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계태사 고려화불연구소 이사장 혜담 스님이 ‘단절되어 잊혀진 위대한 문화유산. 고려화불 초대전’을 개최한다.2013년 1월 21일부터 2013년 2월 3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 6~7관에서 개최되는 이번 전시에서 스님은 복원 작업을 거친 6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스님은 매일 하루에 16시간에서 18시간씩 작업을 하며 작품을 완성시켜 나갔다. 이런 작업을 통해 스님은 ‘500나한상’ ‘관경 16관 변상’ ‘수월관세음보살’ ‘열반상’ 등을 완성 대중들을 찾아간다.
혜담 스님의 수월관음도 : 3년의 작업을 통해 5m의 작품을 완성시켰다
수월관음도
수월관음도
수월관음도(부분)
수월관음도(부분)
수월관음도(부분)
수월관음도(부분)
오백나한도 : 오백나한과 공양발원 하는 100여 대중을 합하면 600여 명이 한 작품안에 있다.
특집다큐(7백년 만의 귀향: 고려불화)
초정밀 마이크로의 세계, 고려불화 한 폭에 15,000명의 부처를 그리다
보물로 지정 된 수월관음도 수월관음보살도 (水月觀音菩薩圖.보물 제926호.서울 용산구 이태원로55길 60-16, 삼성미술관 리움) 관음보살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하여 중생 앞에 나타나 자비를 베푼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보살이다. 가로 53㎝, 세로 86㎝ 크기의 이 수월관음도에는 관음보살이 사는 화려한 정토(淨土)의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중앙에 표현한 관음보살은 바위에 왼쪽으로 비스듬히 걸터 앉아 선재동자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관음은 풍만한 얼굴과 섬세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으며, 가는 눈과 작은 입 등에서는 부드러우면서도 근엄한 인상이 풍긴다. 머리에는 화려한 보관(寶冠)을 높이 쓰고, 몸에는 투명하고 부드러운 옷과 화려한 팔찌·목걸이 등을 표현하였다. 등 뒤로는 한 쌍의 푸른 대나무가 보이고 바위 끝에는 버들가지가 꽂힌 꽃병이 있으며 그 주위를 둥근 광배(光背)가 둘러싸고 있다. 관음의 발 아래에는 붉고 흰 산호초와 연꽃 그리고 이름 모를 꽃들이 화려하게 피어 있다. 고려불화는 전 세계에 80여 점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4∼5점만이 전한다. 이 수월관음도는 섬세하고 화려하면서 우아한 종교적인 아름다움과 격식을 지닌 작품으로 고려불화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귀중한 작품이다.(출처 :문화재청) 수월관음도 (水月觀音圖.보물 제1286호.경기 용인시 처인구 용인대학로 134, 수장고 (삼가동)) 관음보살은 여러 모습으로 중생 앞에 나타나 고난에서 안락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자비를 상징하는 보살로 수월관음도에는 그가 사는 정토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수월관음도는 관음보살이 오른발을 왼쪽무릎에 올린 반가좌 자세로 바위 위에 걸터앉아 선재동자를 굽어보고 있는 모습으로, 『화엄경』의 내용 중 한 장면을 그린 것이다. 관음보살의 등 뒤로는 한 쌍의 대나무가 표현되어 있고, 앞쪽으로는 버들가지가 꽂힌 꽃병이 있으며 주위에 금가루로 원형을 그려 놓았다. 윤곽선과 세부 묘사는 붉은색을 주로 사용하였는데, 베일의 바탕과 주름선은 백색으로 그린 다음 금가루에 아교를 섞은 금니로 겹쳐 그렸고 안쪽에는 고려문양의 특징인 연꽃덩쿨무늬를 원안에 넣었다. 입고 있는 치마는 붉은색을 칠하고 백색으로 거북 등껍질 문양을 그린 다음 그 위에 먹선으로 덧그려 문양이 뚜렷하다. 이 그림은 1994년에서 1996년까지 보수작업을 통해 원래의 모습을 거의 되찾은 상태로 색채가 매우 양호하다. 전체적으로 안정되었고 고려 불화의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어 수월 관음도의 시대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으며, 섬세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출처:문화재청) 의겸등필수월관음도 (義謙等筆水月觀音圖.보물 제1204호.경기 성남시) 관음은 여러 모습으로 중생 앞에 나타나 고난에서 안락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자비를 상징하는 보살로 수월관음도에는 그가 사는 정토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이 그림은 크기가 가로 105.5cm, 세로 143.7cm로, 머리에 크고 높은 보관을 쓴 관음의 얼굴과 이목구비가 둥글고 예쁘게 묘사되어 화면 중앙을 가득히 채우고 있다. 건장한 신체로 벌어진 어깨와 넓고 큰 하체를 가지고 있다. 옷은 녹색과 붉은색이 서로 대비를 이루고 있으나 약간 색이 바래져 보인다. 관음의 오른쪽 바위 위에는 버들가지가 꽂힌 화병이 있고 왼쪽에는 한 쌍의 대나무가 있는데 이것들은 고려시대 그림과 유사한 구도이다. 고려와 비교할 때 이런 배치구도는 비슷하지만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관음의 모습과 옷의 색깔, 바위의 형태 등은 많이 달라진 모습으로 조선시대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영조 6년(1730)에 18세기 최고의 승려화가인 의겸이 그린 이 수월관음도는 당대 최고의 작품이며, 특히 고려 때에는 수월관음도가 많이 그려졌으나 조선시대에는 찾아보기 힘든 매우 귀한 것으로 회화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 흥국사수월관음도 (興國寺水月觀音圖.보물 제1332호.전남 여수시 중흥동 산 17 흥국사) 관음보살은 여러 모습으로 중생 앞에 나타나 고난에서 안락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자비를 상징하는 보살로 수월관음도에는 관음보살이 사는 정토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흥국사 수월관음도에는 둥근 몸광배를 하고 있는 관음보살이 화면 중앙을 가득 채우고 있으며, 오른 무릎 아래쪽에는 선재동자가 허리를 약간 구부린 채 합장하고 서 있다. 맨 하단에는 일렁이는 물결이 묘사되어 있다. 관음보살의 양팔 좌우로는 푸른 대나무 및 버들가지가 꽂힌 꽃병과 새가 표현되어 있다. 조선시대 관음도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따르고 있는 관음도로서 부분적으로 도식적인 면이 엿보이지만, 안정된 구도에 적·녹·청색의 조화로운 배색으로 화려함과 따뜻한 느낌을 준다. 또한 단정하고 적당한 얼굴표현과 신체비례, 바위면 처리에 있어 회화성 넘치는 표현 기법 등을 보여주는 우수한 작품이다. 18세기 최고 화승으로 꼽히던 의겸 스님이 그린 그림으로, 비록 화면 하단부에 일부 손상이 있기는 하지만 짜임새 있는 구도, 섬세한 필치, 조화로운 색채 등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출처:문화재청) 수월관음도 (水月觀音圖.보물 제1426호.경기 용인시 기흥구 용구대로 1920, 미술관) 수월관음도는 비록 조성연대와 작가가 명확하지 않고 부분적으로 변·퇴색과 수리 및 덧그린 흔적이 엿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일본 소재의 1323년 작 서구방 필 수월관음도를 위시한 고려시대 14세기 관세음보살도들과 비교해 보면 마치 한 본을 사용하기라도 한 듯 구도와 인물의 형태가 거의 같고, 고려불화의 특징적인 화사한 색채와 세련되고 우아한 선을 구사한 인물 묘사 등 세부묘사에 있어서도 서로 유사한 점이 엿보여 예술성 높은 동일시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화면 구성이 충실하며 표현기법 역시 고려불화의 전형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 그리고 국내에는 제대로 된 고려시대 수월관음도가 2∼3점에 불과하다는 자료의 희소성, 나아가 이미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두 점의 수월관음도와 비교하여도 질적인 면에서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술사적으로 자료적 가치가 충분하다(출처:문화재청) 고성 운흥사 관음보살도 (固城 雲興寺 觀音菩薩圖.보물 제1694호. 경남 고성군 하이면 와룡2길 248-28, 운흥사) 운흥사 관음보살도는 1730년 의겸(義謙)이 수화승을 맡아 운흥사 삼세불도와 삼장보살도, 감로왕도를 조성할 때 함께 제작한 것이다. 불화 조성에는 의겸 외에도 행종(幸宗), 채인(採仁)이 참여하였다. 운흥사 관음보살도 외에 의겸이 제작한 관음보살도는 1723년 여수 흥국사 수월관음도(보물 제1332호)와 한국불교미술박물관 소장 1730년 수월관음도(보문 제1204호)가 있다. 그리고 불상으로는 1730년 부산 내 원정사 목조관음보살좌상(부산시 유형문화재 제47호)도 전한다. 운흥사 관음보살도는 보타락가산에 유희좌 자세로 앉아 있는 관음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정병, 청조, 1쌍의 청죽, 선재동자를 배치하였다. 이와 같은 운흥사 관음보살도의 기본적인 구성과 도상은 1723년 흥국사 수월관음도와 동일한데, 정병과 청죽 1쌍, 청조의 위치가 좌우 바뀌었고, 화면 하단에 용녀와 용왕이 등장하는 점, 복식의 문양이 간략해진 점 등이 차이가 있다. 관음보살의 표현은 1730년 한국불교미술박물관 소장 수월관음도와 흡사하다. 머리에 입상의 화불을 모신 보관을 쓴 관음보살은 오른손으로 바위를 짚고, 왼손은 무릎에 올렸으며, 변형된 유희좌의 자세로 암반 위에 앉아 있다. 화면 하단 향좌측에는 선재동자가 합장하고 서있으며, 향우측에는 여의주를 받든 용녀와 홀을 든 용왕이 등장한다. 이러한 관음보살도의 형식은 1858년 통도사 관음전 후불탱, 1868년 운문사 관음보살도, 1869년 향로암 관음보살도 및 18~19세기 후불벽 배면에 벽화로 그려진 수월관음도 도상으로 이어진다. 운흥사 관음보살도는 의겸이 제작한 다른 관음보살도 가운데 관음보살과 선재동자, 용왕과 용녀의 화면 구성이 가장 알맞고, 상호의 묘사도 여성스럽다. 또한 의겸 특유의 수묵담채풍이 잘 반영되어있어 전반적으로 차분한 느낌을 준다.(출처: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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