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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남해 충렬사 (南海 忠烈祠)

노촌魯村 2013. 11. 5. 03:10

 


 

 

 

 

 


 

 

1948년 정인보가 쓴 것을 경남도청에서 세운「충렬사비(忠烈祠碑)」


남해 충렬사(南海 忠烈祠.사적  제233호.경남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 350)

임진왜란이 끝나던 해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충무공 이순신의 충의와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이다. 통영의 충렬사와 함께 충열(忠烈)이란 액호(額號)를 처음부터 같이 사용해온 이 사당이 창건된 것은 인조 때 일이었다. 이충무공이 관음포 앞바다에서 전사한 직후 그의 유구(遺軀)가 한 때 이곳에 안치되었는데, 1632년(인조 10) 이곳 유림들이 그 옛터에 작은 집을 짓고 제사를 지냈던 것이 그 최초의 사당이다. 그 후 공이 순국한지 일주갑(一周甲)이 되던 해인 1658년 (효종(孝宗)9) 통제사 정익(鄭익)이 좁고 초라한 옛집을 헐고 그 자리에 새집을 지으니 이것이 충렬사의 중건(重建)이었다. 그로부터 5년 뒤인 1663년(현종(顯宗) 4) 이 사당은 통영 충렬사와 함께 사액(賜額)을 받게 되었다. 이와 같은 사실들을 자세히 기록한 것이 현재 사당 곁에 있는 충무이공묘비(忠武李公廟碑)이며, 1661년(현종 2)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그 비문을 쓴 이비는 1663년에 통제사 박경지(朴敬祉)등이 세운 것이다. 여기에서 참고로 해 둘 것은 옛날 이 충렬사 곁에 호충암(護忠庵)이란 작은 암자가 있었는데, 가까운 화방사(花芳寺)의 승도 10명과 승장(僧將)1명이 번갈아 와서 사당을 지켰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의 「충렬사지(忠烈祠誌)」에 의하면, 이것을 수직(守直)하던 승장 유습(裕習)이란 사람의 꿈에 이충무공이 현몽한 내용의 일화가 실려 있다. 유습이 밤에 잠이 들었는데 공(公)이 나타나 그를 꾸짖기를“ 너는 왜 산을 순시하지 않느냐”고 하여 깜짝 놀라 일어나서 여러 승려들과 함께 횃불을 들고 산속을 돌아보니 사당 뒤에다 어떤 사람이 암장(暗葬)을 해 둔 것을 발견, 이튿날 이를 관가에 보고하여 조치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일화는 허튼 이야기가 아닌, 충무공의 영험(靈驗)이 그만큼 생생하게 이곳에 현현(顯現)하였음을 말해준다. 또한 충무공이 순국한 후 이곳에서는 자운 (紫雲)이란 승려가 매년 쌀 수백석을 가지고 노량바다에 와서 공을 위한 수륙재(水陸齋)를 올렸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자운은 임진왜란 초부터 충무공 휘하에 들어가 해상 의승장(海上 義僧將)으로 활약했던 승려로서 평소에 공을 흠모한 것이 순국한 뒤에는 그의 충의를 깊이 사모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곳 충렬사는 1973년 사적으로 지정된 후 현재 경내에서는 사당 외에 비각·내삼문·외삼문·관리사 등의 시설들이 보수 정화되어 있다. 그리고 사당 후원에는 충무공의 순국 직후 유구(遺軀)가 가장(假葬)되었던 자리에 가분묘(假憤墓)가 남아 있으며, 1948년 정인보가 쓴 것을 경남도청에서 세운「충렬사비(忠烈祠碑)」가 현지에 있다. (문화재청 자료)

 

 

 

 

 

 

 

補天浴日(보천욕일.補(기울 보) 天(하늘 천)浴(목욕할 욕) 日(해 일).하늘을 깁고 해를 목욕시킨다.박정희 대통령 친필)

‘보천욕일(補天浴日)’이란 '하늘을 수리하고 해를 목욕 시킨다'는 뜻으로 정유재란 때 명나라 어왜도총관 전군도독부 도독의 신분으로 전란에 참가한 명나라 진린(陳璘) 도독이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장군과 함께 승리를 이끌었지만 이순신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운명을 달리하자 장군의 공을 명나라 황제에게 “이순신은 경천위지(經天緯地)의 재능과 보천욕일(補天浴日)의 공이 있다”고 보고하였고 보천욕일은 ‘어마어마한 공적’을 가리킬 때 쓰는 말로, 중국 신화에서 비롯됐다. 이에 명나라 신종(神宗)황제가 이순신장군에게 명조(明朝) 팔사품(八賜品)을 하사하니 1966년 2월 4일에 보물 제440호로 지정이 되어 현충사에 보관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 기념식수. 히말라야시타

 

남해 충렬사 창건자. 숭록대부 경주김공여빈. 가선대부 제주고공승후 영세불망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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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下雖安 忘戰必危

천하가 비록 편안하다고 해도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태롭다

(사마양저司馬 穰苴: 춘추시대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체계적인 전략 전술가이자 명장. 본래 이름은 전양저田穰苴지만 그가 제나라에서 맡은 직책이 사마(司馬, 군사관련 총책임자)였기 때문에 씨족의 이름보다는 관직의 이름으로 불려지는 경우가 많다. 天下雖安 忘戰必危라는 말로 유명하다)

역사만화 이순신 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