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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人必見>日本 朝日 TV방송 제작, 느긋하게 보세요,
2013년 3월 28일 방영한 安重根의사의 一代記를 명쾌히 해설
안중근의사는 1879년7월16일,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
31세의 나이로 1910년3월26일
여순감옥에서 사형으로 생을 마감하신
우리의 자랑스런 영웅이자 애국자이자,
당시 대한독립군의 중장의 신분이었다.
1909년10월26일 하얼빈역에 아침 9시 도착,
러시아의 재무상과 회담예정의 날 아침에,
불과 5m의 거리에서 6발의 권총사격으로
이토히로부미(伊藤博文)을 암살했다.
그가 6차례의 재판을 받는 중에,
왜 그를 암살했나는 질문에 15가지의 이유를 명쾌히 설명,
당시 검찰관이나 형무소 헌병도
그를 존경하게 만들었던 사실이 동영상에 여실히 나온다.
동양평화론은, 그 당시 아무도 생각치못한
명쾌한 새로운 세계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한중일 3개국이 경제통합하고,
통화도 단일통화를 체택하면 더욱 번성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동영상의 하부에서는 일본의 학자도,
1910년8월22일의 한일합방은 지나친 것이었다고 시인한다.
이등박문이 하얼빈에 간 것은,
한일합방과 만주이권을 러시아와
담판하기 위해서였다고도 밝히고 있다.
나는 이 동영상을 우리나라 TV가 정식으로 방영하기를 바란다.
너무도 귀중하고 값진 내용이 가득하다.
우리 젊은이들이 반드시 보고 배워야 할 것이 충만되어 있다.
2013-11-29, jgchoi9999 해설추가함.
안중근이 1910년 3월 사형집행을 앞두고
흔들림 없는
심경을 술회한 자작 한시로
안태평의 한문교본 대가법첩에
기록되어 있다.
1.
백인당중유태화보물
제569-1호
百忍堂中有泰和
백 번 참는 집안에
태평과 화목이 있다.
중국 당(청) 고종이 운주 장공예(張公藝)의 집 당호(堂號)로,
9대가 한집에 화목하게 산 것을 칭찬하며 지어
준 글이다.
2.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
3. 연년세세화상사 세세년년인부동
보물
제569-3호
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
해마다 계절 따라 같은 꽃이 피건만
해마다 만나는
사람들은 같지 않네.
4. 치악의악식자 부족여의
恥惡衣惡食者 不足與議
궂은 옷, 궂은 밥을 부끄러워하는 자는 더불어 의논 할 수 없다.
『논어』 이인(里仁) 편에서 인용
5. 동양대세사묘현 유지남아기안면
보물 제569-5호
東洋大勢思杳玄 有志男兒 豈安眠和局未成猶慷慨政 略不改眞可憐
동양대세 생각하매 아득하고 어둡거니 뜻 있는 사나이 편한 잠을 어이 자리,
평화시국 못 이룸이 이리도 슬픈지고 정략(침략전쟁)을 고치지 않으니 참 가엾도다.
6. 견리사의 견위수명
보물 제569-6호
見利思義
見危授命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
『논어』 헌문(憲問) 편에서 인용
7. 용공난용 연포기재 보물 제569-7호
庸工難用 連抱奇材
서투른 목수는 아름드리
큰 재목을 쓰기 어렵다.
『통감(通鑑)』에 자사(子思)가 위왕(魏王)에게 말한 내용에서 인용
8. 인무원려
난성대업
人無遠慮 難成大業
사람이 멀리 생각지 못하면 큰일을 이루기 어렵다.
『논어』 헌문(憲問) 편에서 인용
9. 오로봉위필 삼상작연지 청천일장지 사아복 중시
五老峯爲筆 三湘作硯池 靑天一丈紙 寫我腹中詩
오로봉으로 붓을 삼고 삼상의 물로 먹을 갈아
푸른하늘 한 장 종이 삼아 뱃속에 담긴 시를 쓰련다.
10. 세한연후 지송백지부조 보물
제
569-10호
歲寒然後 知松栢之不彫
눈보라 친
연후에야 잣나무가 이울지 않음을 안다.
『논어』 자한(子罕) 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에서 인용
11. 사군천리 망안욕천 이표촌성 행물부정
思君千里 望眼欲穿 以表寸誠 幸勿負情
임 생각 천리 길에 바라보는 눈이 뚫어질 듯하오이다.
이로써 작은 정성을 바치오니 행여 이 정을 저버리지 마소서.
12. 장부수사심여철 의사림위기사운
丈夫雖死心如鐵 義士臨危氣似雲
장부가 비록 죽을지라도 마음은 쇠와 같고
의사는 위태로움에 이를지라도 그 기풍은 구름 같도다.
13. 박학어문 약지이례
博學於文 約之以禮
널리 글을 배우고 예법으로 몸단속을 한다.
『논어』 옹야(雍也) 편에서 공자가 한 말이다.
14. 제일강산
보물 제569-14호
38.6㎝×96.6㎝, 원 김양선
목사 소장으로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 기증,
보물 지정일: 1972. 8. 16.
15. 청초당
보물
제569-15호
37.6㎝×67㎝, 민병기 소장, 보물 지정일: 1972. 8. 16.
16. 고막고어자시
孤莫孤於自恃 스스로 잘난 척하는 것보다 더 외로운 것은 없다.
39.7㎝×74.9㎝, 한중호 소장, 보물 지정일: 1972. 8. 16.
17. 인지당
仁智堂 어질고 지혜로워야 한다는 뜻의 당호.
37.6㎝×67㎝,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보물 지정일: 1972. 8. 16.
18. 인내
26.8㎝×72.1㎝, 김성섭 소장, 보물 지정일: 1972. 8. 16.
19. 극락
보물
제569-19호
33.2㎝×68.2㎝, 원 강신종 소유로 안중근의사기념관에 기증,
보물 지정일:
1972. 8. 16.
20. 운재
32.8㎝×67.8㎝, 안중근의사기념관 소장,
보물 지정일: 1972. 8. 16.
21. 욕보동양 선개정략 시과실기 추회하급
보물
제569-21호
欲保東洋 先改政略 時過失機追悔何及
동양을 보호하려면 먼저 정략을 고쳐야
한다.
때를 놓쳐 실기하면 후회한들 무엇하리요.
22. 국가안위 노심초사
보물
제569-22호
國家安危 勞心焦思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고 애태운다.
유묵 오른쪽에 증(贈)
안강(安岡) 검찰관이라 씌어져 있다.
이는 친절하게 대해 준 당시 뤼순법원 검찰관 야스오카에게 증정한 것이다.
야스오카 사후 장녀 우에노(上野)가 소장하다가
1976년 도쿄 국제한국연구원을 거쳐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에 기증했다.
23. 위국헌신 군인본분
보물
제569-23호
爲國獻身 軍人本分
나라를 위하여 몸을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
안중근 의사를
경호했던 일본군
헌병 지바 도시치(天葉十七)에게 써 준 유묵이다.
제대 후 지바는 안 의사의 인품과 사상에 감복하여
이 유묵을 일본에 가지고 가 사진과 함께 정성으로 모셨다.
그의 사후 미망인과 양녀 미우라(三浦)가
봉안하다가 구리고마의 다이린지(大林寺)를 거쳐
1980년 도쿄 국제한국연구원을 통하여 안중근의사기념관에 기증되었다.
24. 천여불수 반수기앙이 보물
제569-24호
天與不受 反受其殃耳
만일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도리어 벌을 받게
된다.
『춘추』 의전(春秋義戰)의 ‘天與不取 反受其咎’와 같은 뜻이다.
25. 언충신행독경 만방가행
보물
제569-25호
言忠信行篤敬 蠻邦可行
말에 성실과 신의가 있고, 행실이 돈독하고
경건하면 비록 야만의 나라에서도 이를 따르리라.
성산/편집
*이 땅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라면 남녀 노소를 불문하고반드시 일본Asahi TV가 제작한 45분짜리
동영상을 꼭 보아야만 할 것이다.
한가지 아쉬운점은 이렇게 훌륭한 조상을 둔 우리는,
북한을 제외하고, 지금 자주독립이 되었고 잘살지만,
자기 몸이나 도사리는지식인들이나 당리당락과
사리사욕에만 눈이 먼 정치인들이 들끓고 있다.
도대체가 우리가 안중근의사에 대해
무엇을 얼마나 깊이 알고 있었는지,
역사교과서는 이 동영상에 나오는 동양평화론의
골자를 소개나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실로, 분개하고 개탄하지 않을수 없으며 지금이라도
안중근의사의 고귀한 정신을 국민교육을 통하여
이어 받고 후세에게 가르쳐야 할것이다.
(출처 : 받은 글)
외교부 대변인 정례브리핑 (11. 21)에서 게시일 : 2013-11-21 16:00
안중근 의사 관련 일측 언급 (KTV 이연아 기자)
<질문> 일본 관방장관에 이어서 또 관방부장관까지 안중근 의사 관련해서 언급을 했었는데요. 이와 관련된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이 있습니까?
<답변> 지난번에도 이 자리에서 일본 관방장관의 언급에 대해서 우리 입장을 엄중하게 밝힌 바 있습니다. 일본은 과거 역사를 직시하고, 겸허하게 반성해야 합니다. 말로는 반성한다고 하면서 이러한 발언을 하면 반성의 의지를 다시 생각해 볼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안중근 의사는 범죄자가 아닙니다.
일본 관방장관의 안중근 의사 발언 관련 외교부 대변인 논평 < 역사의 양심에 눈감은 스가 일본 관방장관을 규탄한다 > 제 14 - 31 호 배포일시 : 2014.1.20(월) 1. 안중근 의사는 우리나라의 독립과 동양의 진정한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몸을 바치신 위인으로서, 우리나라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존경받고 있는 영웅이다.
2.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 제국주의 시대 대한제국에 을사늑약을 강요하고, 무력을 동원하여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침탈을 주도하였으며,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짓밟고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과 해악을 끼친 원흉이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관방장관이라는 인사가 그와 같은 몰상식하고 몰역사적인 발언을 한데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는 일본의 집권세력이
아직도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퇴행적 역사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외 교 부 대 변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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