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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김천

김천 청암사 수도암(金泉 靑巖寺 修道庵)

노촌魯村 2014. 5. 20. 11:14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의 말사인 청암사(靑巖寺)의 부속 암자이다.
859년(헌안왕 3)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수도도량으로 창건한 사찰이다. 도선청암사를 창건한 뒤 수도처로서 이 터를 발견하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여 7일 동안 춤을 추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 뒤 이 절은 수도승들의 참선도량으로 그 이름을 떨쳤으나 6·25전쟁 때 공비 소탕작전을 펼치면서 전소된 뒤 최근 들어 크게 중창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적광전(大寂光殿)·약광전(藥光殿)·선원(禪院)·관음전(觀音殿)·나한전(羅漢殿)·노전(爐殿) 등이 있으며, 근래 법전(法田)을 중건하였다. 보물 제296호로 지정된 약광전석불좌상과 보물 제297호의 3층 석탑(2기), 보물 제307호인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등과 함께 창건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기단석과 초석이 남아 있다.
이 중 약광전의 석불좌상도선이 조성한 것으로 전해지며, 금오산 약사암직지사 삼성암에 있는 약사여래와 함께 방광하였다 하여 3형제 불상으로 불린다. 특히 머리 부분에 보관(寶冠)을 장식했던 흔적이 있어 주목된다. 이는 약왕보살(藥王菩薩)의 머리에 금속관을 설치했던 것으로 흔하지 않은 예이다.
석조비로자나불상은 석굴암 불상보다 80㎝ 작으며, 9세기에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북석리에서 제작하였다고 한다. 당시 이 불상 운반에 골몰하고 있을 때 한 노승이 나타나서 등에 업고 이 절까지 운반하였는데, 절에 다 와서 칡덩굴에 걸려 넘어졌다고 한다. 당시 노승은 산신령을 불러 크게 꾸짖고 칡덩굴을 모두 없애게 하였는데, 지금까지도 이 절 근처에는 칡덩굴이 없다. 또 3층 석탑은 도선이 창건 당시에 이 절터가 마치 옥녀(玉女)가 베를 짜는 모습을 갖추고 있는 지대라 하여 베틀의 기둥을 상징하는 뜻으로 두 탑을 세웠다고 한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관음전

 

 

대적광전  앞에서 본 가야산

(물결치는 연못에 연꽃 한송이 핀 것 같은 산세)

  

  

김천 청암사 수도암 동ㆍ서 삼층석탑

(金泉 靑巖寺 修道庵 東ㆍ西 三層石塔)

김천 청암사 수도암 동ㆍ서 삼층석탑(金泉 靑巖寺 修道庵 東ㆍ西 三層石塔.보물  제297호. 경북 김천시 증산면 수도길 1438, 청암사 수도암(수도리))

 대적광전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쪽에 서 있는 쌍탑으로, 신라 헌안왕 3년(859)에 도선국사가 세웠다는 설이 전해온다. 앞 뜰이 좁아서 탑과 법당과의 거리가 가깝다.
동탑은 단층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기둥을 얕게 새겼다. 탑신부에서는 1층 몸돌이 위가 좁고 밑이 넓은 독특한 형태를 보이고 있는데, 각 면에는 4각형의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을 두고 그 안에 여래좌상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2·3층의 몸돌에는 각 모서리 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얇고 넓으며, 받침은 4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다. 1층 몸돌에 비해 2층 몸돌이 크게 줄었으나 3층 몸돌은 2층과 비슷하다. 1층 몸돌의 각 모서리에는 기둥만 새겨져 있고, 그 사이에 여래좌상이 조각되어 있다. 지붕돌은 동탑보다 얇고 넓으며 밑받침은 5단이다.
두 탑은 통일신라 중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되며, 곳곳에서 특이한 수법을 보여주고 있는데, 동탑은 1층 몸돌의 위가 좁고 감실을 두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고 서탑은 지붕돌 밑의 간격과 지붕돌이 넓다는 것이 특징이다. (출처;문화재청)

 

김천 청암사 수도암 동 삼층석탑(金泉 靑巖寺 修道庵 東 三層石塔)

 

 

 

 

 

김천 청암사 수도암 서 삼층석탑(金泉 靑巖寺 修道庵 西 三層石塔)

 

 

 

 

 

 

 

 

  

김천 청암사 수도암 동ㆍ서 삼층석탑(金泉 靑巖寺 修道庵 東ㆍ西 三層石塔) 사이의 석등

 

김천 청암사 수도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

(金泉 靑巖寺 修道庵 石造毘盧遮那佛坐像)

 

 

 

김천 청암사 수도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金泉 靑巖寺 修道庵 石造毘盧遮那佛坐像.보물  제307호.경북 김천시 증산면 수도길 1438, 청암사 수도암(수도리))

청암사 수도암에 모셔진 높이 2.51m의 통일신라시대 석조불상으로 진리의 세계를 두루 통솔한다는 의미를 지닌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것이다.
민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작지만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얼굴은 네모나며 풍만하고, 긴 눈·작은 입·평평한 콧잔등에서 위엄있는 모습을 살펴볼 수가 있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으며 옷주름은 느슨하고 형식적으로 표현되었다. 손은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데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였으며 단정하고 강인한 느낌을 준다. 거구의 불상이면서도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특이한 손모양과 함께 당시 시대양식의 반영인 것 같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는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래쪽은 연꽃을 엎어 놓은 모양으로 8각형을 이루고 있다. 맨 위에는 반원형에 가까운 연꽃이 2줄로 교차되어 있고, 앞면에 3마리의 사자상과 용머리 같은 것이 새겨져 있어 독특하다.
전체적으로 정제되고 균형잡힌 모습을 나타내는데, 위축되고 긴장감이 감소하며 탄력이 줄어든 점으로 볼 때 신라말에 만든 작품으로 추정된다.(출처:문화재청)

   

 

 

사진출처:문화재청

사진출처:문화재청

 

  

 

 

 

    

 

김천 청암사 수도암 석조보살좌상

(金泉 靑巖寺 修道庵 石造菩薩坐像)

 

 

김천 청암사 수도암 석조보살좌상(金泉 靑巖寺 修道庵 石造菩薩坐像.보물 제296호.경북 김천시 증산면 수도길 1438, 청암사 수도암(수도리))

청암산 수도암 약광전에 모셔져 있는 높이 1.54m의 고려시대 석불좌상이다.
머리에 원통형의 관(冠)을 쓰고 있어서 보살상처럼 보이지만, 광배와 대좌가 있고 신체 각 부분의 표현으로 보아 여래상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얼굴은 단아한 모습인데 마모가 심해 세부수법을 자세하게 확인하기 어렵다. 양 어깨에 걸쳐져 있는 옷의 주름은 도식적이고, 손모양은 두 손을 무릎 위에 나란히 모아 보주(寶珠)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에는 연꽃무늬·덩쿨무늬·불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불상이 앉아있는 대좌(臺座)는 4각형으로 윗부분에는 연꽃이 활짝 핀 모양을, 아랫부분에는 연꽃을 엎어 놓은 모양을 조각하였다.
도식적으로 처리된 옷주름, 형식적인 광배와 대좌의 표현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생각된다. (출처:문화재청)

        

수도암 앞의 전나무 

수도암 답사 길에서 만난 함박꽃나무:사람들은 흔히 함박꽃나무를 산에서 피는 목련이라 하여 산목련이라고도 부르고, 천녀화 즉 천상의 여인에 비유함니다.