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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라집(鳩摩羅什):동으로 간 푸른 눈의 승려
구마라집(鳩摩羅什)(kumarajiva) : 서기 344-413 또는 350-409. 현장 이전의 구역(舊譯) 시대를 대표하는 최대의 번역가이다. 구마라집을 줄여 라집이라고도 하며 동수(童壽)라고 번역한다. 아버지는 인도인으로 쿠차에 와서 국왕의 고문이 되고 왕의 누이와 결혼해서 구마라집을 얻었다. 7세 때 출가하여 9세 때에 어머니와 함께 간다라(일설에는 캐시미르)에 가서 반두달다에게서 소승을 배우고, 수리야소마로부터 대승을 배웠으며, 그 밖에도 여러 스승들에게서 가르침을 받아 어릴 적부터 그의 명성은 서역뿐만 아니라 중국에까지 알려져 있었다. 이때에 전진의 부견은 도안에게서 라집의 고명(高名)을 듣고 장군 여광(呂光)을 보내어 쿠차를 공격했고 라집은 붙잡혀 오게 되었다. 그러나 중도에 부견의 멸망이 알려지자 여광은 양주의 고장 (故藏)에서 후량이라는 나라를 세웠고(386) 라집도 15년 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후진의 제2대인 요흥은 후량을 토벌하여 라집을 장안으로 맞이했다(401). 그때 나이 58세였다. 요흥은 그를 국사로 예우하여 서명각(西明閣)과 소요원(逍遙園)을 하사하고 나중에는 그를 위해 장안대사(長安大寺)를 건립하여 그가 경전을 번역할 수 있는 도량으로 제공했다. 라집은 서역에 있을 때 이미 여러 외국어를 이해했으며 오랜 방랑 동안 중국어를 배워 장안에서 역경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또 그가 장안에 왔다는 소문을 듣고 많은 인재들이 모여들어 이들이 번역사업에 참가함으로써 훌륭한 번역을 하게 되어 그의 번역서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고 있다. 라집은 그때까지 번역된 경전들의 오류를 지적하고 교정함과 동시에 구탈을 벗고 중국인들에게도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역어를 사용하였다. 12년간 역경에 종사하고 70세로 입적했다. 그 밖에 역출한 경전은 등이 있다(출처:문화콘텐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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