불어 허목의 대자(大字) 전서풍을 대표하는 예이다. 특히 획법이 경건(勁健)하고 힘차다.
1. 공 고 명 :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명칭 변경 예고
2. 공고사항
ㅇ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명칭 변경
- 대상문화재 : 보물 제592-(3)호 ‘허목 전서 애민우국(許穆 篆書 愛民憂國)’
ㅇ 변경 내용
허목 전서 애민우국(許穆 篆書 愛民憂國)
→ 허목 전서 애군우국(許穆 篆書 愛君憂國)
ㅇ 변경 사유 : 지정명칭 오류 정정
허목의 글씨는 '애민우국'이 아니라 '애군우국'(愛君憂國)이라는 주장이었다. 도장을 새기며 전서를 공부한다는 이 시민은 '중국전각대자전'의 '군'(君)자 표기와 정암 조광조의 '절명시'(絶命詩)에서 '애군우국'이라고 표현한 사례를 제시했다. 당시 사대부들은 백성이 아니라 군주를 중심으로 나라를 걱정했다는 것이다.(조선일보(2012.72)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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